알코올 중독 가족, 첫째 건이 이야기 -1편-
* 이번 주는 비가 온 뒤 잘박 잘박한 땅 위를 장화 신고 걸어다니며 구석진 곳 물 웅덩이에 개구리가 낳은 알들을 찾으러 다녔습니다. 검정 콩 같은 알들이 투명한 주머니 속에 자리잡은 모습을 보니 얼마나 질서정연한지 모릅니다.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진 검은 점들이 올챙이로 변하는 모습을 볼 것이 많이 기대됩니다. 나에게, 아이들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기를!
건이는 저희 집에 찾아온 첫 째 아들입니다. 산후조리원에서부터 방에 누워있으면 유독 건이의 울음소리만 잘 들렸습니다. 우렁찬 울음소리, 3.8kg의 튼튼함, 좋은 먹성은 누가보아도 아들이었습니다. 돌이 되기 전 건이는 웃음이 유독 많았습니다. 지나가는 이들의 시선과 인사, 말소리에 웃는 모습을 보고 어른들께서 헤보라는 별명도 붙여주셨습니다. 웃으면 살풋 접히며 사라지는 눈이 참 예뻤습니다. 돌이 지날 즈음엔 걷기 시작하였는데, 호기심이 아주 많고 운동량이 많은 아이라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오전, 오후 두 시간씩 산책을 해야 잠을 잘 잤습니다. 건이는 청각이 발달하였는지 사람들의 말소리를 좋아했고, 책 읽어주는 시간을 좋아했습니다. 듣는 것을 좋아해서인지 말도 빨리 배웠는데, 또래들보다 또박또박 발음하여 '할머니, 할아버지'도 할미, 할비가 아닌 할무니, 할아부지로 시작하여 정확한 발음을 했고, 건이의 말을 못 알아듣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가서 놀다보니 건이는 제가 알던 것보다 더 힘이 센 아이였습니다. 다른 아이들과 놀다가 장난감을 빼앗고 밀치고, 깨물기까지 할 때면 식은 땀이 났고, 놀이터에서 마지막은 늘 상대 아이 엄마에게 사과하며 급히 건이를 안고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한 두번이 아니라 자주 그렇게 되기 시작할 즈음 건이를 혼내보고, 같이 울어보고, 노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하였는데 지쳐가는 마음은 풍선처럼 부풀어 툭하면 아기에게 터지거나 타인을 만나면 하소연하며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모르는 낯선 사람에게 건이의 성격이 드세서 힘들다고 부끄러워하며 이야기하는 내 모습을 알지 못했는데 어느 날, 건이가 앞에 앉아 흙 놀이를 하다가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한참을 바라보는 시선을 인식했지만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나를 흉보는 엄마, 어린 건이가 느낄 수치심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후에도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아이가 똑똑하다, 쾌활하다, 에너지가 넘친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학기 상담 때에는 공격적인 성향에 대하여 나누게 되곤 했습니다. 어린이집 엄마들에게도 늘 사과를 하다보니 제 안에도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건이가 무척 예뻤지만 공격적인 성격을 띄는 것은 저를 너무 힘들게했습니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점점 건이가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날보다 아이를 미워하는 날이 많아지는 것 같아 큰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항상 몸은 같이 있지만 마음은 멀리있는 것 같았고, 이런 우리 사이에는 남들이 비집고 들어오기 일쑤였습니다. 타인의 반응에 예민한 엄마와 본인의 행동을 인지하지 못하고, 때마다 남들의 소리가 들리면 엄마에게 혼나야만 했던 건이. 건이가 무슨 상황에서 그랬는지 관심갖지 못했던 것들은 건이를 점점 억울하게 만들었습니다.
건이 안에 수치심과 억울함이 쌓여갈 즈음, 집에서는 아빠의 술 문제가 발단이 되기 시작하여 집안이 늘 시끄럽고 엄마아빠는 자주 다퉜으며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시는 날에는 늘 아빠가 무릎꿇고 울며 사과하는 모습을 봐야만 했습니다. 그 때 우리는 건이의 자존감이 짖뭉개지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웃음이 예뻤던 나의 아이는 어린이집 사진에서 늘 공허한 눈을 했고 점점 미소가 어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 마음이 어떤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하며 놀았는지 말하지 않는 건이를 보며 원래 성격이 그런 줄만 알았습니다. 그렇게 눌려만 가던 건이는 천진난만해야할 6살 무렵 노래하고 춤 추는 것도 어색해하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이런 건이를 보듬을 생각은 하지도 못한 저는 여전히 어린이집에서 하원할 때 선생님의 말에 귀기울이며 건이에게 왜 그랬는지 묻는 남의 편인 엄마였습니다. 6살 겨울 우리는 라파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이곳에서 건이는 7살이 되었습니다. 도심 속에서 엄마와 동생과 살던 건이는 아빠와 함께사는 것이 즐겁고, 뛰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는 넓은 마당을 마음껏 뛰며 놀았습니다. 호기심이 많던 모습이 차츰 살아나자 이것 저것을 다 만져보기 시작하였고 그 손길에 망가지는 물건들도 종종 생기게 되었습니다. 낯선 사람들이 많고 낯선 환경에서 엄마는 여전히 나침반 역할을 하며 도와주기보다 건이를 제지하는 말을 많이 하는, 건이의 편이 아닌 타인의 말을 듣고 건이를 바꾸려하는 엄마였습니다.
그러던 중 건이가 이사온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어느 저녁, 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모여있는데 한 형제님께서 건이가 스탠딩 전등을 망가뜨렸고, 고랑에 빠진 것을 주워놨으니 잘 이야기해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라파에서 처음 건이로 인한 대형 사고가 일어났다는 생각이 들자 머리가 지끈했습니다. 밥도 제쳐두고 당장 뛰어나가 확인해보니 전등 밑 바닥은 부서져있고 뽑힌 자리는 엉망이었습니다. 평상시 같으면 건이에게 무작정 화를내고 당장 고쳐놓기 위해 아등바등하고, 사람들에게 죄송하다고 했을 일인데 목사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에 차오르던 화가 누그러졌습니다.
"보통 아이들이 고장내고 엄마, 아빠한테 와서 이렇게 되었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데 건이는 고랑에 숨겨두었네. 이건 엄마보고 배운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