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홈스쿨 이야기 - 나를 알아가다 -

라파공동체2026.03.28 15:233

* 비가 잔뜩 내리니 낮았던 금강의 수위가 올라갔습니다. 오가며 강을 볼 때 저 뭍이 보일정도로 마르면 어쩌나 걱정했던 마음도 한결 나아졌습니다. 이를 통해 드러날 것은 드러내시고 감추일 것은 감추시는 하나님을 느낍니다. 강물이 바닥을 감추기도하고 드러내기도 하듯 우리 삶에도 하나님의 때에 맞는 수위조절이 되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제가 처음 입소하던 때에 있던 한 형제님의 이야기입니다. (이후 A형제로 칭하겠습니다.) A형제님의 엣된 얼굴은 나이를 짐작케 했고, 하얀 피부와 짙게 검은 머리카락은 그의 엣됨을 한층 더 학생같은 풋풋함으로 돋보여주었습니다. 라파공동체에는 게임 중독으로 입소했고 1년의 수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직장생활을 하던 중 재발하여 다시 입소했다고 했습니다. 그 형제님은 혼자있는 시간을 좋아했고 가끔 예배당에서 기타를 잡고 찬양을 했습니다. 형제님이 찬양하던 시간은 아침식사 후였는데 제가 아침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면 멀찍이서 음과 박자가 살짝 다른 익숙한 찬양이 들려왔고 그 소리를 들으며 설거지하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다른 일을 하며 다른 생각을 하는 그 형제와의 거리가 참 좋았습니다. 남자들이 자주 오가는 공동체에서 여자로 지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 어려움 속에서 A형제님과의 거리감은 조심스럽고 신중했으며 서로를 조용히 지켜보며 각자에게 일어나는 변화들을 관찰하는 여백이 되었습니다. 



 제가 본 A형제님은 사람들과 두루두루 친하다기보다 한 명과 깊이 어울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얕고 넓게 관계를 맺는 저와는 달리 한 명과 진지하게 어울리는 형제님을 보며 '나랑은 정말 다른 성격의 사람이구나.' 생각했습니다. 말을 조리있게 잘하고, 생각이 신중한 형제님은 주변에서 많이 찾는 사람이었습니다. 각자의 고민거리들을 안고 본인을 돌아보며 치유중인 형제님들은 간혹 A형제님을 찾아와 '나의 이야기를 진중하게 들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A형제님은 본인의 이야기를 잘 하지 못했습니다. 생각이 많아 잠을 잘 못잔다는 그는 스스로에 대한 생각보다 타인의 생각을 더 많이한다고 했습니다. 타인을 관찰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고마운 그는 본인에게 만큼은 더없이 조용한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왜 중독이 되었는지, 이런 일을 통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야기하는 것이 어려워보였습니다. 수업시간에도 그는 자주 '잘 모르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본인에게 조용한 그의 모습이 꼭 나와 같았습니다. 나도 나를 잘 모르기에 타인을 통해 힌트를 얻을 때가 많은데 A형제님도 공동체 사람들을 보며 힌트를 얻고 싶어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보았지만 스스로에게 만큼은 고요해서 더 없이 조용한 서로의 시간이 참 애처로워보였습니다. 그런 형제님의 입에서 가족의 이야기를 듣게 된 것도 시간이 흐른 후였습니다. 형제님의 아버지는 글을 잘 쓰고 말이 수려한 분이었는데 일찍 돌아가셔서 같이 지낸 시간이 부족해 늘 그리운 마음이 형제님의 공허한 삶이 되어버렸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삶이 바빠 형제님은 항상 혼자인 기분이었다고 했습니다. 그 시간을 채우기 위해 어머니께서도 상담하러 오시고, 예배에 오셔서 함께 시간을 보냈지만 그 후에 형제님은 더 어두운 표정이 되었습니다.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은가?' 했던 생각은 사실이 되어 형제님의 입에서는 엄마와 이런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며 다소 격한 억양으로 감정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조용하고 고요한 그에게서 처음 발견한 감정의 요동은 저에게 파도처럼 밀고 들어와 등을 때리며 돌아보라고 소리치는 듯 했습니다. '나를 봐! 나에게 사랑을 줘! 혼자 두지 마!' 삶이 바쁜 엄마의 등 뒤로, 비어버린 아버지의 자리를 향해 애처롭게 울어대는 아기의 울음이 전달되지 못하고 쌓여 어른이 된 지금까지 다른 이들의 등을 두드리며 나를 봐달라고 말하는 감정의 파도가 된 것 같았습니다. 형제님의 감정은 나날이 거센 파도가 되어 우리에게 전달되었고 우리는 수시로 변하는 그의 감정을 바라보며 그저 견디어주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저 들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감정을 함께 맞아주었습니다. 



 형제님의 파도를 가장 따갑게 맞던 목사님은 우리와 달리 뒤를 돌아 그 형제를 안아주고, 그에게 아버지의 이름으로 사랑을 주고자 손을 내밀어 반응했습니다. 그러자 형제님은 그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막상 울어대던 울음이 누군가에게 전달되어 나를 보듬고 안아주려 하자 너무 낯설었던 것일까요? 형제님은 목사님께 호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감정의 요동을 견딜 수 없노라고, 이 감정들이 터지면 나는 버틸 수 없을 것이라고, 이 공허함을 깨닫고 싶지 않았다고 내뱉는 그 말들은 차갑고, 눈빛은 따가웠습니다. 그런 형제에게 목사님께서 내뱉으신 외마디는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너의 아버지가 되겠다는게 그렇게 받아들이기가 힘이드냐? 내가 해줄테니까 여기서 버티라니까? 나가면 그냥 끝이잖아. 내가 아버지 해줄게." 이 말을 듣고 그의 어린 울음은 그쳤습니다. 순식간에 어른이 되어 나는 그런 것 다 필요없다고 말하며 그의 울음에 반응하여 뒤 돌아 손내민 목사님을 어색해하며 화를내다 이 곳을 떠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중독은 상처가 깊은 병이라고 합니다. 내가 가진 상처의 깊이를 잴 수 있다면, 무엇으로 채워야하는지만 알 수 있다면 시도할텐데 알길없는 이들은 술, 게임, 도박등으로 매우려다 중독의 늪으로 깊이 들어가게 됩니다. 이런 상태는 옛 감정에 고착되게 만들어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상처가 깊고 채울 길을 알지 못한 형제님은 찬양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려 애쓰고, 하나님은 내게 어떤 사랑을 말씀하시는지 알고자했습니다. 또 목사님을 통해 타인이 내게 이렇게 할 수 있구나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형제님 내면의 끊임없이 울어대던 아이는 막상 다가온 손길을 피하고 다시 울어대는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시 울 자리를 찾아 떠났습니다. 울음을 그치고 손길을 받아들이면 따뜻한 품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대신 채움받을 수 있겠지만 이런 새로움을 받아들이기 힘들게 만드는 것은 상처의 깊이요 중독의 깊이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울어도 돌아보지 못하는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을 무엇으로 달래고 채워야, 또 쓰디 쓴 울음을 얼마나 쏟아내어야 할 지 알길 없는, 참으로 고요하고 고독한 시간입니다. 형제님과 함께 지내는 시간동안 우리는 고요한 거리감에서 서로를 보았지만 마지막에 그가 전달한 감정의 요동을 통해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감정이 깨어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제게는 이 시간을 통해 나의 과거 상처는 무엇이었는지 돌아보고, 현재까지 영향을 주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아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영향을 주는 것들을 앞으로 다루겠지만, 가장 첫 번째는 부모님에게서 더 받고싶었던 비어있는 사랑의 자리가 있음을 알게되었습니다. 그 빈 자리를 타인을 통해, 또 남자를 통해 채우려했던 모습들도 있었습니다. 집이 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생이 되자마자 연애하기 위해 애쓰며 속썩였던 시간들, 지금의 남편을 만났지만 중독을 겪으며 아픔만을 남긴 그 자리. 여전히 하나님이 아닌 사람으로 채우려하며, A형제님과 같은 마음으로 울어대며 타인의 등을 두드리는 나의 감정들이 공동체에서 불쑥 불쑥 올라와 마음을 어지럽히기도 합니다. 이 사랑의 빈 자리를 느낄 때면 조용히 나와 마주하고 나의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께 호소하듯 털어놓으며 대화해야함에도 제 눈과 마음과 입은 타인을 향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이러한 나를 알 수 있었던 것은 제게 A형제님의 감정이 전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전한 감정이 마치 제 마음 속 바다 밑 바닥에 잠재워져있던 상자를 열리게 하여 스물스물 수면 위로 올라오게 하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상자 속에 있던 감추어진 글자들이 수면에 떠서 제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듯 했습니다. '나에게도 사랑을 주세요. 나를 봐주세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던 시간에는 그저 감정없이 평범히 살아가는 듯 했으나 나를 알아가면서는 정확히 나의 마음 속 진정한 원함을 알고, 나에게만 집중하기도하며, 하나님께 더 구체적인 것들을 기도로 들려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홈스쿨을 시작할 때 자녀가 조금 자란 가정에서 처음 겪는 변화는 자녀들이 자고, 또 자는 것이라고 합니다. 오랜 시간 받았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잠을 보충하고, 몸의 리듬을 알아가기 위한 시간이 부모의 눈에 처음에는 답답하고 게을러 보여 잔소리를 피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나고 난 후 그 시간은 오랜 시간 버텨온 자녀가 본인을 알아가기 위해 치유하는 시간이며 본인만의 생체 리듬과 원함을 찾아가는, 스스로를 치료하는 시간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글을 한 책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 시간만큼은 자녀가 부모의 잔소리를 받아들일 수 도 없고 부모또한 자녀가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그저 지켜만 봐야한다고 합니다. 서로 관찰하는 이 시간을 통해 홈스쿨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제게도 A형제님을 통해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 시작되었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A형제님 또한 치유의 시간으로 본인을 알아가기 위해 잠시 돌고 돌아 게을러 보였던 아이처럼, 아주 잠시 방황하는 것 처럼 보이는 것이기를 소망해봅니다. 그는 나보다 더 아팠을 것이 느껴지기에, 나보다 더 힘들 것이 느껴지기에 치유의 시간이 길도고 길며, 스스로를 알아가는 시간에 끝없는 여정으로 들어선 것임을,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길 잃어 헤매지 않고 이곳으로 돌아오기를, 그가 없는 이 자리에서 기도 할 밖에요.



 A형제님을 통해 우리는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어난 감정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지, 스스로를 알고 치유하는 시간을 가질 때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이 곳에서 서로를 통해 나를 봅니다. 그리고 그 관찰은 1년의 시간동안 나를 깨달아 치유되게 합니다. 하나님의 때에 드러내시고 감추시는 은혜로 형제님의 상처가 감추인 부분을 드러내시고, 새로운 사랑이 자리잡아 중독이 사라지고 중독의 그 흔적까지 감추어지는 현실이 되게 하시기를, 본인을 알고 삶의 리듬을 깨달아 형제님만을 향한 하나님의 시간은 오차없이 흘러가고 있음을 알고 사랑의 품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소망하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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