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홈스쿨 이야기 - 혼란 속의 질서 -
* 라파에서 귀촌에 대하여 배워가는 자매님이 일군 텃밭에는 여러 작물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번 주는 상추와 당근들을 솎아주기 위해 분리작업을 하며 작은 텃밭 3개를 더 만들었습니다. 땅에 호미질을 하며 풀을 뽑고 흙을 모으고 주변을 돌맹이로 담쌓듯 구분지어주니 상추와 당근의 집을 지어준 듯하여 안정감을 느낍니다. 나의 공간에서 누리는 안정감이 내 삶속에 잘 자리잡기를 소망합니다.
공동체로 살면 여러 사람들의 손이 모여 한 가지 일을 완성할 때 큰 만족감을 느낍니다. 혼자서는 엄두도 못 낼 일들을 함께 마음모아 손길 모아 이루어가다보면 어느덧 완성되어있고, 함께 해냈다는 깊은 성취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번 주에는 라파공동체 아둘람 하우스 옆으로 커다란 연못이 하나 완성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이 자리에 연못을 만들거예요. 포크레인이 오면 나는 정말 가슴 벅찬 느낌이 들어요. 사람이 해내지 못하는 일을 포크레인은 하루만에 뚝딱 완성하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의 전능하심을 맛 볼 수 있는 것 같아서 얼마나 설레는지!" 하며 설레임이 가득한 미소를 지으시는 것을 옆에서 볼 때면 제 마음에도 작은 무언가가 일렁이는 듯 했습니다. 목사님은 텅 빈 저 땅에서 과연 어떤 모습을 상상하고 계신걸까? 궁금하기도 했고, 우리가 해낼 수 있다고 말씀하실 때만해도 오래 전부터 손을 맞춰온 사이가 아니라 들락 날락 하는 사람들이 모여 일을 해낸다는 것이 감이 오지 않아서 '이것을 우리가?' 하는 의아한 마음이 가득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모인 자리에서 나름의 경험들에 비추어 연못을 구상하는 말들과, 일의 순서를 정하는 말들을 하곤 했습니다. 얼마나 혼란스럽던지!
누구의 말이 옳다 할 새도 없이 열띤 논쟁이 펼쳐졌습니다. '연못은 네모가 정석이지!' '연못은 동그래야 느낌이 살죠.' 아, 얼마나 식은땀 나는 선택의 순간이었는지 모릅니다. 모양이 어떠하든 물만 담겨있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던 저는 아주 얕은 마음으로 그 일에 가담하고 있음을 절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우리들의 논쟁 사이로 작업 당일 포크레인이 비집고 들어와 큰 자리를 차지하더니 땅을 진동시키는 덜그럭 소리를 내며 움직이다 땅에 커다란 구멍을 내는 순간, 우리는 모두 조용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포크레인이 오가는 모든 길 그 뒤로 파이는 구덩이는 전문가의 손길에서 완성되어가는 연못이 드러나고 있었고 땅의 지형에 따르면 이 자리는 동그란 연못이 될 수 밖에 없다고 말씀하시며 순식간에 아주 커다란 원을 만들기 시작하셨습니다. 멀리서만 보던 포크레인, 아이들 장난감에서나 보던 아주 작은 포크레인은 제 앞에 우람한 모습을 하고 서있었고 운전하는 사람은 아주 작게 느껴질만큼 커다란 팔을 휘두르며 돌을 옮기고 땅을 팔 때에는 트렌스포머의 한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진 것만 같았습니다. 와, 땅을 파는 포크레인도 이렇게 웅장한데 자동차가 로봇으로 변하는 트렌스포머는 얼마나 웅장할까? 그 생각의 끝에 목사님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창조 순간에 느껴졌을 그 장엄한 광경은 어떠했을까를 처음으로 두 눈에 담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작업을 끝으로 사람들의 역할이 나뉘기 시작했습니다. 연못 주변을 정리하는 사람, 연못에 자리를 깔고 방수되는 것들을 담아내는 사람, 돌을 옮기는 사람, 물을 받고 물이 새지는 않는지 확인하는 사람들이 일 순간에 나뉘어 각자 맡은 일들을 해냈고, 며칠 되지 않아 연못은 아주 멋진 모습으로 완성되어갔습니다. 연못이 자리를 잡으니 그 주변 일대가 안정감있게 보였습니다. 지저분하던 것들이 깨끗하게 정리된 듯 하고, 일을 마치고 모인 우리는 열띤 논쟁대신 서로 격려하는 시간들을 가졌습니다. 삶의 경험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모인 곳은 언제나 혼란스럽기에 그 속에 존재하는 질서가 빛나는 순간은 모여 함께하는 순간인 것 같습니다. 함께함을 땅의 지면삼아 이뤄낸 일들을 차곡 차곡 쌓아가다보면 어느덧 함께라는 추억과 이야기, 그 속에서 알아가는 서로의 진솔한 마음들이 모여 우리라는 느낌을 주곤합니다.
그러나 커다란 작업 사이를 세밀히 들여다보면 늘 금간 곳이 있게 마련이듯, 이곳은 일반 공동체가 아닌 중독 치유 공동체이기에 이렇게 하나의 큰 공동 작업을 마친 후에 돈독한 감정을 누릴 새 없이 혼란의 시기를 틈타는 중독이 살아나는 사람을 볼 때면 처참히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서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연못작업하면 빠질 수 없는 방수포 사업을 하시는 아버지가 있는 B형제님은 올 해 두 번째 입소한 형제님입니다. 첫 번째로 입소했을 때부터 B형제님은 중독의 강도가 심한 분이었습니다. 정신병원에서 지내기를 10여년, 30대 초반부터 40대 초반이 된 지금까지 병원을 전전하며 안 해본 중독 치료, 안 다녀본 병원, 안 들어본 교육이 없을 정도로 많은 지식을 갖고 있던 B형제님은 알코올과 도박 중독자였습니다. 짙은 피부에 안경을 쓰던 형제님은 초롱초롱한 눈이 풀려 늘 멍한 표정으로 바깥에서 믹스커피와 담배를 피우며 시간을 보냈고 살아있는 동물에게 마음이 간다며 검정 비닐 봉투에 강아지 물과 사료를 들고 각 닭장 앞을 지키는 진돗개들에게 밥을 주러 터덜 터덜 걸어다녔습니다. 그러다 공동체 컴퓨터로 도박을 한 이력이 확인되고, 며칠 되지 않아 몰래 바깥으로 나가 술을 마시는 바람에 퇴소하여 정신병원에서 지내다 다시 입소한 것이 지난 5월이었습니다. 형제님의 이름만 들어도 아주 심한 증상이었기에 공동체에 있는 모두가 긴장을 하였고, 형제님이 재입소하는 날 모두 모여 우리가 그에게 바라는 것들을 전달하는 시간을 갖게되었습니다. 중독을 끊고자하는 자의지가 있는지, 도박으로 얻은 돈은 모두 어떻게 처리하였는지, 핸드폰 소지는 하지 않는 것이 확실한지, 공동체 식구들의 신뢰를 저버리는 일들을 하지 않을 것인지를 묻는 시간을 모두 덤덤히 지난 듯 했지만 유독 저만은 마음이 방망이질하여 한동안 화가 가라앉지 않았었습니다. 남편의 중독으로 인해 가족들이 소집되기를 수차례, 그 속에서 늘 죄인처럼 고개 숙인채 있어야했던 남편과 추궁하는 가족들의 얼굴이 아직도 잊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공동체로 산다는 것은 개인의 상처가 남에게서 보일 때 큰 혼란을 느끼는 것입니다. 나 혼자서는 볼 수 없고 지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공동체 구성원을 대하다 드러날 때는 십중팔구 방망이질 하는 마음을 숨길 재간이 없습니다. 그렇게 방망이질 하는 마음은 상처가 드러남으로 인식하고 목사님과 상담을 할 때, 다 지나간 일이라도 하나님께서 상처를 드러내실 때에는 나의 힘듦이 아닌 치유가 가장 우선의 목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상처를 건드린 사람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방망이질 치는 혼란의 시간을 지나는 이유는, 하나님을 통한 나의 상처가 치유되는 경험이 있어야 타인의 상처를 볼 수 있으며 공동체에서 상처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 때의 감정을 잘 애도해서 보내면 상처가 치유되니 내게 유익이요, 타인을 대할 때 방망이질 치는 마음이 아니라 안정된 마음으로 그 사람의 상처를 볼 수 있으니 그 또한 내게 유익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한 동안 조용히 혼자있는 시간을 가지며 그 때 내가 얼마나 비참하고 힘들었는지, 나의 가족들을 볼 낯이 없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를 인지하여 다독이는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그렇게 맞이한 B형제님은 첫 입소 때와는 매우 달라진 모습이었습니다. B형제님은 이제 나의 상처가 떠오르는 사람이 아니라 완전한 타인이요 다른 상처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나니 그의 말 한마디, 눈빛 하나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볼 용기가 생겼습니다. 정말 많이 달라진 그를 유심히 관찰하던 중 그가 여성에게서 받은 상처가 있다는 것, 학창시절 느낀 열등감이 있었다는 것, 아버지에게 매우 의존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를 한층 더 발견하며 그의 말을 들어줄 용기가 생겼을 즈음 또 돌연 태도가 변하는 B형제님을 보게되었습니다. 이 때가 바로 연못이 한창 완성되어갈 즈음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께서 아들의 치료를 간절히 바라며 기꺼이 방수포를 보내준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 한 밤중에 오토바이를 타고 나가는 그 형제님을 목사님께서 보신 것입니다. 기다림의 시간 후 돌아온 B형제님은 잔뜩 만취한 상태였습니다. 그렇게 그를 또 떠나보내야만 했습니다. 알고보니 형제님은 두 번째 입소하던 날부터 핸드폰을 소지하고 있었고 우리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했던 그 때 방에서는 몰래 핸드폰으로 도박을 하며 돈을 따고, 잃기를 반복하다가 300만원을 잃은 날 참을 수 없는 절망감에 술 충동이 일어 술 마시러 나갔다 오는 것을 목사님께 들킨 것이었다고 합니다. 집으로 보내기 위해 기차역 가는 차 안에서 그는 계란을 판 돈으로도 도박을 했다고도 고백했습니다. 중독은 버림받을 용기와 버릴 용기가 필요한 병입니다. 가족들에게는 버릴 용기가, 중독자에게는 버림받을 용기가 있어야 비로소 치료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 병이 바로 중독입니다.
B형제님이 사람들의 혼란한 틈에서 모두 하나되어 완성해가는 작업을 할 때에 혼자서는 도박에 대한 생각을 끊지 못했고, 우리는 그의 모습을 통해 아픈 과거와 중독자 가족에게서 받은 상처를 마주하기에 더없이 혼란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연못은 그 형제님의 아버지가 아들의 치료를 기뻐하는 마음으로 보내준 방수포가 들어있어 더없이 마음이 아픈 자리가 되었습니다. 연못을 볼 때면 참 여러가지 생각이 날 것 같습니다. B형제님의 다 듣지 못한 상처들과 그 시간을 중독으로 매우며 더없이 젊은 나이에 깊은 중독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 이 곳에서조차 중독의 혼란함을 이기지 못하고 치유의 질서를 잡지 못했다는 것, B형제님의 아버지는 아들의 치유됨을 간절히 원하며 가정에서 더이상 새어나가지 않는 아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방수포처럼 담겨있었다는 것, 우리에게는 과거와 상처의 혼란함을 주고 그 속에서 각자 깨닫는 중독의 무서움과, 아직 사라지지 않고 나를 지배하는 상처의 감정이 요동치는 것들을 흘려보내는 시간이 되었다는 것이 연못에 담긴 물을 보면 늘 생각날 것 같습니다. B형제님의 퇴소를 그저 흘려보내지 않고 그 형제님에게도 치유의 시기가 다시 도래하여 꼭 해방된 삶을 살기를, 연못의 돌들을 차곡 차곡 쌓던 손길들을 기억하며 형제님이 삶에서 잃은 자리들을 다시 차곡차곡 쌓아 안정감있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복잡하고도 혼란한 연못작업과 한 형제님의 퇴소를 마주하는 한 주가 지나가며 어른들의 홈스쿨 성지인 라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봅니다. 중독자 어른들이 함께 모여 살며 목사님 사모님을 통해 하나님과 부모님에 대하여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이 곳, 혼란 가득한 문제 앞에 서 있을 때 한 사람 한 사람을 상담하시며 그 중 모두에게 빠지지 않고 하시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저 형제님을 도우시고 남은 우리들에게도 함께해주시기를 기도합시다. 기도 외에는 답이 없어요.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어요. 성령님께서 함께 해주셔야 가능한 일이기에 오늘 이 자리에 남은 우리도 은혜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어요." 그 형제를 통해 힘든 일들을 토로하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며 그 형제에게서 나를 봐야하고, 그 중독적인 성향은 죄인인 우리에게도 다 있는 모습이라고 말씀하실 때 홈스쿨의 본질을 알아갑니다. 가정에서 하는 홈스쿨 또한 기독교적 세계관을 중심으로 한 아이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끄집어내는 교육을 하는 것이기에 하나님, 부모, 자녀가 하나되어야 가능한 것이 홈스쿨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혼란의 문제 앞에 가족들이 마주했을 때 가장 첫 번째로 하나님의 관점에서 일을 생각하고 해결하고자 노력하며 하루종일 함께하는 가족사이에서 부모 자녀는 하나님 안에 동등하게 문제에 관한 의견을 제시하며 그 속에서 모두의 의견을 수용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때로는 자녀의 말을 통해 배우기도하는 부모,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어떤 마음을 주실지 모르나 그 말 한마디 놓치지 않고 각자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가정을 만들어가는 것이 홈스쿨이듯 라파 홈스쿨은 오늘도 한 형제님을 위해 기도하며, 그 형제님을 통해 각자가 보는 문제들을 두고 혼란 속 질서를 잡아가는 시간을 보냅니다. 오늘이 은혜임을 기억하며 하나님앞에 우리의 모든 감정과 아픔들을 토로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