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중독 아내의 이야기 - 흙 위에서 깊음에 대하여 생각하기 -

라파공동체2026.03.28 15:233

*비가 온 뒤 날이 개면 마주하는 햇살은 어두운 자리를 비추고 차던 공기를 따뜻하게 하여 얼굴을 들어 느끼는 순간은 무척 강렬하게 느껴져서 마치 내 볼을 누르는 듯 합니다. 그 속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옷을 갈아입고 나와 수돗가에 마주서서 건이와 호스를 잡고 물을 틀어 서로에게 쏴대며 물놀이를 했습니다. 지하에서 올라온 물이 어찌나 차던지 하늘과 땅의 다른 온기를 느끼며 놀 때 자연이 주는 양면의 사랑을 경험하는 듯 합니다. 늘 우리에게 무언가를 내어주는 자연속에서 온기를 느끼는 한 주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라파에서 맞이하는 5,6월의 아침은 5시가 조금 넘으면 어둡던 공간을 연주홍빛으로 물들이는 햇살에 눈을 뜨게 됩니다. 6시가 새벽 묵상 시간인데 맞춰놓은 알람이 채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질 때면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가며 뿌듯한 마음이 듭니다. 도시에서 맞는 아침은 암막 커튼으로 무장된 어둠 속에서 소리에 깨는 아침이었다면 시골에서 맞는 아침은 자연이 나를 깨우는 듯 하여 아주 부지런한 사람이 된 듯 하며 스스로 잠을 이기고 이불을 걷어 일어서는 나의 모습이 참 자랑스럽기 때문입니다.

저는 잠이 무척 깊은 사람입니다. 그래서인지 이전에는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더딘 아침이 무척 힘들어 스스로가 게으르게 느껴졌고 잠든 사이 들리는 소리는 일절 듣지 못했기에 늘 할머니께서는 ‘업어가도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제가 시골에서 살며 알람에 의지하지 않고 햇살에 스스로 눈을 뜨는 하루하루는 반 강제적인 기상이 아닌 자연스러운 기상이라 너무 즐겁습니다. 이 깊은 잠이 나의 일상의 깊음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무언가를 보고 느끼는 정서가 예민하고 생각이 깊은 편이라 본 것이 무엇이다 라고 말하기보다 어떤 느낌이었는지를 말하는 것이 더 편합니다. 늘 지리적인 부분과 명칭과 생김새보다 지극히 주관적인 그 속에 있을 때 느꼈던 느낌을 더 우선으로 다루며 장기기억 속에도 그 느낌만이 가득하기에 종종 일시와 사건이 다를 때가 있습니다. 이런 제게 시골은 자연이 주는 느낌이 가득한 곳, 지리적 장소와 명칭이 블록마다 달라지며 그 속에서 느끼는 것들이 시시 때대로 달라지는 도시와 달리 어딜 가나 그대로의 모습이 끝없이 이어지는 시골은 제게 변함없는 장소처럼 느껴지는 아주 안정되며 좋은 곳입니다. 그 속에서 자연이 주는 변화를 발견할 때 찾아오는 새로움은 자연의 느낌을 유지하며 살짝 얹혀지는 변화의 새로움이 큰 자극 없이 다가와서 마치 자연과 나의 사이를 더 깊어지게 하는 듯 합니다.

자연이 알려주는 ‘사이가 깊어진다는 것’을 인간 관계에 적용해보자면, 시시 때때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며 방법을 바꿔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주어지는 느낌을 유지하며 하나씩 더 얹혀지는 양태로 나타나는 것이 적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은 내게 참 어려운 것입니다. 제가 맺어가는 인간 관계는 시시때때로 사람 대하는 것이 변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처음 관계되는 때에는 친숙하게 다가가게 되어 친해지기가 무척 쉬우나 한 번 친하게 관계된 사이를 깊이있게 끌고가는 것을 하지 못합니다. 계속 그 처음 친해진 상태에서 깊이가 아니라 넓이로 방법을 바꾸어 얕은 관계만 유지하는 때가 훨씬 많습니다. 그래서 제게는 아주 친한 친구가 적습니다. 적절한 선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많아 나의 모든 면모를 상세히 아는 이들이 거의 없어 늘 이런 나에게 당황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거나 서운해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거나 결국 미미하게 유지되다 끊어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그렇지 않아서 정말 친하다 생각했고 가까이 하고싶었으나 깊어지지 못하는 모습 끝에 멀어질 때면 큰 허전함을 느끼곤 합니다. 이것이 남녀 관계에도 영향을 미쳐서 결혼 전에도 이런 저의 모습에 떠나가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연애를 시작하기 전까지 친해졌고, 연애를 시작할 타이밍인 것 같아 제게 고백했을 때 무심결에 밀어내거나 연애 중에 가차없이 끊어버리는 경우가 많아 끝이 좋지 않았습니다. 4일에서 4년까지 다양한 기간이 있었으나 늘 끝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다가 지금 남편을 만났을 때 첫 째 건이가 찾아와 우여곡절 끝에 결혼은 했으나 부부사이가 깊어지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우리 둘에게 집중하기도 전에 갑작스런 결혼에 분화하지 못한 가족들을 끌어들이게 되며 아이가 중심이 되기도 하다가 알코올 중독이 심해짐으로 더 가까워지지 못하고 끊어질 위기에 있었기에 친밀함을 누리고 유지하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라파 온지 5개월을 채우고 6개월로 들어서는 시점에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도 사람들과 처음 친해지던 친밀감 그 이상으로 들어가기가 참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하루종일 함께 마주하고 밥을 먹고 함께 일을하고 함께 예배드리며 기도하는데도 어떤 이와는 간단한 인사가 전부이며 어떤 이와는 건강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어떤 이에게는 농담만 하는 내 모습이 점점 불편해집니다. 아주 질긴 막에 가로막혀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더 들여보낼 수 없는 이 순간을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닐 것 같아 관계에 대한 어려움에 직면했음을 인식한 순간, 어떤 것이 변해야 사람들을 대하기가 어렵지 않은지 뒤돌아 보는 것이 너무 두렵습니다. 내 뒤에 번쩍이는 빛을 내며 존재감을 발산하는 그 상처는 무엇인지 돌아보고 싶지 않은 순간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오늘도 눈을 떠 마당에 나갔을 때, 자연이 내게 다가오는 모습을 관찰하게됩니다. 땅 속은 차갑고 하늘은 따뜻하며 초록 빛 풀 가운데 보라색, 빨간색, 노란색으로 물든 꽃을 보이고 나무에서 열리는 보리수와 체리, 자두, 오디를 보여주며 펄쩍 뛰는 개구리와 삐앗 하고 우는 새들의 소리를 들려줄 때 내가 자연에 속해있고 자연과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를 들여보내주고 나에게 많은 것들을 보여주는 자연처럼 나도 그런 사람이 되기를.

내가 어떤 사람인지 돌아보게 해주고 내 속에 있는 것들을 개념치 않고 한 명의 사람으로 땅에 서서 많은 것들을 누리게 해주는 자연이 곧 하나님임을 느낍니다. 많은 상처 속에서 변해가는 나를 흔들리는 풀 위에 세워두고 다시 나를 발견하고 보게하며 받은 상처를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은 나를 끝없이 하나님께로 들여보내주고 많은 것을 주시며 더 깊어지기를 원하시는 분임을 느낍니다. 하나님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보다 내게 어떤 것을 심어주셨는지가 중요하기에 내 삶으로 결국 피워낼 꽃이 무엇인지 알고 기다리시기에 잠깐 돋아난 잡초들과 잠시 시들해진 이파리에 집중하지 않고 다시 피워낼 꽃에 집중해야겠습니다.

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하나님 안에서 나를, 나를 열어 타인과 깊어지는 관계를 기대합니다. 내 안에 새로운 생각을 열어주시고 자연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앞에서 가로막는 염려를 기대로 바꾸어주시는 순간을 이곳에 남깁니다. 나의 흑색 염려들을 백색 기대로 돌이키시는 하나님이 곧 나를 뒤돌아보게 하셔서 상처를 마주하고 치유하여 가로막힌 담을 헐고 하나님과 타인을 대하는 깊어지는 사이가 되게 하실 것을 기대하며 그 분의 따뜻한 온기를 전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흑색이 흙 위에서 다시 변화되는 놀라운 일이 이곳에서 함께 누려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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