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중독 아내의 이야기 - 인정에 대하여 -

라파공동체2026.03.28 15:233

안식년을 맞아 목사님 사모님께서 따님이 계시는 프랑스에서 한 달을 지내고 돌아오신 주간입니다. 아기 새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듯 한 달간 두 분의 시선으로 본 것들, 경험하며 느낀 것들을 가득 담아 저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들을 듣는 것이 무척 기다려졌던 만큼 마음적으로 영적으로 배불러지는 것들을 느낍니다. 하나님은 늘 채우시는 분이셔서 두 분께도, 두 분을 통해 저희에게도 채움이 있는 시간을 허락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두 분의 일생을 통해 중독사역의 토대를 일궈오신 하나님께서 목사님 사모님께 안식년동안 깊은 쉼과 평안으로 가득 채워주시기를 소망합니다.



 



 목사님 사모님께서 공동체로 돌아오신 후 그간 있었던 일들에 대해 말씀해주실 때 제게 가장 먼저 들려주신 이야기는 두 분의 딸 지희자매님과의 일이었습니다. 프랑스에서 결혼생활을하며 두 명의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지희자매님은 10여년의 시간동안을 타국에서 지냈고, 안식년을 맞아 오랜만에 부모님께서 방문하시며 한 달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많이 긴장되어 보였다고 말씀하시던 목사님. 지희자매님이 처음 프랑스로 가겠다고 말했을 때 무척 걱정되었지만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고, 또 혹여 울며 돌아오더라도 그런 딸을 받아들일 준비까지 다 한 후에 보내줄 수 있었다고 말씀하신 사모님. 두 분을 통해 듣는 이야기는 제게 많은 생각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 곁을 떠나 낯선 땅에 적응하며 살던 시간동안 혼자 감당해냈을 자매님의 몫이 전해듣는 제게도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그 중 기억에 남았던 것은 아이의 도시락을 싸줄 때 이 나라에서 어떻게 보내는지 몰라 하나씩 다 물어가며 준비했고, 그 과정에서 아이가 혹여 혼자만 다른 것을 가져갈까 노심초사했던 어린 엄마의 고민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처음 아이들 도시락을 보낼 때에도 무척 고민이 많은데 타국에서 준비하는 것은 상상도 가지 않았습니다. 학부모 상담, 학부모들 모임은 한국에서도 어려운 일인데 타국에서 덩그러니 홀로 서서 그 몫을 감당해내는 어린 엄마였을 지희자매님의 고충들이, 어려웠다 말했던 그 세월이 공감되었습니다. 인천에서 충북 옥천으로 내려올 때에도 낯선 곳이라 쉽지 않았는데 말이지요. 또, 자매님은 자녀를 양육하며 힘이 들 때면 요게벳의 노래를 들으며 무척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자매님의 삶을 이해하신 목사님께서는 마지막 날 지희자매님을 향해 ‘지희야 정말 고생많았다. 그간의 세월이 느껴진다. 정말 잘했다.’라고 말씀해주시고 돌아오셨다고 합니다. 아버지로서 어른이 된 딸의 삶을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딸을 인정하게 되었다는 이 말씀을 들을 때 나의 내면 깊은 곳에서 무엇인지 모를 만족감이 느껴졌습니다. 나도 저 말을 듣고 싶고, 또 해주고싶다라는 막연한 느낌을 가지게 되었고 곧이어 막연했던 것이 삶의 실제가 되는 날이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사모님께서 카페 앞에서 한 형제님과 상담하고 계실 때의 일입니다. 2계사에 하얀 진돗개가 철망을 뚫고 들어가 닭들을 죽이며 난동을 피운 것을 남편과 첫 째 건이가 닭 사료를 올려놓다가 마주한 것입니다. 하얀 진돗개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닭들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물어 뜯는 행동을 하며 한 동안 지치지도 않고 날뛰었다고 합니다. 진압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판단한 남편은 진돗개를 가둬두기 위해 2계사 문을 꼭 닫으며 건이에게 밑에가서 사람들에게 알려달라고 했고, 건이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울며 뛰어 내려와 목사님을 향해 “우리 아빠 살려주세요! 위험해요! 도와주세요!” 하고 외쳤다고 합니다. 그 후 치유공동체 건물로 내려와 밭에 있던 이모에게 “우리 엄마 괜찮을까요?” 물으며 눈물을 뚝뚝 흘렸고 이모가 손을 잡고 집으로 데려다주었을 때에야 저는 낮잠에서 깨어나 눈물이 가득한 건이의 목소리를 통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삼지창을 들고 2계사로 달려가셨고, 남편은 막대기를 들고 뒤 따라갔으나 진압할 상태가 아닌 것을 보고 다시 내려와 119에 신고하였고 구조대원 두 분이 오셔서 마취총 두 대를 쏘고 나서야 진돗개는 주저앉아 가만히 있게 되었습니다. 목에 목줄을 치렁치렁 달고있던 진돗개를 보며 구조대원 분은 목사님을 향해 ‘원래 진돗개가 충성심이 굉장히 강한데 이런 상태로 봐서는 집이 없는 떠돌이 개인 것 같습니다. 닭들이 많이 죽었던데 손해 배상은 받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라고 말했고 그렇게 휘몰아친 자리만 남긴채 진돗개는 떠났습니다. 



 이 일은 제게 그저 지나가는 헤프닝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깊이 생각할 겨를 없이 우는 아이를 달래고 놀랐을 남편을 위로하며 맞이한 주일, 목사님의 시선으로 바라본 것들을 예배시간에 들려주실 때에야 그저 지나가는 헤프닝도 깊이가 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고 치유의 조짐이 될 수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예배시간에 목사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제 진돗개가 난입해서 구조대원을 불러 데려갔고 닭이 25마리정도 죽었어요. 준 형제와 건이가 처음 발견했고 건이가 막 울며 뛰어 내려와서 자기 아빠 살려달라고 하는데, 얼마나 애절하던지. 진돗개는 목에 목줄을 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본 구조대원이 원래 진돗개는 충성심이 강해서 아무리 먼 집이라도 찾아가는데 이 모습이라면 떠돌이 유기견일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때, 저는 우리 중독자들이 생각났어요. 중독자들은 돌아갈 집이 없는 사람들이지요?  우리는 이 진돗개와 같은 삶을 살았어요.” 나와 같은 사건 속에 있었음에도 목사님께서 들려주시는 이야기는 전혀 다른 사건인 것 같았습니다. 나는 그저 진돗개가 닭을 죽인 일로 생각했지만, 목사님께서는 그 속에서 중독자들을 생각하셨고 중독으로 헤집어진 가족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중독가운데 있을 때 나의 남편은 이 진돗개와 같았습니다. 부모님의 파산, 여동생의 죽음, 어린시절부터 나의 뜻 없이 부모님의 뜻에 맞춰 살아오며 억합했던 것들을 술을 통해 위로받고 달래며 살아오다 중독에 접어들 무렵 저를 만났고, 결혼생활을 하며 양가부모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과 남편으로서 아내의 기대에도 미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며 나날이 술에 의지해 살았습니다. 남편의 중독은 그렇게 깊어져만 갔습니다. 그 모습은 목줄이 달린채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는 진돗개와 같아서 가는 곳마다 반기는 이가 없었고 주로 만나는 이들이 교회사람들이었던 저는 남편이 술을 마신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만으로 진돗개가 닭장을 들쑤셔놓듯 내가 있는 자리에 폭풍이 몰아치는 듯 한 난처함에 휩싸이곤 했습니다. 술에 취해 눈이 풀리고 비틀거리며 냄새가 가득한 남편이 다녀간 뒷 수습을 모두 제가 맡아 하기 일쑤였습니다. 남편을 가리기 위해 더 열심히 교회 일에 몰두했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남편의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진돗개는 닭장을 뚫고 들어가 닭 25마리를 죽이고 끝났지만 남편은 술에 의지해 살며 자신을 죽이고 주변 가족들을 죽이며 살았고 저는 늘 그 자리를 숨기기에 급급하여 남편을 제지할 방법도 희망도 없이 살다가 라파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남편이 라파에 입소했을 때만해도 여기서 재발하면 두 번다시 집에 들이지 말아야지, 여기에서 잘 적응하는 것만 보면 이혼해야지 생각하며 마치 난동을 피운 강아지를 안락사시킬 날을 잡아 기다리듯 저 또한 남편을 떨어뜨려 놓을 궁리와 내 인생에서 없이 만들 궁리를 하며 지냈습니다. 술 취해 내 앞에 나타날 것이라면 차라리 내 인생에서 사라져라, 이 땅에서 없어져 버려라, 술에 절은 남편 그리고 아이들에게 술에 절은 아빠를 보여주느니 아빠가 죽고 없다고 하는 것이 훨씬 그럴싸하겠다라고 수없이 생각했습니다. 당신만 아니면 나도 그럴듯하게 살아갈 수 있노라고 생각에서 그치지 않고 악담을 퍼붓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남편은 돌아갈 집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아이들은 구멍뚫린 닭장 안에서 벌벌 떠는 닭들처럼 무너진 가정을 바라보며 어디에도 기댈 곳 없이 살았습니다. 중독으로 헤매는 아빠와 가정에 마음을 두지 못하고 일에 몰두하거나 원가족의 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엄마를 둔 나의 아이들은 어쩌면 마음 속에서는 이미 부모를 잃은 고아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10개월의 시간을 잘 보내고 있던 남편에 대하여 실오라기 같은 신뢰가 생겨갈 즈음, 중독자가 치료되기 위해서는 가족 치료가 필수적이며 준 형제의 가족은 부모님으로부터 분화도 필요하기에 내려와서 함께 치료받는 시간으로 1년을 지내면 좋겠다고 말씀해주시는 것을 듣고 작년 12월 이사를 했고 그 때만해도 건, 단이는 늘 불안한 상태였습니다.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울며불며 엄마, 아빠를 찾았고 무척이나 충동적이었으며 목사님 사모님과 상담이라도 할 때면 건이는 화장실 가는 척, 물마시는 척 내려와 또 아빠에게 무슨 일이 있지는 않은지 혼나는 것은 아닌지 귀를 기울이며 염탐했고, 어른들의 눈치를 보며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혼나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6살임에도 불구하고 떼를 쓰고 울 때면 은연중에 엄마 아빠를 향해 비난의 말과 원망이 섞인 말들을 소리치며 표현했습니다. 부부사이 또한 쉽지 않았습니다. 내 마음 속 헤집어진 것들이 공동체에 찾아오는 중독자 형제들을 볼 때마다 건드려져 남편이 또 저렇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 그동안 당했던 억울함이 불쑥 올라와 참지 못하고 남편에게 비난의 말들을 쏟아내느라 온전한 대화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진정으로 우리 가족에게 안정적인 날이 하루라도 찾아올까? 남편의 상처와 중독에 젖은 날들, 내가 받은 상처와 내가 준 상처들, 아이들이 받은 상처들이 아무는 날이 올까? 제게는 이런 고민이 멈추지 않는 날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엉망진창이던 우리에게 이번 사건을 통해 목사님께서 건이에게 아빠, 엄마가 찾아졌다고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 일어났다니, 무슨 일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 때 목사님께서 말씀해주시기를 부모에게 상처가 있는 아이들은 이번같은 위급한 상황이 되었을 때 무의식 중에 부모가 차라리 개에게 물렸으면, 부모가 없어졌으면 바라는 경우가 있기에 도움을 요청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 요청해야하는 상황 사이에서 안절부절 못하거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건이는 아빠와 한 마음, 한 몸이 되어 뛰어내려오며 울며불며 소리질러 도움을 요청하고, 엄마의 안전을 걱정하며 눈물 흘려 집으로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 처음 이곳에 왔을 때보다 굉장히 좋아진 모습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는데 눈물이 쏟아지며 아이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이 밀려왔습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늘 빈자리를 주고 흔들리는 모습만 보여주었는데, 아이가 바란 것은 아빠 엄마가 함께 살고 행복하게 지내는 일상일 뿐이었다는 것을, 그것이 최고의 치료였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엄마로서 나는 아이에게 주는 것 없이 늘 받는 것만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위급한 상황에서 내달려 아빠를 위해 소리친 건이. 나의 아빠를 지켜야겠다는 굳은 마음. 그 순간 잠에 빠져 아이의 소리를 듣지 못한 내게 원망하지 않고 울음이 가득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하며 나의 안전을 확인하고 다시 2계사로 올라가 끝까지 아빠 옆을 지키고 서있던 건이. 언제나 어리고 아주 작은 줄만 알았던 나의 아이는 내가 모르는새 영적으로 무디고 상처에 갇힌 부모를 깨우고, 부모를 깨닫게하며, 부모를 지키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음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모가 준 상처 속에서 하나님의 치유하시는 손길이 아이를 살아나게 하셨고, 아이에게 집을 찾아주셨고, 부모가 있게 하셨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하나님께서 찾아주신 것들 속에서 자란 아이는 어느덧 자신에게 찾아진 집과 부모를 다시 잃지 않기 위해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무디고 무딘 나에게 들려주신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 비로소 나의 아이에게 집과 가족이 찾아졌음을, 나의 남편에게도 돌아갈 집이 생겼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나는 언제나 그 자리를 뱅뱅 맴돌고 있는 듯 하지만 하나님은 그 속에서 하루도 쉬지 않으셨고, 우리에게 잃은 것들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아셨으며 나와 남편, 아이들에게 그것들을 찾아주기 위해 매일같이 역사하셨음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니 건이를 달래고 끝낼 것이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에게도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표현하고싶어졌습니다. 돌이켜보면 나는 아이에게 단 한 번도 ‘너 덕분에 알게 되었어. 아주 큰 도움이 되었어. 이렇게 해줄 때 정말 고마웠어.’ 라고 아이를 인정하는 말을 들려준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가 어리기에 늘 내가 무언가를 주었지 아이에게 받았다고 생각하지는 못했습니다. 혼전임신으로 내게 찾아온 아이를 늘 부정하고, 이렇게 만난 우리는 잘못된 것이라며 남편을 부정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사모님을 통해 지희자매님이 프랑스로 가겠다는 결심을 들었을 때 혹여라도, 아주 혹여라도 울며 돌아오면 그것까지 내가 받아들이겠다 결심하고 보내주셨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잘 아셔서 내가 선택할 죄들을 알고계시기에 어쩌면, 내가 울며 돌아올 것을 감안하고 받아들일 준비를 마친 상태로 나를 보내주셨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명백히 하나님의 법을 위반한 내가 울며 돌아올 때에 나를 받아들여주셔서 내가 있을 자리를 라파를 통해 마련해주시고 이곳에서 다시 처음부터 내게 잃은 것들을 찾아 하나님 원하시는 삶을 살도록 해주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되었습니다. 늘 죄에 무겁게 눌려있던 나는 내 자신을 인정할 수 없었는데, 사모님을 통해 듣는 그 말이 죄인된 나를 하나님께서 인정해주는 듯 했고 남편과 아이 모두 하나님 섭리 안에 있었지만 죄악된 길로 만남을 가질 때에 하나님은 우리 두 사람이 울며 돌아오더라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계셨구나, 우리 모두 잘못되지 않았구나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처음으로 죄책감에서 벗어나 내 자신을, 나의 남편과 아이를 죄에 눌린 시선이 아닌 인정되어 받아들여진 수용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감격에 가득찬 상태로 남편에게, 아이에게 인정이 담긴 사랑의 말을 해봅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소꿉장난하듯 장난감 밥을 차려놓고 부모님 흉내를 내는 기분이지만, 목사님 사모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을 따라 어린 엄마가 어린 자녀에게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수준에서의 인정부터 따라해보려 합니다. “건아, 덕분에 아빠가 안전할 수 있었어. 엄마가 잘 있는지 확인하러 와줘서 고마워. 우리를 지키기 위해 달리고 알리느라 고생했어. 정말 고마워. 그리고 너를 만난 것이 내 인생에 가장 큰 축복이야.” 그리고 단주를 하며 쉽지 않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나의 남편에게 “여보 고마워. 돌아갈 집을 함께 만들어가도록 잘 단주해줘서, 여기까지 오느라 정말 수고많았어. 나의 남편으로 함께 해줘서 고마워.” 인정의 말을 연습하며 들려주는 사람이 되어봅니다. 이 말을 듣자 남편은 부끄러운듯 뿌듯한 표정으로 나의 손을 꼭 잡고 고맙다고 해주었고, 건이는 어색해하며 민망한 웃음을 지었으며 단이는 아주 당당히 또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각양 각색인 나의 가족. 그렇게 나만의 가족, 나만의 집, 나만의 삶을 인정해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나의 하나님 아버지. 내가 어떠한 길을 가든 하나님 안에 있음을 알려주시며 나의 죄된 모습마저도 인정해주시고 공감하셔서 돌이키기까지 함께 해주시는 나의 아버지. 늘 나를 받아주시는 그 분께 인정받음이 최고의 선물임을 묵상해봅니다. 나는 인정받은 하나님의 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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