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흔적을 현재의 삶에서 마주할 때

라파공동체2026.03.28 15:233

올 여름 태풍은 제 갈길을 한 번에 정하지 못했는지 유독 오락 가락하는 비가 잦았던 것 같습니다. 도심 속에서는 태풍의 소식도 건물 안에서 듣고 바라볼 때가 많았는데 시골에서 살다보니 비를 마주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밭 일을 하다가도, 계사를 오가다가도, 빨래를 널다가도 손등과 코에 톡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는 일이 잦았습니다. 아침에 일기예보를 보았음에도 속수무책으로 비를 마주할 때에는 한숨섞인 웃음을 짓게 됩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 앞에서 사람은 방법을 생각하기 마련인데 비를 마주하며 다음을 고민했듯 한 주간 제 삶에서도 문득 마주하게 된 여러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어찌할 수 없게 마주하는 모든 일들의 다음을 고민할 때 하나님 안에서 풀어가는 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한의원에 가면 막힌 혈을 뚫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혈자리가 막히면 아프다는 그 이야기는 우리의 내면에도 동등하게 적용되나봅니다. 공동체를 살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흘러야할 건강한 마음들이 온전히 주고받아지지 못하고 부정적 마음들을 거친 언어로, 눈빛으로 던지듯 건네주며 서로의 관계가 꽉 막혀버릴 때가 있습니다. 도심 속에서는 서로 집으로 돌아가 보지 않을 수 있지만 공동체는 매일 매 순간을 마주해야하기에 막힌 것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곪아버립니다. 그래도 공동체 내에서 다른 형제 자매들과의 관계가 막힌 것이라면 집이나 방으로 들어가 잠시 생각을 식힐 수 있고 살짝 피하며 거리를 두다 개인의 생각을 정리하고 마주할 수 있는데 한 집을 사는 남편과의 사이가 막혀버리면 급하게 먹다 체하기라도 한듯 모든 일상에 지장이 생깁니다. 



 늘 남편의 술 문제가 우리 사이를 막는 장애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라파공동체에서 8개월을 살며 술 마시지 않는 남편과 지내다보니 남편만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가 장애물이 되는 경우를 보게되었습니다. 나의 문제는 대게 어릴 적 받았던 상처로부터 비롯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공동체 형제 자매를 통해 어릴 때가 문득 스쳐 투사되거나,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이 그 사람에게 투사될 때, 받고싶은 기대가 좌절될 때 등 어려 요인으로 상처가 건드려지게되고 전에 풀지 못했던 상처는 언제고 되살아나 현재의 삶에 장애물이 되곤 합니다. 최근 제가 가진 문제는 목사님, 사모님께서 프랑스 한 달 여행을 마치고 공동체로 돌아오신 후부터 두 분을 부모님으로 투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인정 받고싶은 마음, 칭찬 받고싶은 마음, 친밀하고 싶은 마음들이 내 안에 들어온 것은 두 분의 따님 이야기를 들었을 때였습니다. 목사님, 사모님과 따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느새 내가 딸이라도 된 듯 따님과 동일한 마음으로 목사님, 사모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어릴 적 부모님께 받고싶었던 것들이 누구에게나 있을텐데 한 번 드러난 상처는 가라앉을 줄 모르고 둥둥 떠 숨길 수 없이 나의 내면위로 올라왔고 들킬까 염려되어 아무렇지 않은 척 지냈지만 감당되지 않았던 마음을 공동체 분들에게는 숨기고 집에서 남편에게만 말하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둥둥 떠오른 내면 위의 그 욕구들은 제 스스로 생각하기에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고 느껴지는 것이 있는데 무엇인지 자각하지를 못했고 주변 이들이 이 욕구를 알아서 해결해주기만을 바라게 되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아무도 모르게 하고싶은 마음에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 했습니다. 그러다 불똥이 튀기를 사모님과 공동체 다람쥐 자매님에게로 향했는데 두 분이 친밀하게 대화를하면 내 마음에 둥둥 뜬 욕구들이 요동치듯 파도가 되어 집안으로 내달려 들어가 남편의 귀에 비난의 말로 흩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남편은 제가 내뱉는 말들을 가만히 듣다가 내가 내뱉은 파도같은 말들이 주변을 둘러 싸고 해결해줄 수 도, 가만히 듣고만 있을 수도 없는 상태가 되어 마치 무인도에 갇힌 듯 나의 비난의 말들 속에 둘러 쌓여 공동체를 떠나야 할까? 여기에서 저 사람들에게 왜 초림이 마음을 모르느냐고 따져야할까? 고민하는 사이 점점 더 서 있을 자리조차 없는 무인도에 갇힌 기분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당시 제가 남편에게 내뱉은 파도들은 내가 엄마에게 딸로서 받고싶은 인정, 칭찬, 친밀감의 좌절에서 오는 것이었고 사모님과 다람쥐 자매님이 대화하는 모습만 보아도 내가 더 인정받고자, 내가 더 칭찬 받고자, 내가 더 친밀하고자 하는 욕구들이 몰려와 사모님은 왜 나를 그렇게 대해주지 않느냐고, 자매님은 왜 일을 많이 하느냐고 사실이 아닌 것들을 붙잡고 이불 먼지털듯 내리친 말들은 아주 거친 파도가 되어 남편을 잠식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제 마음 속 상처로부터 나온 인정받지 못했던, 칭찬받지 못했던, 친밀하지 못했던 순간들의 어린 초림이였습니다. 그렇게 무인도에 갇힌 남편은 헤어나올 배를 만들기 위해 욕구라는 배를 만들게 되었고 그 욕구는 이 비난들로부터 벗어나 안전지대로 가고싶다는 마음이 강해지고, 그 마음은 내가 빨리 평범한 사람들처럼 되어야지라는 생각으로 지배되게 만들었고, 평범한 사람이라면 공부도하고 일도 해야하니 그것들을 하기 위해 1년 6개월간 없었던 핸드폰을 만들어야겠다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남편이 올라탄 욕구의 배는 해결할 수 없는 파도에 대한 저항이요, 무력감에서 오는 해소의 방법이었으며 바람이 없이도 잘 흘러간 배는 핸드폰 항구에 도달하여 그간 억압했던 최신 기기와 sns속 짧은 영상들을 보고자 하는 욕망의 도시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상처와 불안에 휩싸인, 한 달 여간 비난의 말만 쏟아놓는 저를 붙잡고 1년 6개월이 되었으니 핸드폰을 만들고싶다, 목사님께서도 허락해주셨다, 내가 핸드폰 만들고 정상적으로 살테니 우리 나가자, 이 곳에서 벗어나면 너도 비난의 말을 그칠테고 나도 편안해질테니 우리 핸드폰부터 만들자. 라는 합리화로 무장하였고 저 또한 그 말들에 저항할 힘 없이 동행하여 핸드폰 가게에서 가장 최근에 나온 최신 핸드폰을 사는 일까지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핸드폰을 사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는 무척이나 싸웠습니다. 남편은 게임, 도박의 전적이 있었기 때문에 저에게는 불안이 자극되었고, 핸드폰을 하는 것은 좋으나 벌이가 없는 우리에게 최신 핸드폰은 무리이지 않았는가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저의 말에 남편은 이미 굳어진 마음으로 대응할 뿐이었습니다. 중독으로 가로막혔던 부부사이는 서로를 늘 중독의 담장을 통해서만 바라보고 대화 또한 변화없이 비난의 말로 나갔기에 이번에도 차 안에서 오가는 말들이 진전없는 감정풀이의 말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핸드폰 구매에 대하여 목사님, 사모님께 말씀을 드리자는 제게 남편은 주저하며 내가 알아서 때가 되면 말하겠다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고 저는 점점 마음 속 욕구와 불안으로 파도가 거센 마음을 가진채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부부 상담의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상담은 늘 장애물에 가로막힌 우리에게 찾아오는 불도저와도 같습니다. 남편과 나 사이, 공동체 형제 자매와 나 사이에 가로막힌 장애물을 한 번 자각하게 되면 좀처럼 넘어설 생각을 하기가 힘이듭니다. 그런 저에게는 상담 시간을 통해 막힌 자리가 뚫리는 경험을 자주 했기에 상담시간이 무척 좋습니다. 이번 일을 통해서도 남편과 나 사이에 막힌 담이 분명 존재했으나 구체적인 언어로 설명되지 않았기에 서로 답답한 생활을 하던 중 찾아온 상담은 공사시작을 알리는 속 시원한 구조소리와도 같았습니다. 자리에 앉은 저희에게 목사님께서 침묵을 깨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핸드폰을 사고싶다고 밥 다먹고 올라가는 내게 급히 달려와 말할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최신 핸드폰을 샀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 문제에 대하여 우리는 철저히 검토하고 넘어가야해요." 마치 공사 전 설계도를 들여다보며 신중히 작업지시를 내리기 전의 모습과 같이 목사님, 사모님께서도 신랑의 게임, 도박 욕구에 대하여 더 천천히 살펴보고 신중을 가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속으로 나의 불안이 상담시간을 통해 해소되겠구나, 남편의 중독문제에 대하여 다루게 되면 핸드폰으로 인한 불안도 줄어들겠구나! 하는 속시원한 생각 뿐이었습니다. 그런 저의 생각을 깨는 말이 곧 이어 들려왔습니다. "준 형제가 달려가서 핸드폰을 사기까지 과정을 저는 중요하게 봅니다. 사람은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 앞에서 갈등하고 고민하기 마련인데 중독은 그 때 대안으로 찾는 것이 중독적인 일입니다. 이번에 준 형제가 핸드폰에 대한 욕구가 올라가기까지 저는 둘 사이에 큰 역동이 있었을 것이라고 보고 그 시작은 자매님에게서 왔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준 형제, 요 근래 자매님에게서 공동체를 비난하는 이야기를 듣지는 않았나요?" 남편은 가만히 고민하다가 솔직한 이야기들을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네, 요즘 과거 상처에 대해서도 많이 말하는데 그 때 비난하는 말을 참 많이 했습니다. 솔직한 심정으로 과거 아내를 아프게했던 이들에게 무척 분노할 만큼 아내가 비난의 말을 많이 했고, 그 이야기들이 공동체에 대한 불만으로 쌓인 것도 사실입니다. 들으면서 저는 아내가 행복해야하는데 그러려면 공동체를 나가야 하나? 아내에게 불만이 쌓인 것을 내가 어떻게 해소해줄 수 있지? 라는 생각으로 온통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들었던 사모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사실은 두어달 전부터 느끼고 있었어요. 자매님이 무척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는데 과거 상처로부터 오는 마음이 제게 영적으로 느껴졌고 그것이 압박감으로 다가왔어요. 마치 제게 무언가를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 같았는데 저는 그것들을 해줄 수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해줄 수 없는 내 자신에게 화도났었고,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인지 몰라서 답답한 마음에 자매님을 생각하면 자다가 일어나서 기도할 때가 종종 있었어요." 저는 처음 듣는 이야기에 당황한 마음도 잠시, 나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해주고 나눠주는 분위기 속에서 진중히 들으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떤 아픔이 있었는가? 이 아픔으로 인해 파생된 일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입을 열었습니다. "사실 이곳에 찾아오는 형제 자매님들의 부모님을 보면 박탈감을 많이 느낍니다. 중독자들도 부모님이 찾아오고, 전화를 하고, 만나면 어떻게 지냈는지 관심이 많은데 그 때마다 나도 부모님이 있는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하다보면 어릴 때부터 느꼈던 서운함이 불쑥 올라와 저를 괴롭게 했습니다. 다 지나간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도 칭찬받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고, 친밀하게 지내고 싶었던 모든 순간에 저는 박탈당한 마음을 느꼈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글을 쓰는 지금에서야 문장으로 정리가 되지만 많이 울고 서로 대화하며 알게된 저의 본심이었습니다. 다 지나간 일이라고,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묻어두고 어차피 울어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바라기를 그치고 혼자 묵묵히 삭혔던 마음이 불쑥 올라오고 있었고 이로인해 주변 사람들에게 무척 부담을 주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이 말이 상담 현장에서 문장으로 정리되기까지 목사님, 사모님, 남편과 많은 대화를했고 사모님과 남편의 눈물 속에서 저도 어린 나를 위해 울어줄 수 있게되었습니다. 



 진정이 된 후 목사님께서 정리해주시기를 "그래요. 어릴 때 상처가 올라오면 이런 일들이 생기니까 그 때마다 내가 바라는 욕구는 무엇인지를 잘 파악해야하고, 그것들을 비난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표출하지 않도록 자매님이 마음을 잘 관리해야해요. 그리고 준 형제는 이곳에서 제가 예수의 단순한 삶을 따라 살자고 말했고 검소하게 자족하는 삶에 대하여 말했는데 수입이 없는 이 시점에서 최신 핸드폰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들이 준 형제 또한 욕구를 적절히 조치하지 못한 중독적 행위의 발판을 놓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핸드폰을 갖다 버리든지, 다시 반품을 하든지, 교환을 하든지 처리를 하고 본인 수준에서 적절한 핸드폰을 소지했으면 합니다. 우리 생활에 전화만 되면 되는 것을 그 이상의 기능이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상담시간 동안 남편도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다시 본인의 욕구가 화산 폭발하듯 한 번에 분출된 일에 대하여 중독의 발판이 될 수 있었음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현재 핸드폰을 처리하기 위해 고민하다 반품되지 않고 교환되지 않는 때라 검소한 핸드폰을 사용하시는 아버님과 핸드폰을 바꾸는 것으로 해결하기위해 아버님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전히 미숙하지만 다시 원점에서 시작하라는 목사님 말씀에 따라 핸드폰이 없는 시점에서 시작하고, 다시 검소한 선택을 하는 길로 들어서게 되어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 또한 과거 상처를 돌아보고 원점으로 돌아가 상처를 마주하고 그 상처를 위로하여 현재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각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도움을 구하려 합니다. 나의 어찌할 수 없는 부분들을 마주하고 해결하도록 도우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어찌할 수 없는 부분들을 마주하거나, 너무 부정적인 쪽으로 많이 기울어버린 일들 앞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원점으로 돌아가기를 애쓰며 다시 하나님 안에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기도로 나아가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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