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시대 공동체적 원안은 무엇인가?

라파공동체2026.03.28 15:233

*고춧가루 판매를 위해 마을에서 구입한 고추를 다듬었습니다. 꼭지를 떼고 손으로 살살 겉을 닦아 방앗간에 가져다 주니 고운 가루가 되어 나온 고춧가루를 보며 한 작물에서 여러 모습이 생기는 것을 봅니다. 초록 고추가 빨갛게 익고 고운 가루가 되듯 나도 때에 맞게 무르익고 여러 모습으로 발현되기를 기대해봅니다. 우리 모두가 나날이 무르익어가기를 소망합니다.



8월이 깊어갈 즈음 한국 공동체 협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사모님, 다람쥐 자매님, 남편과 아이들까지 한 차를 타고 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언제즘 도착할까 설레는 마음으로 가기를 3시간 가량 지났을 때 사람들이 북적이며 모여있는 마당을 보고서야 ‘이제 시작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들어선 입구에서 등록을 마치고 숙소로 가는 길, 여러 짐 보따리를 들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분들의 목에는 저와 같은 명찰을 메고있었는데 이름 밑에 소속된 공동체가 적혀있었습니다. 라파, 사랑방, 예수원, 없이있는마을, 한결, 샬롬 등 여러 공동체들의 이름을 접하며 저 공동체들은 어떤 곳일지 궁금증이 커져만 갔습니다.



숙소에 도착하니 방 한 곳에서 6명이 자도록 이불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베란다 바깥으로 보이는 바닷가가 신기했고 내가 누울 자리에 이불을 펴고 짐을 내려놓음이 모든 일정의 시작이었습니다. 개회예배에 참석할 때는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따로 있어서 아이들을 보내고 어른들이 집중하여 들을 수 있어 무척 감사했습니다. 아이들이 놀 곳은 옥상에 있었는데 바닥에 잔디가 깔려있고 축구 골대가 있으며 왼쪽에는 옥탑방같이 비밀스런 장소가 하나 있었는데 그 안이 아이들이 머물 곳이었습니다. 들어서자마자 하하 웃는 목소리가 기분 좋았고 공동체에 모여 살던 아이들이라 그런지 서로 낯설어하지 않고 금새 어울리는 모습이 참 새로웠습니다. ‘너 어디에서 왔어?’ 라고 묻는 질문은 집이 아닌 본인들이 소속된 공동체를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첫 째 건이가 ‘나는 라파’라고 대답을 하며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내심 깜짝 놀랐습니다. 아마 1층에서 등록할 때 ‘어른들에게 어디에서 오셨어요?’ 묻는 것을 듣고 아이들끼리도 따라서 등록을 하는 모양입니다. 건이가 그 순간을 기억했는지 라파라고 대답하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아이들을 뒤로하고 예배당으로 모이러 가는 길, 이곳에서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서로의 모임이 하나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아이니까 어른들이 모일 때면 늘 바깥에서 놀아라, 조용히 해줄래? 외에 다른 것을 몰랐던 저는 아이들이 존중받고 아이들이 보살펴지는 이 순간이 참 감격이었습니다. 우리 공동체로 돌아가면 나도 저렇게 아이들을 해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첫 날 오후 지역 공동체끼리 모임을 갖기 위해 장소로 모였을 때 충청도에는 6개 가량의 공동체가 모였습니다. 저희 라파를 시작으로 샬롬, 한결, 교회, 대학교 교수 부부 등 각 공동체들이 소개를 하는 시간이었고 라파는 중독 치료 공동체로 중독자들을 잠시 데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1년의 치료기간 동안 공동체로 살며 상담과 노동, 정신분석 공부를 통해 가족병인 중독을 치료한다라는 설명을 마칠 때 자랑스러운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마치 아이가 고심해서 그리고 칠하고 잘라 붙인 작품을 내보이듯 8개월을 사는 동안 나의 빈 도화지에도 라파공동체를 통해 여러 그림들이 그려졌는지 사람들 앞에서 내가 속한 곳을 소개할 때 무척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소개를 들으며 그들이 그려가는 그림을 보고 귀감을 얻는 시간이었습니다. 교육, 예수님을 따르는 삶, 섬기는 삶 등 다양한 관점에서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살아가는 자리들이 참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아름답다에서 아름은 나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아름답다는 나 답다라는 뜻인데 나 다움을 알기 위해서는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각자 저마다 삶에서 만난 창조주 하나님을 통해 나를 알고 나 다움을 공동체에서 실현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기쁨으로 벅찼습니다. 세상 속에서 나를 잃지 않고, 세상 다움이 나 다움으로 착각하지 않고, 예수를 따르는 삶을 타협하며 살지 않기 위해 공동체라는 대안으로 모인 이들을 만나니 평안했습니다.



이튿날 새벽 묵상 때 예수원에서 주관하여 예수원 스타일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중 어딘가 익숙한 느낌을 받았는데 예수원은 라파의 윤성모 목사님께서 가서 보시고 많은 것을 느끼셨던 곳이라는 것이 생각나 괜스레 친근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가 가서 보고 듣지는 않았지만 이 시간을 통해 대리 경험할 수 있어 좋았고 방문을 기약하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중 시편 103편을 묵상하며 12절에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라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거룩하신 하나님은 내게 있는 것들이 변질되고 손상되지 않기를 원하시는구나 묵상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를 변질되게하고 손상되게 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고민해보았습니다. 사람은 변질되고 손상되기 쉬운 것을 알기에 공동체라는 대안을 가지고 모였는데 그 공동체 안에서도 끊임없이 관리되어야 할 부분은 상처와 죄로부터의 분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각 사람이 가진 죄가 예수님 이름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 우리는 손상되고 공동체가 변질되며, 각 사람이 가진 상처가 치유되지 않을 때 또한 공동체가 손상되고 변질되어 갑니다. 이것들은 내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일이기에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와 상처를 멀리 옮기시는 예수님만 따라 살아갈 수 밖에요. 그 분만이 멀리 옮겨 나를 안전하게 하시고 지키시며 옮기는 것 뿐만 아니라 해결까지 담당해주시니 참 든든한 마음을 느꼈던 묵상이었습니다.



이후 오후 시간에 놀이에 대하여 강의해주시는 전국재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곰돌이 푸와 닮은 목사님은 청소년들에게 잃어버린 놀이를 찾아주고 싶었고 우리에게도 놀이는 매우 중요하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손으로 따라 하는 놀이, 몸으로 하는 놀이를 함께 하며 부끄러운 웃음이 즐거움으로 변할 때 끝내기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그래! 술 마시지 않고도, 어둡지 않고도 이렇게 어른들끼리 즐겁게 놀 수 있는데! 놀이는 삶의 우선순위에서 저 뒤로 밀려나 하찮은 취급을 당하기 쉬웠기에 내 삶의 가장 높은 곳까지 끌어올리려면 꾸준히 즐거움을 누리고 시도하는 것이 제일인 것 같아 공동체 협회가 끝난 지금도 고민하는 중입니다. ‘오늘 뭐 하고 놀지?’ 남편과 아이들과 공동체 형제 자매님들과 뭐 하고 놀지 궁리하는 생활이 익숙하지 않지만 찬양하며 율동하는 것도, 고추 꼭지를 떼며 입을 쉬지 않고 대화하는 것도, 음료를 준비하여 건네주며 던지는 농담도, 혼자 앉아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것도, 지나가는 벌과 새를 보며 닭의 울음소리를 듣는 것도 제게는 다 놀이가 되어갑니다. 나 혼자 놀고, 타인과 놀며 퍽퍽한 삶이 부드러워지는 것들을 느낄 때 치료가 된다는 사모님의 말씀이 맞고도 맞는 것 같습니다. 글을 쓰며 반성하는 부분은 엄마 손 잡고 마을 한 바퀴 돌고 싶다는 건이의 말을 3일 째 미루고 미룬 것입니다. 내일은 꼭 해줘야겠습니다. 아이가 내게 같이 놀기를 요청했는데 응해주지 않으면 언젠가 엄마는 놀이 대상에서 제외되고 말 것 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위기입니다. 놀이를 요청하는 아이에게 한 번에 알겠다고 대답하기가 이렇게 어렵다니! 손 잡고 동네를 돌며 아이가 하는 말을 듣고 눈을 맞추고 대화하는 시간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엄마가 되어야겠습니다.



그 다음 시간은 라파 윤성모 목사님의 중독과 치료문제에 대한 공동체적 대안을 주제로한 강의였습니다. 목사님께서는 현 시대에 도시가 얼마나 세속화 되어가고 있는지, 자본주의가 시장을 장악하며 사람들의 마음 속 신은 하나님이 아닌 자본주의 그 자체가 되어가고 있음이 무척 위기이며 이 속에서 끊임없는 경쟁을 통해 좌절된 사람들이 중독의 길로 빠지는 것이 얼마나 쉬운 세상인지 알려주셨습니다. 말씀을 뒷 받침하는 증거는 라파 공동체에 오는 형제 자매님들입니다. 알코올, 도박, 쇼핑, 게임, 성 중독으로 삶의 전반이 무너져 이곳에 오시는 분들은 모두 경쟁 구도에서 좌절되고 억압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편리함을 욕구를 채우는 도구로 사용하며 중독이 되어간 분들이기에 이들의 상처는 기독교적 관점과 상담, 정신분석을 통해 무의식과 의식 전반을 치료받고 회복되어가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마치자 질문이 많아졌고 주변에서 중독자 문제를 겪는 사례를 말씀하시며, 진짜 회복이 가능한지를 묻는 이들에게 목사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 가능합니다. 저희 공동체에서 지내며 1년-20년 회복한 분들이 주일에 교회에 오시거든요. 이 분들을 회복하게 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치유받는 우리들의 이야기에 깊은 울림이 전해지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 날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이곳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기억하며 영성 기도에 대한 강의를 듣는 중 디아코니아 언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기도는 잠심 상태에 들어가야 한다.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내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문제와 걱정은 저 멀리 두고 바라보며 깊이 고요한 자리까지 내려가야 한다는 그 말씀을 들으며 나의 기도를 돌아보았습니다. 입에서 쉬지 않고 내뱉는 감정 토로의 소리를 기도라고 칭하며 다 말하고 바로 일어서던 저는 잠심 상태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진중히 앉아 생각과 몸을 정돈하고 하나님 앞에 집중하는 그 시간이 제게 가장 필요한 시간인데 늘 기다리지 못하고 앉는 척만 하다가 하나님께 ‘됐죠? 이제 가도 되나요? 이건가요? 저건가요? 맞나요?’ 조금히 질문하던 나의 모습. 한 가지 죄나 상처가 올라오면 진중하게 기다리고 인내하고 묵상하여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알아가지 않고 내 힘으로, 사람들의 생각을 종합하여 나아가던 내 모습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 아님을 알게되었습니다. 잠잠히 깊이 기도하는 내가 되어가기를 소망합니다.



폐회예배를 마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목사님께서 바다를 보자고 하시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건이가 ‘바다가서 수영할래요!’라고 말하여 속으로는 설마 하게 되겠어? 얼른 가야지. 라고 생각하고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는데 목사님께서 바닷가에 주차를 하시며 여기 들려서 건이 원하는대로 수영하고 가자! 라고 말씀해주셔서 깜짝 놀랐었습니다. 차가 막히지 않을까? 저녁은 어떻게 할까? 공동체 오래 비웠는데 이렇게 해도 되나? 내가 하지 않아도 될 걱정들을 늘어놓으며 아이는 안중에도 없고 내 역할도 아닌 것들을 책임지며 아이의 요구를 듣지 않았던 저를 대신하여 아이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시고 시간을 내어 놀도록 기다려주신다는 목사님과 사모님.



사모님께서는 아이들이 놀기 쉽게 평상 하나를 짧은 시간 대여해주셨고, 바닷가는 위험하니 구명조끼와 튜브까지 대여해주셔서 저희 부부는 안심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물가로 갔습니다. 물 앞에서도 서성이고 망설였습니다. 옷이 젖으면 어쩌지? 갈아입으면 시간 오래걸릴텐데 등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칠 때 바닷물에 몸을 담군 건이가 해맑게 웃는 것을 보는 순간 저의 어린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나도 양양 앞 바다에서 이렇게 놀았었는데, 친척 언니들이랑 튜브타고 살이 다 타도록 놀았었는데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파도가 발등을 넘어 종아리까지 올라왔고 그 느낌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제 몸은 바다 속으로 뛰어들고 있었습니다. 짠 냄새, 차가운 물, 일렁이는 파도, 주변에서 즐거워 외치는 소리, 아이의 해맑은 얼굴.



모든 조합이 나의 어린시절 같았습니다. 마음 놓고 걱정없이 즐거웠던 때. 바닷가에서 놀기는 18~20년 만에 처음이었습니다. 온 몸이 물에 젖어도 신경쓰지 않고 발을 구르며 튜브에 매달리며 헤엄치고, 나를 번쩍 들어서 물 속에 내던져주는 남편의 팔은 개구지고 힘있어서 어릴 때 나를 놀아주던 어른의 팔 처럼 느껴져 한 없이 가서 종알거리며 더 해달라고 하고싶을 만큼 재미있었습니다. 남편과 아이들과 둥둥 떠다니며 짠 바닷물을 먹고 인상도 찌푸렸던 그 시간은 정말 우리 가족에게 참 회복의 시간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함께 즐거운 그 추억은 내가 했던 여러 걱정들이 기억나지 않고 아무래도 괜찮을만큼 값진 것이었습니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잠든 아이들을 안고 바깥을 보는 동안 집이 가까워오기까지 긴 시간 생각했습니다. 나의 어린 시절을 찾게 해주신 하나님께 참 감사하다고 말이지요. 하나님은 찰나의 순간에서 나를 기다리시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내게 잃은 것들을 돌려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번 공동체 협회를 통해 알려주고 싶으신 것은 하나님 창조하신 땅에서 내게 잃었던 웃음과 행복을 찾아 누리게 해주시는 것이 가장 그 분이 바라시는 아름다운 나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감사하고 감사한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잃은 것들을 되찾고 누리는 것을 라파공동체에 오는 이들도 경험하며 각자의 삶에서 잃은 것들을 되찾고 누리게 하시는 것들을 평생에 걸쳐 이곳에 남아 보고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하나님 창조하신 자연을 지키고 사랑하며 진정한 나 다움을 찾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는 그 회복을 경험하는 공동체로 오래도록 남을 것입니다. 중독과 상처에서 회복되어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오래도록 전하는 라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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