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갈 사랑

라파공동체2026.03.28 15:233

 



 올 해 9월은 좋으면서도 참 힘든 달입니다. 9월은 추석과 둘째의 생일, 제 생일이 겹쳐있는 달이라 늘 시끌 벅적 행복한 고민들로 가득하여 제가 12달 중 가장 사랑하는 달인데, 이 달 초 막내의 생일이 막 지나가던 순간에 남편의 게임 재발을 발견하게 되어 올 해 9월은 처참하기만 합니다. 지난 9월 초 회복자분들의 방문으로 토요일, 주일 저녁 시끌벅적하게 족구를 하고 있을 때 활짝 웃으며 시원하게 땀흘린 그들의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남편의 핸드폰을 집어든 순간. 오가던 응원의 외침이 멈추고 온 세상이 흑백으로 변한 그 때 제가 바라본 것은 남편의 핸드폰 속에 켜있는 게임이었습니다. 작은 캐릭터 위로 번쩍이는 불들이 지나다니고 이전까지 활발히 게임을 했는지 '이어서 하시겠습니까?' 질문창이 떠 있는 그 핸드폰을 너머 현실의 세상은 제 눈에 고요하고 적막한 공간으로 변해있었습니다. 튀어오르는 공도, 힘내! 움직여! 마이 볼! 하는 소리들도 심장이 멎음을 알리는 기계음과 같이 삐- 소리를 내는 듯 귓가에 아무 소리가 들려오지 않고 조용해진 그 때, 잠시나마 행복했던 나의 무방비한 마음 문을 박차고 들어온 중독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대로 굳어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나의 표정을 보고 불안하기라도 한 듯 남편이 눈 앞을 왔다 갔다 움직일 때 중독이 내 마음 문을 박차고 들어올 길을 알려준 사람처럼 느껴져 이 공간에는 나의 편이 없다는 생각으로 그 족구장을 벗어나기 위해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오른 발로 자동차 작은 패달을 힘주어 밟아 집까지 도착한 것이 3분도 채 걸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집의 거실은 캄캄했고 공기가 차가웠습니다. 이제는 이 공간이 따스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되었고 아이들을 집 안으로 밀어넣고 나까지 들어와 문을 닫은 순간에서야 마음이 요동치며 죽었어야 할 중독에 대한 불안과 분노가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중독이 죽고 하나님 창조하신 나를 찾아 살리자고 다짐하고 내려온지 8개월, 죽었나 싶은 그 순간에 다시 살아나는 중독의 부활성은 횟수를 거듭할 수록 타격감이 커졌습니다. 몸집이 더 커지기라도 하는 듯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매번 무장을 하고 앞에 서던 저는 라파라는 안전기지 속에서도 무장을 하고 다시 서야한다는 사실이 무기력하게 다가왔습니다. '이 곳에서마저 나는 무장을하고 다시 싸워야하는구나.' 생각하다가 '이 곳이니까 무장이라도 할 수 있지, 그 전이라면 맨 몸으로 중독을 받아내느라 나는 헐어 없어져버렸을거야.' 생각하기를 핑퐁하듯 오가면서 졸린 눈을 비비며 내게 안기는 아이들을 재우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방에 누워 불을 끄고 양 팔에 아이들의 머리를 누이고 잘 자라고 인사하는 순간에도 마음은 요동질해댔고 얼마 후 첫 째가 잠이들고 뒤척이는 둘 째에게 어서 자라고 말하는 순간 남편이 집 문을 열고 들어와 방 문으로 머리통을 내밀고 잘 다녀왔다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목소리를 들을 때 중독을 나에게 안내한 배신자의 목소리로 느껴져 당장이라도 일어나 집 밖으로 쫓아낼까 고민하기를 수십 번. 화장실에서 씻는 소리마저 분노를 유발하는 소음이었고 유달리 무겁게 느껴지는 아이들의 머리무게가 양 팔을 짓누를 때 분노하러 일어서는 나를 뜯어 말리는 누군가의 손길처럼 느껴져 어서 이 속박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바랬습니다. 



 그렇게 뒤척이는 둘 째를 기다리다 남편이 잘 준비를 마치고 옆에 누웠을 때 폭발하듯 비난의 말을 쏟아붓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부터 게임했어? 아까 내가 게임 본거 다 알면서 왜 아무렇지 않은 척 해? 아무일도 없었던 척해? 게임에 돈 넣었어 안넣었어?' 남편은 머뭇거리고 주춤하며 '미안해'로 일단락시키려했고 그 순간 마음이 폭발하여 남편의 핸드폰을 빼앗아 들고 거실로 나가 불이 꺼진 공간에서 내역을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게임은 오는 길에 지워져 없었고, 구글 내역에 충전을 했다는 표시가 7월부터 나열되어 있었습니다. 일 순간 치솟은 분노가 위층 사람의 귀에 들어갈까 커지는 마음을 부여잡고 끌어내리려 했으나 내려오기를 마다하고 기어코 2층을 지나 하늘까지 올라갈 기세로 커져만 갔습니다. 중독은 나를 작게 만들고 분노만 남게 하는 것이 퀘스트라도 되는 듯 손에 들고있던 핸드폰은 하필 그 때만 잠잠한지, 그 속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오류없이 지켜만 보고있었다 생각하니 아무것도 제 스스로 할 수 없는 기계인데도 불구하고 서운한 마음을 너머 없애버리고싶은 충동까지 일었습니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맨 발로 마당을 걸으며 차가운 흙과 이슬젖은 풀들이 지나가는 것들을 느꼈지만 그 또한 저에게는 내 발에 달라붙은 한낱 더러운 것들에 불과했습니다. 그렇게 정신나간 사람처럼 텅 비고 고요하여 검은 공기가 내려앉은 마당을 걷고 걸었으나 한 번 멈춘 사고는 돌아올 줄 모르고 그저 손에 쥔 핸드폰을 없애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습니다. 다시 질퍽한 발로 거실에 들어와 식탁에 앉아 상판이 돌인 식탁을 만지다 핸드폰을 들고 모서리에 찍어 누르기 시작했고 부서져가는 유리 파편을 바라보며 이대로 죽어 두번 다시 살아나지 말라고 외치는 내면의 소리가 핸드폰을 향한 것인지, 중독을 향한 것인지, 남편을 향한 것인지 모른채 분노를 발산하였습니다.



 날이 새고 다음 날이 되어 사회봉사를 가는 남편의 빈 자리와 걸어나간 거리를 보며 이 공간은 두 번다시 채워지지 않겠구나, 저 길을 걸어 다시 내게 돌아오는 일은 이제 없겠구나 적막한 마음으로 이별을 미리 고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그 길로 뒤돌아서서 공동체 식구들에게 말했고, 목사님 사모님까지 아시게 되어 저녁에 남편이 돌아오면 함께 이야기하기로 하였습니다.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른채 지나간 시간을 따라 흘러가다 남편이 돌아온 저녁. 생활 공동체가 함께 모여 앉아 이 사태가 어떻게 된 일인지에 대해서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이 먼저 이야기하는 중간 중간 제가 발견한 사실과 다른 말이 나오면 도끼를 들고 입에서 들락날락하는 구렁이를 찍어 누를 준비를 하였는데 그 순간마다 이리저리 피하는 그 거짓의 구렁이는 제 힘으로 잡을 수 없었습니다. 입소한 1년 8개월의 시간동안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았던 남편은 지난 8월 목사님께 허락받아 핸드폰을 소지할 수 있게되었는데 게임을 충전하여 즐긴것은 7월이니 시간이 맞지 않아 이것은 누구의 것으로 했냐 물었더니 계속 '제가 한 것은 아니고 타인에게 아이디를 주었더니 그 사람이 한 거예요.' 라는 말도 안되게 피하는 거짓말만 즐비하게 늘어놓았습니다. 한 번 들락 거린 구렁이새끼는 제 집이라도 되는 냥 남편의 입 속에서 나올 줄 몰랐고 제 힘으로 되지 않는 것을 자각했을 때 귓가에 목사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너 내가 이 사역을 하는 동안 여기 관련된 전문가 하나 못 찾아갈 줄 알아?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이거 밝혀낼거야. 그런데 그 때 발견된 사실이 너가 말한 것과 다르다면 그 즉시 너랑 너의 가족들은 나와의 인연이 여기까지야. 두 번다시 보지 않을거야. 제대로 생각하고 말 해. 마지막 기회야." 한낱 도끼만 들고 언제 나오나 기다리며 아무 타이밍에나 찍어 눌러대던 나와 달리 목사님은 구렁이 전문 사냥꾼이어서 일 순간 책상 위가 포획틀로 변하였고 그 속에 달콤한 피 묻은 쥐 한 마리를 두어 구렁이를 유인하듯 조용히 기술적으로 남편 속에 있는 거짓의 덜미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기다린지 오래되지 않아 제 발로 걸어들어온 구렁이는 사실을 나타낼 모든 조건을 다 갖고 우리 앞에서 똬리를 틀고 있었습니다. "목사님 제가 사실대로 다 말할게요." 남편의 외마디에 제 속에서 이성이 끊겨 눈에 보이는 물건을 들고 남편을 내려치기 시작했습니다. "이 나쁜 새끼! 끝까지 거짓말하는 나쁜 놈! 내 앞에서 그런 말이 나와?" 수 많은 말을 쏟아내며 때리다 나를 부여잡고 말리는 이의 손길에 문 밖으로 밀려났고, 숨을 고르고 다시 제정신을 찾기까지 얼마간의 시간동안 저 속에서 남편이 뱉어낸 구렁이의 참상은 이러했습니다. 



 이 곳에 입소한 날이 2월, 몰래 핸드폰을 택배로 받아 반입한 날이 4월. 그 후 5월에 발각되었던 핸드폰 문제는 들킬까봐 저수지에 가져다 버렸다는 말을 믿어줌으로 일단락 되었었고, 10월 병원에 입원해있을 때 게임이 재발하였던 것도 옆 자리 누군가의 것을 빌려했다는 말을 믿어줌으로 일단락 시켰었습니다. 믿어준 것은 그만한 거짓말을 다 파해치기에는 마당 전체를 뒤집어 귀걸이 하나 찾는 꼴이라 알아서 드러나기까지 기다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시간을 보낸 것이 1년 8개월. 드디어 드러난 실체는 생각보다 처참했습니다. 그 수많은 시간동안의 진실은 5월 발각될 뻔했던 핸드폰을 계속 숨기고 있었고 공기계로 가지고 있다가 목사님, 사모님께서 프랑스로 따님을 뵈러 갔던 7월 게임이 재발한 것입니다. 그리고 8월 새로운 핸드폰을 사면서 공기계는 처분했다는 말을 남김으로 엄마구렁이를 내어주고 새끼구렁이는 끝까지 숨기는 남편의 거짓말까지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이 사태를 지나 남편은 퇴소당했습니다. 이런 처참한 거짓말을 일삼은 생활을 더이상 눈 감아 줄 수 없고 너무 많은 시간을 속여 우리의 모토인 정직을 지키지 않아 회복의 생활을 같이 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2층에서 소식을 듣고 내려온 아이들은 아빠의 가는 마지막 모습을 눈에 담으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렇게 우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남편은 공동체를 벗어났고 6개월이 지나야 들어올 수 있기에 저 바깥에서 누군가의 도움도 없이 방을 구하고 일을 하며 6개월을 버티다 들어와야하는 실정입니다. 그 기간 안에 술을 마신다면 병원으로 가야겠지요. 이 일을 겪은 후 일주일은 분노에 치를 떨며 씩씩거리는 숨과 마음과 말을 가진채 공동체 생활을 했습니다. 중독자가 싫었고, 미웠습니다. 그리고 그런 중독자에게 중독된 나조차 싫었습니다. 분노가 사그라들때면 겉잡을 수 없이 눈물이 났습니다. 밤새 울며 침상을 적셨다는 다윗의 눈물만 못하지만 울고 또 울었습니다. 걷다 울고, 누워 울고, 밥 먹다 아이가 아빠 이야기를 하면 눈물이 났습니다. 화가 났다, 울었다 하는 내 마음의 변화를 감당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 내게 2주간의 시간이 지나갈 즈음 들려오는 말들은 사뭇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중독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치유의 길을 걸어야 하기에 이렇게 나간 남편은 원점으로 오기까지 혼자 바닥을 치는 경험을 해야한다는 것이 치유의 관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젊은 나이에 게임과 알코올 다중 중독에 대한 것이 낱낱이 밝혀지니 이것이 감사한 일이라고, 내가 라파에 있는 것이 감사한 일이라고 말해주시는 목소리들은 중독을 경험하고 회복이라는 길로 들어선 이들의 목소리였습니다. 한 없이 그들의 품에 안겨 울고 또 울었을 때에야 이런 나의 초라한 모습을 누군가에게 수용받고 이해받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수용되고 이해되는 이 곳에 있는 것이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내가 왜 이런 삶을 살아야만 하는지 표명하지 않아도 되는 이 곳에 있음이 감사했습니다. 이곳에 남은 저는 전에는 남편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전전 긍긍하고 나의 힘듦을 뒤로한채 남은 가족들을 안심시키고 위로하며 버티던 시간을 라파공동체라는 안전기지가 있어 이곳에서 나의 감정을 돌아보고 나의 삶을 살기 위한 준비를 하게되었습니다. 우울하면 우울하다, 화가나면 화가 난다, 힘들면 힘들다 말하는 것들을 못한 채 이리 저리 헤매이던 것을 멈추고 이 자리에서 내가 어떤 마음인지를 돌아보고 아이들을 잘 돌볼 수 있게 생계를 꾸려가는 시간을 갖고있습니다. 중독자의 아내는 동반의존중독으로 중독자에게 중독되어 있기에 이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중독자에게 무언가를 해내라고 소리치며 보내는 것이 일상인데, 몸과 마음이 떨어져있는 지금은 나만 돌아볼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허탈하고 속상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이보다 더 힘들 수 있을까? 싶은 생각과 마음으로 하나님께 '도대체 나를 어떻게 만드셨길래 이런 것들을 감당하게 하시나요.' 묻는 질문 앞에서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마음은 '손양원 목사님'이었습니다. 언젠가 여수에서 봤던 목사님의 흔적. 두 아들을 죽인 남자를 양 아들 삼아 키우시며 장례식 때 하나님 앞에 감사한 것 9가지를 적어 읊으셨다는 목사님. 



 1. 나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을 나게 하시니 감사.



 2. 허다한 많은 성도 중에서 이런 보배를 나에게 주셨으니 감사.



 3. 삼남삼녀 중에서 가장 귀여운 맏아들과 둘째아들을 바치게 하시니 감사.



 4.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이 함께 순교했으니 더욱 감사.



 5. 예수 믿고서 와석종신해도 복이라 했는데 전도하다 총살순교했으니 더욱 감사.



 6. 미국가려고 준비하던 아들이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갔으니 내 마음이 안심되어 더욱 감사.



 7. 내 아들을 죽인 원수를 회개시켜 아들을 삼고자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8. 내 아들의 순교의 열매로써 무수한 천국의 열매가 생길 것을 믿으며 감사.



 9. 역경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나는 하나님 앞에 감사도, 찬양도, 일상도 다 멈춘 채 원망의 말만을 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제게 감사라는 길을 터주셨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은 공갈 사랑이어서 남편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공갈이기만 합니다. 8번의 감사제목과 같이 천국의 열매가 내가 되기를 소망할 때, 하나님께서 나를 위로하시기를 1년 8개월 속은 나 자신에게 분노하는 마음을 만지시며 이런 너 또한 사랑한다 말씀해주시니 감사했습니다. 9번과 같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내가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온통 엉망인 나의 삶에 감사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길을 갈 때 내가 천국 열매가 되기를, 저 땅 어딘가에서 헤매이는 남편이 천국 열매가 되도록 하나님 인도하심을 따라 중독이 아닌 빛을 발견하기를, 혹 그렇지 아니할지라도 나는 나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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