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간 자리를 채우는 것들
라파공동체2026.03.28 15:233
* 밤사이 더위는 가고 추운 공기가 내려앉아 열린 창문 틈으로 느껴지는 바람이 매서워졌습니다.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면 살이 차가워지는 바람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계절이 바뀌는 시간이 짧아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기온에 적응해야 할 때입니다. 삶의 변화도 얇은 옷 정리하고 두터운 옷 꺼내입듯 가벼이 적응해질 수 있을만큼 경험되고 준비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집 안을 거닐고 바깥을 바삐 다니던 몸집이 큰 사람, 두 아이의 아빠가 자리를 비운지 2주가 되었습니다. 공동체 곳곳에서 마주하는 빈 자리가 괜스레 쓸쓸히 느껴지고 같이 다니던 길을 혼자 갈 때 허전해지고 함께 타던 차에 혼자 남으면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없다라는 것에 익숙해지기까지 감당해야할 허전함이 내게만 있으면 좋으련만 나의 아이들도 오가는 길에 한 마디씩 툭 던지는 것을 들으면 체감하는 허전함의 깊이가 깊음을 알 수 있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래도 좋다. 너희들이 중독의 참상을 남이 아닌 아버지로 느끼는 것이 심해지기 전이라 아직은 괜찮다. 홀로 읊어보며 온전한 아버지가 아니라면 차라리 보여주지 말자고 다짐도 해봅니다. 옛 시절엔 어머니 혼자 아이 양육하며 일하는 모습이 익숙도 했건만 지금은 아이들 데리고 도심으로 나가보면 우리집만 아이 아버지가 없는 것 같아 쓸쓸한 마음이 더욱 커집니다. 현 시절은 아빠들이 주 중에 쉬거나 자택근무도 많아 놀이터에 아빠 손 잡고 나온 아이들이 많고, 넷이 걷는 가정을 보면 자연스레 시선이 머무르게 되어 우리 셋은 어영부영 어정쩡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곤 합니다.
라파에 오기 전에도 놀이터에서 몇 날 며칠 만나는 친구들은 주말이 되면 아빠와 오는데 우리 아이들은 매일 나랑만 다니기에 주 중에만 놀이터를 갔었습니다. 그나마 주 중에는 엄마들이 데리고 오는 날이 즐비하여 우리 집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기에 주말에는 교회로, 방 구석으로 피신해있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주 중에도 괴롭기는 매한가지로 퇴근하고 아빠가 산책하는 길에 마중나오거나 바깥에서 온 가족이 외식을 한다고 아빠를 기다렸다 돌아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아,일찍 들어갈 것을 괜히 오래있었네.’ 하고 친구따라 놀러갔다 혼자 남겨지기라도 한듯 서글픈 마음을 안아야만 했습니다. 외식도, 저녁까지 놀아보는 것도, 주말에 나들이하는 것도 할 수 있었는데 저는 홀로 그 시간을 감당할 자신이 없고 내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서 숨어버리는 엄마였습니다. 차라리 이혼을 했더라면 우리는 이혼가정이예요. 말이라도 했을텐데 어정쩡하게 없는 빈 자리만을 탓하며 그 자리에서 내가 어떻게 버팀목이 될지보다 어떻게 숨을까 하는 수치의 마음이 더욱 커서 늘 소극적인 엄마가 되어만 갔습니다.
그 간의 남편 빈자리가 이토록 허전했기에 라파에 올 때 이제는 넷이 함께야! 하는 설레는 마음도 컸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이제는 수치스럽지 않아도 돼! 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가족의 부재를 버틸 힘이 나에게 없는 것일까? 왜 수치가 이토록 크게 자리잡아 나를 소극적으로 만들까? 이번 일을 통해 돌아보게 됩니다. 수치가 있기에 저번 주 글과 같이 이상적인 믿음으로 버티는 척도 해보고, 내가 홀로 남은 시간을 의롭다는 말로 포장하여 버티기도 하는 방법을 선택하게 되어서 이런 나의 모습을 돌아보는 새로운 한 주가 되어가
고 있습니다.
라파에 와서 또 겪을 수 있다 예상은 했지만 준비와 예고없이 다가온 남편의 빈자리에 저는 역시 소극적이고 수치가득한 마음을 안고 견디기 시작할 즈음 2주차로 접어들었을 때 조금씩 굳은 마음이 녹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이럴 때 엄마가 위축되지 않고 잘 살아가면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고 더 클거예요. 어떤 일이든 다 할 수 있으니 공동체 내에서 두 아이들 데리고 다니며 씩씩하게 홀로 서세요.” 라고 해주셨고, 사모님께서는 “자매님은 혼자 있어도 반짝 반짝 빛나요. 능력이나 재능이 없는 것도 아닌데 나는 혼자 할 수 없다는 생각만 하는 것 같아요.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어요!” 라고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빠 없이 허전하게 셋만 있던 자리를 어색하지 않게 채워주는 이모, 삼촌들이 계셔서 때로 이모랑 같이 장난감으로 놀고, 산책을 가서 밤이나 감을 주워오고, 삼촌과 포크레인을 타고 운전도하고, 슈퍼에 가서 과자랑 장난감을 사오는 일상으로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아이들과 아빠의 빈자리를 대신하여 아빠 혼자 채워주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받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제 마음을 녹였습니다. ‘아, 전처럼 구석에 숨지 않아도, 어딘가로 피하지 않아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구나. 아빠가 있을 때보다 더 많은 것들을 함께 해주시려고 모두 시간내어 같이 있어주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자 무척 편안해졌습니다. 소외감 느끼지 않도록 매일 다가와 인사해주시고, 아이들에게 친근하게 해주시는 모든 시간이 남이 아닌 가족으로 채워지는 기분이 들어 짧은 순간 하나 하나에 위로받았습니다.
공동체 한 형제님은 차에 엔진 오일을 갈아야 해서 어떻게 하는지, 어디서 하는지 물어보니 주저않고 동행해주시고 기다리는 동안 입에는 커피를 물고 양 손에 아이들 손을 잡고 근처 학교 운동장으로 가주는 삼촌. 놀이터에서 긴 팔, 다리로 아이들에게 어떻게 놀이기구를 타는지 알려주고 잡아주며 차근 차근 함께 해주었고 돌아오는 길에 다이소에서 장난감을 하나씩 사주며 “느그들 이제 삼촌 말 잘들어라. 알긋제?” 하며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또 한 자매님은 건이가 “이모, 같이 동네 산책가요.” 라고 말하면 언제나 “그래!” 라고 답하며 손잡고 뛰어 오르막 내리막을 달리고, 길 가에 떨어진 밤과 감을 주워서 옷 속에 꽁꽁 숨겨두고, 동네 아주머니 집 마당에 놓인 평상에 누워 발을 높이 들고 하늘을 달린다고 웃으며 내기를 하는 모습을 보며 ‘아, 진짜 행복하다. 불안하지 않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라고 무심결에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저 분들이 계셔서 남편이 없이 보내는 이 시간이 오히려 평안하고 불안하지 않은 행복감이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한 형제님은 남편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집 안에서 물건을 싹 빼어 정리하고 박스에 담아 지하실에 내리며 집 안 가구를 옮기다 낡은 화장대를 버리려 내놓으니 흔쾌히 옮겨다 트럭으로 실어 버려주시고, 멋쩍게 웃으며 제게 “스티커 안 붙이니 깐깐하게 안 가져 가네. 오늘은 나한테 돈 주면 사서 붙일게요.” 라고 말하며 내가 깜빡하고 못 챙긴 것을 민망하지 않게 챙겨주어서 가시적으로 정리하는 일에 큰 몫을 담당해주었습니다.
주일에 오시는 분들도 2주 쯤되니 얼굴 안 뵌 분 없이 다 뵐 수 있었는데 그 중 늘 검정 옷이나 흰 옷을 입고 안경을 쓰고 백팩을 메고 다니시는 한 형제님은 종종 검은 봉지 속에 과자 대여섯개를 넣어 문 앞에 슬쩍 두시고, 올 여름엔 아이들에게 아주 커다란 수영장을 사주셔서 마당에 설치하고 신나게 물놀이를 했습니다. 또 아이들에게 신발을 사주셔서 하얗고 예쁜 운동화를 한창 신고다니며 좋아하던 아이들의 웃음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마음에 남았던 것은 지난 주일 예배당에 내내 앉아 책을 읽으며 사람들과 대화를 피하다 물을 마시러 집에 잠시 들렸는데 문 앞에 가지런히 놓인 검은 봉지 속에 과자가 잔뜩 들어있는 것을 보았을 때였습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그저 평상시와 같이 챙겨주신건데 늘 고맙다 말을해도 고개를 숙인채 살짝 웃기만 하는 형제님이라 고맙단 말도 주춤하게 되었는데, 왠지모르게 내가 형제님의 엄마가 된 듯 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들이 엄마에게 살며시 표현하듯 아주 조심스레 나를 위로하는 느낌. 괜찮아, 힘 내 라고 느껴졌던 것은 과자가 담긴 봉지가 문 앞에 살짝 놓여진 그 자리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앞을 왔다 가면서도 이러쿵 저러쿵 말하지 않고 묵묵히 다녀간 조심스러운 그 자리가 제게는 아주 오래 마음에 남을 것 같습니다. 멀찍이 살아도 부모님 뵈러 들른 시간에 묵묵히 왔다가며 잘 지내셔? 한 마디 건네고 어머니가 내어준 밥 한끼 맛있게 먹고 마루에 앉아서 마당을 지나다니는 어머니 등을 눈길로 쓸어주는, 존재만으로 힘이되는 아들이 주는 위로와 사랑을 남모르는 이웃에 사는 철부지 어린 엄마와 두 아들에게도 전해준 것 같이 느껴져 무척이나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집 안으로 과자봉지를 들고 들어와 과자를 하나씩 꺼내어 정리하며 울었습니다. 어깨가 들썩이게 울며 얼굴보고 서로 어색하여 주고 받지 못하는 고맙다는 말을 기도로 대신하였습니다. “하나님, 이런 위로도 받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왠지 모르게 엄마한테 주는 아들의 위로가 느껴져요. 멋진 아들의 위로 받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이렇게 나의 서글픔을 말로 하지 않아도 느끼는 이들이 있어서 공동체 안이 제게는 안전기지입니다. 대부를 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아이들도 외롭지 않습니다. 이러 경험이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잘 느끼게 해줍니다. 조용히 잔잔히 내 삶의 모든 순간에 함께하시는 그 하나님, 사람의 빈 자리를 넘치게 채워줄 손길을 보내려 마음들을 두드리고 계시는 하나님. 이상적인 감사를 보며 나도 저렇게 감사할거야! 오기와 의로움에 가득찬 나의 마음을 녹이고 그저 위로 받아 감사하다는 한 마디가 진정으로 나오게 해주시는 하나님이 느껴져서 참 감사합니다.
공동체가 있어서 저는 이번 일에 소극적이고 위축되지 않고 진짜 행복을 누리고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마을이 한 아이를 키운다는 말처럼 공동체가 나와 아이들을 키워주고 돌봐주고 보호해주었습니다. 중독으로 파여진 자리가 홀로가 아닌 공동체로 채워지게 하신 하나님. 공동체는 희망이요 안전기지요 위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