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

라파공동체2026.03.28 15:233

* 꽁꽁 언 땅 위로 소복하게 눈이 쌓이기를 수 차례, 수돗가에 자리잡은 검붉은 대야 속에 두텁게 얼음이 얼다 해가 기운을 차리자 서서히 녹기 시작한 2월입니다. 차갑던 제 마음에도 날마다 주님께서 이야기를 안겨주시고, 감사하다 할 일들을 펼쳐놓으시는데 글을 안쓰는 것이 배은망덕 같아 다시 컴퓨터 앞에 허리를 세우고 앉았습니다. 시골 산자락에서 사는 제 이야기가 얼마나 도움될까, 완결이 좀처럼 나지 않는 이야기가 볼 것이 무엇이 있을까 싶어 멈추었던 글이지만 주께서 제 옆에 앉아 담소를 나누신다면 펼쳐보인 일들을 좀 적으면 어떠니 하실 것 같아 다시 적어보렵니다. 긴 밤잠에서 깨어 맡는 커피내음처럼 그간 농축된 이야기 한 방울이 모여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알맞는 향기를 내며 전달되기를 소망합니다. 



 



 남편이 재발로 공동체에 자리를 비운 후 저와 아이들은 부지불식간에 어미 없는 새끼 새처럼 둥지에 남아 자리를 지키면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며 보내기를 한 달여 가량 지나는 동안 공동체에도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한 자매님은 일본 남편을 두고 알코올을 치료하기 위해 입소했고, 한 형제님은 알코올 치료를 위해 부모님과 지방에 집구해 살다가 슈퍼가 멀어도 치료되지 않아 수소문 끝에 공동체를 알게 되어 입소했고, 한 형제님은 러시아 아내와 딸 한 명을 거처에 두고 입소했습니다. 또 한 자매님은 청주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스스로 차를 몰고 들어와 입소했으나 도둑술을 마시는 바람에 퇴소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여러 명의 중독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만나는 동안 제게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남편이 중독이라 공동체에 왔다 생각하며 살았는데 제 내면에도 저들과 같은 모습이 있음을 보게 된 것입니다. 남편이 재발하여 나간 후에도 남편만 돌아오면, 남편이 술만 끊으면 하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 생각을 안고 살 때에는 모든 것이 남편 탓이라는 생각에 집 안에서 옷가지, 책, 신발, 연필 한 자루까지 싹 보기도 싫어 박스에 뭉뚱그려 담아 공동체 지하로 내리기도 했습니다. 집 안에서 남편의 흔적도 발견할 수 없게 정리가 되자 마음이 편한 듯 했습니다. 



 텅 빈 거실에 앉아 생각할 수록 원망스러웠습니다. 왜 내 곁을 떠나야만 했을까. 어째서 아이들이 눈에 보이지 않았을까. 그렇게 10월의 말미에 공동체에서 중독치유 세미나를 주관하여 공동체에 40명 이상의 인원이 오가며 며칠을 함께 보내게 되었습니다. 세미나에서 주로 다뤄지는 강의 내용은 동반의존 중독이었습니다. 모든 중독의 시작이며 중독자와 얽혀 사는 이들이 피해갈 수 없는 동반의존 중독이 무엇인지를 들으면 마음이 턱 막히는 듯 답답했습니다. 이게 나일리가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앞에 나와 아버지나 남편의 알코올 중독으로 고통받는 중년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으면 저들과 내가 같을 리 없다는 부정적인 마음에 표정이 굳어 차갑고 냉랭한 얼굴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종국에 이혼한 여성, 현재도 남편을 가까이하며 살아가는 여성, 남편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중독을 돕거나 비난하는 여성 등 다양한 분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 제 이야기는 내놓기가 싫어 자리를 여러 번 피했습니다. 왜 그랬을까. 



 세미나가 끝난 후 제 주변이 온통 차가운 칼바람으로 막히는 듯 했습니다. 누군가 다가오는 것도 싫었고, 내가 다가가는 것은 더욱 싫었습니다. 태풍의 눈에 서있는 듯 매서운 바람으로 모두를 멀리했습니다. 그리고 이 곳에서 나를 꺼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발 아래서부터 스멀스멀 피어 오르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동반의존 중독'을 자각하는 첫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 나도 어찌할 수 없는 내 모습이 참 불편했던 날이 많았습니다. 나보다 남을 더 의식하고 챙기며, 남에게 독이 되는 것을 알면서도 칭찬을, 도움을, 때로 물질을 내어 주기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늘 나는 깎아내리고 남을 올리기 바쁜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내 성격이라며 후회하기 일쑤였습니다. 이런 나를 구해주는 것은 나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고, 자신감 넘치는 남성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단력 없이 약하고 남에게 휘둘리는 나를 단단한 남성은 붙잡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내면을 상담을 통해 마주하기를 여러 차례, 공동체를 들썩이는 일이 생겼습니다. 일본에 둔 남편과 만나기를 기약하며 입소해 지내던 자매님이 공동체를 주름잡는 날카로운 형제님과 밀회를 이어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방 너머 방, 서로가 머무는 자리에 속하고 싶은 마음이 방 바깥에서도 느껴질 만큼 진한 내음으로 풍기기 시작한 것은 남원에서 였습니다. 공동체와 교회 사람들이 한데모여 남원에 나들이를 가던 날, 춘향이와 몽룡이의 이야기가 벽화로 자리잡아 전해지던 그 마을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춘향과 몽룡을 뒤로하고 서로 이 사람을 내 춘향삼고 저 사람을 내 몽룡삼으리라 다짐하여 멋대로 짝을 바꾸어 진득한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한껏 구경을 마치고 카페에 자리잡아 모두가 대화를 이어간 순간에도 두 사람은 착 달라붙어 길고긴 대화를 이어가며 깊은 눈빛을 마주하였습니다. 



 그런 기류가 불편해진 주변 사람들은 공동체에 돌아와서 눈여겨 보기 시작했고, 몇 차례 밤 중에 오가는 두 사람을 봤다는 목격담을 시작으로 저녁 특강을 세 차례나 열어 왜 분위기가 이렇게 뒤숭숭한지를 탐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알코올 중독으로 입소한 두 사람이지만, 다뤄지는 주제는 성중독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우리의 지난 날 삶을 돌아보면 만났던 이성들과 관계가 어떠했는지, 왜 결혼생활이 순탄히 이어지지 않았는지, 이곳에서 연정이 불타오른 것은 무엇 때문인지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루며 다중중독의 위험성에 대한 특강을 여러차례 들었습니다. 두 사람 나름의 이야기가 있었고, 각자 삶에서 우러나온 성중독성이 다분히 보이는 대화들이 오고 갔지만 결국 밀회를 그치지 못하여 퇴소했고 현재는 바깥에서 만남을 이어가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경각심을 갖게 된 것은 결핍을 채우는 그릇된 방법, 다중중독, 성중독이었습니다. 내게도 저들과 다를 바 없는 결핍이 있습니다. 부모님에게서 온 결핍은 내 마음 집 한 복판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 아래로 끝도없이 검은 형태를 띄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무엇을 가져다 퍼부어도 채워지지 않는 밑빠진 독같은 결핍. 그 결핍이 나를 사로잡고 불안하게 만들 때는 남자를 찾아 헤매기도 했습니다. 다른 집에 들어가 안정감을 누리고 그 집이 내것인 마냥 살기위한 내 선택. 내 내면이 저들과 다르지 않은 것은 나의 마음 공간에 아이 둘을 두고서도 나는 그 어두운 구멍이 싫어 새로 이사갈 집 찾듯 남자를 찾아 남편보다 나은 이가 없나 헤매는 모습이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들이 이해가 갔습니다. 서로 구멍 뚫린 곳을 피한다는 것이 급해서 내 처지와 상황을 생각 못하고 덜컥 문 열고 나가버리는, 여기까지 오게 하신 하나님의 존재는 까맣게 잊고 뚫린 구멍 다채로운 카페트로 깔아 막아두고 없는 듯이 다시 시작하고 싶은 그 끌림. 저들과 나는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 즈음부터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자꾸 문 열고 나가려는, 남편과 이혼하겠다는 나를 막아서는 목사님 사모님의 말씀이 들렸습니다. 



 뒤 돌아 보니 텅 빈 내 집에서 나만 믿고 살아가는 아이들이 눈에 보였습니다. 그렇게 공동체에 더 머물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세미나 때 만났던 알코올 중독 아내들이 생각났습니다. '사실은요, 남편의 알코올 중독도 문제지만 동반의존 되어있는 저도 문제예요. 남편이 아니었어도 저는 잘 살지 못 했을거예요. 이혼했는데도 힘들거든요. 이제는 저를 가꾸면서 동반의존을 치료하며 살 거예요.' 그 말이 틀린 것이 하나도 없었구나. 남편만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그 남편을 만난 것은 내 선택이며 내가 가진 결핍은 알코올 중독자를 가려 볼 수 없을 만큼 남성을 의존하기에 이런 선택을 피할 수 없었겠구나. 인정하게 되니 위가 뭉쳐 체한 느낌이 쑥 내려가는 듯 했습니다.  



 그러다 공동체 자매님들이 저에게 '초림 자매님, 공동의존 관련된 책이 있어서 스터디 하려고 하는데, 혹시 같이 할래요? 싫으면 안 해도 돼요.'라며 제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제가 무척 찬 바람을 날리고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으며 수업 때마다 저런 내면상태를 이야기 하다보니 혼자 시간 보내는 저를 존중해주며 지내던 자매님들이 책 제목부터 좋은 기회다 싶었는지 조심스레 함께하지 않겠냐고 물어온 것입니다. 저는 고민하다가 알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책을 읽는 순간부터 책 제목이 박초림 아닌가 싶을정도로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중독자를 의존하며 살아가는 아내들이 겪는 고충이 고스란히 들어있었고 그렇게 매 주 2번씩 만나서 책을 읽으며 나누는 시간을 보내며 제가 알지 못했던 제 모습을 깨달았습니다. 공동의존자, 동반의존 중독 이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어두운 나였구나. 인정이 되었습니다. 내 문제를 치료해야 남편이 치료되어도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11월이 되었을 즈음 목사님께서 남편을 한 번 보고 오라고, 집에서 혼자 술만 마시고 있을테니 보고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정지되어 사회봉사를 하던 중이었고 몇 시간 남지 않았으니 마저 채울 수 있게 도와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면 좋겠다는 말씀에 거부반응이 들었지만 결혼해서 사는 동안 이 모진 일들을 도맡아 해오신 시부모님께서 3시간 떨어진 거리로 수차례 오가며 몰래 남편을 보시고 어떻게 해야하나 종종거리셨다는 말씀에 그간도 내가 고생하지 않게 하시려고 애쓰셨는데 처음 아내노릇 해보자라는 생각에 떨리는 마음으로 남편을 만나러 가게되었습니다. 술취해 널부러져있으면 어쩌나, 집 안이 난장판일텐데 대소변이라도 함부러 보고 그 속에 누워있으면 어쩌나 온갖 걱정을하며 살고있는 집 주소를 받아 아이들을 태우고 출발했습니다. 결혼 이후 처음입니다. 늘 일상생활을 하면서 술을 마셨기에 취한 냄새, 누워있는 모습만 익숙했는데 장기간 취해 한 공간에서 움직이지 않는 남편을 본 적은 없었습니다. 음주운전에 날아오는 과태료들을 처리하는 것도, 취한 남편을 집으로 태워오는 것도, 술마시지 않나 직장에서부터 집까지 지켜보며 사신 것도 모두 시부모님이셨기에 제 손으로 남편의 일을 처리하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소담한 마을에 컨테이너로 되어있는 집이 보일 때즈음 하얀 옷을 입고 덜덜 떨며 서있는 남편이 보였습니다.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고, 손과 무릎을 떨고, 잔뜩 울어 벌개진 눈을하고, 우리가 오기 전부터 너무 심한 장취로 술이 안들어가 술 마시지 않은지 3일이 되어 금단이 왔다며 수시로 헛구역질을 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가라앉았습니다. 원망도 들지 않고 바들바들 떨리는 무릎을 땅에 대고 꿇어 달려오는 아이들을 맞으며 벌벌 떠는 손으로 아이 등을 쓸어내리는 그 모습을 보는 순간을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저 병이라는 것이 인정되었습니다. 술만 끊으면 무엇이든 되고 내가 잘 살수있다는 실오라기같은 환상이 깨지고 제 눈에 보인 현실은 알코올 중독에 눌려 쇠약해져가고 모든 것을 잃은 남자만 보였습니다. 숨이라도 붙어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며 이런 상태로 두고 이혼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목사님께서 제게 "헤어져도 살려놓고 헤어져." 라고 하셨는데 그 말이 체감되어 차마 얼굴 앞에서, 아이들 앞에서 나만 잘 살겠노라 헤어지자고 말 할 엄두도 나지 않았습니다. 처음입니다. 내 텅빈 구멍뚫린 집에서 빠져나가게 할 남자가 아닌, 그 자리에 연약한 남자를 데려온 것은 처음입니다. 그런 집이라도 좋다고 구석에서 눈물흘리는 남자를 보니 이 구멍 매워달라고 떼쓰는 마음이 아니라 이런 나로 만족해줘서 고맙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남편과 재회를하고, 며칠을 오가며 밥을 사먹이고 아이들이 유치원 간 틈을 타 쓰레기봉투와 락스, 수세미를 사들고 남편이 사회봉사하는 시간에 집을 청소했습니다. 쿰쿰한 냄새와 온갖 먹을것이 널부러지고 옷이 널부러진 그 집을보니 나랑 살 때는 그렇게 깔끔떨더니 혼자 나와서는 그럴 힘도 없었구나 싶었습니다. 이게 중독이구나. 숨 붙을 만큼만 먹고 나머지는 술로 채우는 삶. 주변이 이렇게 지저분해도 술병만 보이는 삶. 냄새가 그렇게 나도 알코올 냄새로 흘려보내는 삶. 



 깨끗하게 치워놓고 남편을 데려오니 미안하다며 연신 눈물을 흘렸습니다. 본인도 도무지 어찌할 수없는 병이면서 죄책감만은 또렷하게 남아 미안하다고 우는 그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래. 예수님은 이런 사람을 위해서도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지. 이렇게 아픈 이들 고치시려고 라파공동체를 세우셨지. 내가 이 남자 낫게해달라고 먼저 라파공동체에 입소시키고 짐 싸들고 내려와놓고 정작 눈 앞에서 가장 병에 눌려있는 사람을 두고 떠나려 했다니. 뭐하러 여기까지 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며칠 사회봉사를 마치고 남편은 청주에 있는 예사랑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곳에서 한 달 몸을 돌보고 술을 깨고 다시 12월 24일 라파에 입소했습니다. 



 다시 두 사람을 눈 앞에 앉혀놓으신 목사님, 사모님은 당분간 자매가 나가서 돈을 벌어오고 시부모님께 돈 받는 것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두 사람이 역할을 바꾸어 의존적인 성격이었던 제가 일을 하며 가족들을 먹임으로 결핍으로 인한 잘못된 삶의 방식을 벗어버리라고 하셨고, 남편은 현재 자신의 처지를 알고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라고 말씀해주셔서 현재 저는 보은에 있는 한의원 원무과에 다니고 있습니다. 남편은 두릅밭을 전담하며 아이들을 돌보고 공동체 일을 맡아 하는 중입니다. 남편의 중독만이 아니라 딸려온 제 삶까지 품어주신 목사님, 사모님은 그렇게 12월 다시 저희를 라파라는 자궁에 넣어 품어주셨습니다. 한 사람을 살리고, 한 가정을 살리기 위해 모든 시간을 함께 해주시는 모습은 예수님을 알기에 가능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미나 때 그들과 같음을 인정하고싶지 않고, 그들과 같기 싫어서 도망치던 내 모습, 공동체 온 형제 자매들의 이야기를 뒷담화 삼아 하면서 그들이 가진 상처의 깊이를 가늠하지 못하던 얄팍한 모습, 남편이 바깥에서 곧 죽어가는 중에도 나만 잘 살고자 헤어짐을 준비하던 내 모습을 예수님이 보셨다면 뭐라고 하셨을까요? 그 분은 남편을 위해서도 왔지만, 이런 나를 위해서도 오셨다는 것을 생각하면 부끄러워집니다. 아무 문제없는 척하며 살던 내게 그저 말 없이 내 앞에 오셔서 가만히 쳐다보시며 인내하시는 참 구원자 예수님과의 재회가, 그 분이 데려온 연약한 남편과의 재회가, 공동체를 나간 형제 자매들을 보면서 내 속에 저 마음이 동일하게 있는 것을 발견한 내면과의 재회가 이루어진 날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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