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아라. 잘 피어라.

라파공동체2026.03.28 15:233

* 공동체에서 1년을 살았던 자매님의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자매님을 보러 공동체로 달려와 서로의 마음에 사랑의 씨앗을 심던 두 사람의 모습이 결혼식장에서 보니 웃음 꽃으로 활짝 핀 것을 보니 참 기뻤습니다. 연애 시작부터 결혼까지 공동체에서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눠주었던 두 사람의 웃음 꽃이 얼마나 따스하고 설레던지요. 그 웃음 꽃이 해마다 피어나도록 서로가 매 해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공동체 옆 마을로 이사를 준비한지 한 달이 다 되어갑니다. 한 사람이 오랜 세월 집주인을 한 시골에서는 빈 집을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옆 마을로 넘어가 이장님을 뵈었을 때 2년 동안 주인 없이 빈 집이 있는데 거기서 살아보면 어떠냐고 물으셔서 저희는 바로 좋다고 대답했습니다. 마을 회관에서 오른쪽으로 쭉 올라가다보니 동네 끝자락 윗쪽에 홀로 자리를 지켜온 집이 보였습니다. 입구부터 보이는 온갖 더미들은 오랜 시간 제 주인 손길을 받지 못했음을 알게 했습니다. 집 내부 벽지는 노랗고, 싱크대는 주저앉아 문들도 제각각 붙어있지를 못하고 열면 떨어졌습니다. 가구들은 모두 그대로인데 사용하는 사람이 없으니 뽀얗게 먼지가 앉아 더없이 쓸쓸해보이는 집. 우리는 그 집의 세들어 사는 주인이 되기로 했습니다.



 3월이 되자마자 본격적으로 남편이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가구들을 모조리 바깥으로 빼고, 주저앉은 싱크대도 내보내고, 빈 집으로 만들기를 일주일. 그 후는 단열재를 사서 벽에 붙이고 하얀색 페인트를 칠해주었습니다. 문과 창틀, 벽이 하얀색으로 옷을 갈아입으니 감쪽같이 깔끔한 집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 내내 낮에는 공동체에서 맡은 일을 하고, 밤에는 이사할 집에서 페인트를 바르고, 새벽녘에는 머리가 새하얀 백발의 남자로 변해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 다음 일주일은 전기를 연결하고, 문 고리와 몰딩을 이어 붙여 점차 내부가 완성되어갔고, 이번 주에는 장판과 싱크대가 들어와 짐을 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혼식 직후 시댁에서 살았던 시간이 1년, 분가해서 이사만 4번을 했는데 그 동안 이사 때마다 남편의 역할을 대신 해주던 아버님께서 이번에도 무언가 도울까해서 오셨지만 대부분 남편이 해내는 모습을 보며 뿌듯하다는 말씀을 하셔서 얼마나 감사하던지요. 깔끔하게 일을 잘한다며 커다란 손으로 아들의 어깨를 한 번 툭 만지는 그 손길이 유독 제 눈에 밟힙니다. 늘 아들이 귀해 품에 안고 대신 해주던 삶을 사셨는데, 막내 딸을 사고로 먼저 보내고 마음이 아리고 불안하여 커가면서 분화하여 독립적으로 살아야 할 아들을 놓지 못하시던 그 손. 이후 아들의 중독으로 더욱 놓지를 못하고 너 술마시면 아빠는 죽는다 하면서도 흐르는 눈물하나 닦지 못하고 아들을 붙잡기만 했던 그 손이 아들을 향해 뻗은 채 그대로 굳어버린 것 같습니다. 자식을 낳아 키운다 한들 평생 저 아버지의 마음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번 이사는 그 아버지의 손을 뿌리치지 않고 살포시 내려드리는 시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늘 의기양양하여 남들에게 숙인적 없던 강한 아버지는, 라파공동체를 만나며 변하셨습니다. 공동체에서 단주해가는 아들을 보며 안가던 교회에 새벽마다 찾아가 예배드리시며 설교 때 꾸벅 졸면서도 마지막까지 앉아있다 오시고, 시흥에서 3시간을 달려 때마다 상담하며 한 평생 살아온 길을 되짚어 주시는 목사님의 두 손을 꼭 잡고 "감사합니다 목사님. 너희 이제는 목사님 말씀대로만 살아라." 하시기까지  고스란히 아버지께서 라파공동체를 오가며 목사님을 통해 무엇이 잘못되고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물으며 심으셨던 씨앗이 꽃피우는 과정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를 살리고 피워낸 또 다른 손이 있습니다. 결혼을 한 자매의 주례를 서 주시며 자매님이 보내온 감사인사와 봉투를 간직하셨다가 묘목시장으로 달려가 수 많은 나무와 꽃을 사오신 목사님입니다. 두 손으로 흙을 파내어 옹기종기 모인 화분들마다 핀 꽃을 손으로 건져 땅에 심는 흙 묻은 손. 두 손으로 덮은 흙을 꾹꾹 누르며 잘 살아라. 잘 피어라. 하셨을 그 마음이 뿌리까지 전달되어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기를 고대하는 마음. 그 마음은 예수님을 만나고부터 생겼다고 했습니다. 알코올 중독자인 나 한 명 거두어주는 교회가 없다는 중독자의 목소리에 찔림을 느끼고 수 많은 중독자들이 회복될 수 있도록 손수 집을 짓고, 밤낮으로 공부한 시간들은 한 명의 중독자를 무의식을 들여다보는 상담으로 빛을 보았습니다. 또 일관된 삶을 살되 중독자와 함께 먹고 생활하고 일하고 예배하며 아버지의 사랑으로 살아오신 세월이 오늘 제게 닿아 2년의 시간동안 끊임없이 잘 살아라. 잘 피어라. 하시며 예수님의 사랑을 전해주신 그 흙묻은 손이 나를 살린 손입니다. 



 결혼이 8년차지만 남편과 나, 아이들은 서로를 향해 사랑을 심는 삶을 살지는 못했습니다. 매해 서로를 꽃 피우는 사랑을 심어야 하는 시간에 각자 결핍으로 당장 꽃 피워줄 술과 남자를 찾아 헤매며 아이들에게 유일한 부모가 되어주지 못하고 끊임없이 헤매고 방황하는 우리는 라파에서 일관된 사랑으로 변해가고 이제는 라파에서 옮겨 옆 마을로 새로 심겨집니다. 그 사랑이 있었기에 이번 만큼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거나, 내가 종종거리지 않은채 손하나 까딱하지 않고 아들이 손수 준비한 집에 맨 몸으로 시집갑니다. 나를 귀한 딸로, 아들을 든든한 아들로 세워주신 두 아버지께서 우리를 내보내며 가는 뒷 모습을 향해 잘 살아라. 잘 피어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회복을 위해 스스로 해내는 아들의 모습, 아들 옆에서 함께 회복하며 의존이 아니라 스스로 일어서는 딸, 그 아래서 마음껏 뛰어노는 두 아이들이 활짝 피어나도록 날마다 사랑잊지 않는 삶을 살고싶습니다. 그리고 잘 살아서 옆 마을에도 두 아버지께도 기특한 아들, 딸이 되고싶습니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잘 살고, 잘 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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