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시선

라파공동체2026.03.28 15:233

* 이번 주 라파에서는 두릅을 수확했습니다. 두릅을 만지고, 선별하고, 포장하는 동안 두릅을 두 손에 받아보실 분들을 상상하니 참 보람되고 기뻤습니다. 처음 넓은 두릅 밭에 도착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우뚝 서있는 두릅들을 보면서는 이 뾰족한 가시 줄기에서 어떻게 여린 새순이 돋지? 싶을 정도로 삭막해보였으나, 4월만 되면 가시 줄기 꼭대기에서 작은 몽우리가 생기고 곧 위로 쭉 피어올라 여리고 파릇파릇한 두릅이 자라는 것이 참 신기했습니다. 아마 햇살만큼은 자신이 떠있는 시간 동안 두릅에게 부지런히 온기를 내어주며 가시가 아닌 피어날 여린 잎을 고대했기에 두릅이 이렇게 자라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오늘 우리에게도 온기를 내어주고 곧 피어날 무언가를 응원하는 햇살 같은 마음이 있기를 소망해봅니다.



 



 사랑과 섬김의 교회 교인으로 출석한지 2주가 되었습니다. 라파공동체 소속일 때는 인근에서 거주하시는 회복자분들이 오시는 날을 기다리곤 했습니다. 한 주 이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하고 싶었기에 오시는 분들을 보며 반갑게 웃던 제가 이사 후 교인이 되어보니 공동체에 들어가는 순간이 낯설기만 합니다. 바깥에서 교회 건물을 바라볼 일이 많지 않았는데 한 발자국씩 가까워질 때마다 모퉁이부터 건물 전체가 보이는 순간에는 괜히 걸음이 빨라지곤 합니다. 제게는 언제 보아도 다시 들어가고 싶고, 함께하고 싶은 곳입니다. 도착하면 곧바로 들어가지 않고 가만히 서서 교회를 바라보곤 합니다. 겉은 고요해 보이지만, 속은 참 다사다난하고 북적북적했던 순간들이 스쳐가고 만났던 이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러던 중 한 형제님의 가족이 잔디밭에서 거닐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작은 연못 안에 올챙이가 꿈틀거리는 것을 보기위해 바위를 밟고 아슬아슬 걸음을 옮기는 딸과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웃는 엄마의 모습이 무척 단란해 보입니다. 단주 20년이 된 형제님은 목사님을 통해 한 자매님을 알게 되어 결혼하셔서 슬하에 딸 한 명을 두고 지내시는 분입니다. 현재는 페인트를 업으로 삼아 일하시고, 아내 분은 러시아에서 오신 분이라 한국 말을 배우고 인근 빵집에서 일합니다. 두 분의 딸은 중학교 1학년이 되어 매일 아침 학교까지 태워주는 택시를 타러 헐레벌떡 뛰어가다 종종 마주치면 안녕! 오늘도 힘내!” 라고 이야기하는 저에게 예쁜 단발머리를 펄럭이며 꾸벅 인사를 하고 택시로 쏙 들어갑니다. 시골은 학교까지 택시가 태워주기도하고 참 좋다, 생각을 하며 평범하고도 단란해 보이는 이 가정을 알게 된 시간을 훑어봅니다. 서로 얼굴을 안 지 2, 이제는 한 동네에서 사는 이웃 주민이 되었는데 어느 날부터 제 눈에 형제님의 시선이 담기기 시작했습니다. 예배시간에 딸과 나란히 앉아 흘끔흘끔 무얼 하나 쳐다보고 슬며시 미소 짓다가, 툭툭 쳐서 무어라 말씀하시는 짧은 시간동안 형제님의 눈빛이 딸과의 관계를 다 말해주는 듯 했습니다.



 형제님은 나눔 시간에 종종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제가 시설에 있었을 때는요-” 처음에는 무슨 말씀이시지? 했으나 저를 보시며 제가 보육원에서 자랐어요. 그 때는 진짜 애들 무지막지하게 싸웠어요.” 라는 설명을 해주셔서 형제님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보육원에서 지낸 형제님은 20살이 되어 사회로 나와 녹록지 않은 시간을 보내다 힘든 시간을 술로 견뎠고 중독의 시간으로 힘들었을 때 신문에서 중독치유 공동체를 알게 되어 찾아가 라파와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은 목사님께서 형제님에 대하여 말씀하시다가 사랑이 뭔지 너무 어려워 했는데, 어느 날 아이가 걷더니 형제님을 향해 걸어오는데 감격이 되더래요. 내가 아빠라고, 나도 아빠라고 얘는 나한테 걸어오는구나. 생각했다는데 얼마나 아름다운 순간이에요?” 가정을 처음 경험하는 그 낯선 순간들, 내가 혼자 잠들던 공간에 살포시 오가며 함께 몸을 뉘는 아내가 낯설고, 봉긋 불러오는 뱃 속 생명이 낯설고, 태어나 우는 작은 얼굴이 낯설었을 모든 시간이 스쳐갑니다. 아이가 아장 아장 걸으며 아빠라고 부르던 첫 순간, 나를 바라보며 걸어오는 순간 형제님은 비로소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딸이 14살이 되어 큰 자녀를 바라보는 형제님의 시선에 이르기까지 살아온 세월이 느껴지는 듯 합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중독의 시간을 옆에서 보내며 아내로 살고 엄마로 사는 것이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형제님의 시선과 지나온 삶과 사랑을 느낀 그 이야기를 통해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슬하의 자녀라는 말은 부모 무릎 아래 자녀, 보호 속에 있는 자녀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슬하의 자녀로 살아온 세월이 없는데 형제님은 어떻게 저 작은 생명의 아버지가 되고, 보호막이 되어주는 걸까? 형제님을 통해 부성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무얼 해주어서 아버지가 아니라, 내가 살아온 인고의 시간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처절하게 버티고 애쓰는 것 만으로 사랑이 있는 가정, 사랑이 있는 아버지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남들의 눈에는 그 사랑이 진전 없어 보일지라도 형제님의 시간 속에서 아이에게 주는 사랑은 모진 결핍과 역경의 상처를 그대로 물려주지 않기 위해 그 자리에서 꿋꿋하게 버티는 강인함만으로 큰 사랑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사랑을 받는 작은 아이를 보며 제 중학교 시절도 생각납니다. 나의 아버지가 그렇게 내 뒤에서 나를 바라봐주고 버텨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는 서로 같은 시기에 같이 힘들어서 주고 받지 못한 것이 참 많은데, 아쉬운 생각을 할 즈음 이사한 집으로 부모님께서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며칠 후 방 한쪽에 치우지 못한 물건을 가득 쌓아두고 문을 닫은 채 깨끗한 거실과 방에서 부모님을 만났습니다. 아버지는 오시자마자 바깥으로 나가 수돗가로 향하셨습니다. 양 팔과 다리를 걷어 부치고 철 수세미를 들고 페인트 묻은 공구와 정리되지 않은 수돗가를 닦으셨습니다. 가타부타 말씀도 없으시고 조용히 앉아 닦으시는 아버지를 향해 나지막히 불러보았습니다. “아빠.” “?” 짧은 대화가 뭉클해집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를 알코올 중독으로 잃으시고 현재까지 아버지의 부재가 서러워서 힘드셨다는 아버지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아빠한테도 아빠가 필요했을텐데. 방황의 시간과 갈등의 시간을 지나 내가 사는 집에 찾아와 수돗가를 닦는 아버지가 되기까지 많은 세월이 필요했을 우리 아빠. 울타리가 없지만 나름의 방식대로 내게 울타리가 되어주려고 수 없이 시도했을 아빠. 받지 못한 것, 없는 것에 묶일 수 밖에 없었던 아버지도 라파와 같이 누군가의 품에 기대어 보낼 안전한 곳이 있었다면 좋았을텐데나름의 방법대로 아버지가 되는 자리를 지키느라 참 많이 헤맨 수세미를 든 아빠의 손길이 유독 거칠게 느껴집니다.



 제가 어릴 때 분유 먹이는 것이 어려워 큰 등을 웅크리고 딱 붙인 두 다리에 힘을 주어 무릎 위에 나를 눕혀 우유먹이고, 술에 취해 친구 부축을 받아 들어오던 날 마중 나온 제가 아빠를 빤히 쳐다보며 아빠, 아빠 눈에 내가 있어!”라고 했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는 아빠. 낯선 모든 시간 속에서 나를 바라보던 아버지의 시선이 형제님과 겹쳐보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슬하의 자녀를 둔 아버지로 살아온 두 분의 시간을 통해 오늘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웁니다내 아이들에게 같은 아픔 주지 않기 위해서 포기하지 않고, 중독과 싸우고 남편과 아이들을 사랑하며 지내는 이 하루가 낯선 제게 하나님께서 보고 배울 두 분을 보여주시나 봅니다. 견디는 사랑, 버티는 사랑, 한 눈에 담으며 곁에서 함께하는 그 사랑, 아이를 따스히 바라보는 시선을 가진 사랑을 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내가 받지 못한 것만을 바라보며 자녀에게 가시만 돋히는 부모가 아니라 내게 있는 따스함을 주어서 새싹이 돋는 시선을 보내는 부모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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