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1)
라파공동체2026.03.28 15:244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1)
2025년 2월 10일부터 16일까지 한국에 산재한 아나뱁티스들이 온오프라인으로 모여 세계 아나뱁티즘 500주년, 한국 아나뱁티즘 30주년 기념행사를 열었습니다. 오프라인 행사로 진행된 2월 15일 춘천 모임에는 전국에서 스스로를 아나뱁티스트라고 여기거나 아나뱁티즘을 지향하는 30여 단체와 개인들 150여명이 오프라인으로 모여 얼굴을 대면하고 서로의 신앙을 고백하는 만남의 장이 열렸습니다. 종교의 세계에서 언제나 처음인 것에는 경외와 신비, 설레임이 있기 마련입니다. 인류 역사에 처음 기독교가 나타났을 때, 16C 종교개혁의 시기에 스위스 형제단을 통해 처음 아나뱁티스트가 나타났을 때, 한국에 처음 기독교가 들어오고 교회가 세워졌을 때 등등 모든 것의 처음이 갖는 경외와 신비, 신선함과 설레임이 한국 아나뱁티즘 30주년을 기념하는 모임에서도 참석한 모든 이들의 심령에 곱게 곱게 울려퍼졌습니다. 그러나 아나뱁티즘이 처음 생겨난 그날 밤의 풍경은 지금 우리가 누리는 축제의 설레임과는 사뭇 거리가 멀었습니다.
1525년 1월 21일 호숫가 찬바람이 부는 스위스 그로스뮌스터의 펠릭스 만쯔의 집에 10여명의 사람들이 야음을 틈타 모여들었습니다. 함께 모여 기도한 후 카톨릭 사제였던 게오르그 블라우락은 평신도 콘라드 그레벨에게 자신의 믿음과 지식에 근거한 그리스도의 참된 침례를 베풀어 달라고 간청하며 무릎을 꿇었고, 콘라드 그레벨은 그에게 관수례를 베풀었습니다. 침례를 받은 블라우락은 그 자리에 모인 다른 이들에게 침례를 베풀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스위스 형제단의 초기교회가 구성되었습니다. 초대교회 이후, 오랜 시간 카톨릭 크리스텐둠의 교회가 지배하던 세상에서 진정한 “신자의 침례”에 의한 “신자의 교회”가 탄생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서로에게 행했던 침례는 그들의 스승이었던 쯔빙글리가 반대하고, 취리히 행정당국도 금하였던 재침례(anabaptism 혹은 re-baptism)였습니다. 그것은 불법이었고 신성모독에 해당하여 엄벌에 처하는 행위였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카톨릭 사제였던 블라우락이 평신도였던 콘라드 그레벨에게 침례를 받는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었고,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최초의 아나뱁티즘이 시작된 그 밤, 거기 모인 10여명의 사람들을 지배했던 것은 알 수 없는 미래, 다가올 핍박에 대한 불안과 공포,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불안과 공포, 두려움, 심지어는 죽음조차도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주님을 향한 그분들의 뜨거운 신심과 성경의 진리를 향한 타오르는 열심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살을 에는 추위를 녹이고 캄캄한 어둠을 밝히는 뜨거운 횃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횃불은 꺼지지 않고 살아, 500년의 긴 시간을 돌아 오늘 여기 우리에게까지 이르렀습니다.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아나뱁티스트는 200만명 정도(메노나이트 150만, 아미쉬 40만, 후터라이트 4만 5천명)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미국과 캐나다를 중심으로 북미지역에 편재되어 있습니다. 이번 행사를 통해 함께 모인 우리들은 한국 아나뱁티즘의 30년 역사를 확인하였고, 그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한 이들을 포함하여 한국에 아나뱁티즘을 지향하는 신자들의 수가 가히 500여명은 되지 않을까 짐작해 보는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아나뱁티스들이 걸어온 지난 500년의 역사는 한마디로 형극의 가시밭 길이었고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그들이 걸어간 길에는 순교의 핏자국이 늘 뒤따랐고, 머리둘 곳 없이 이곳 저곳을 유리 방황해야 했습니다. 무려 500년 동안이나 말입니다! 아나뱁티스트 신앙의 선배들이 북미 지역에서 비교적 안연한 삶을 누리게 된 것도 불과 5-60년 전의 일입니다. 누군가가 아나뱁티스트의 길을 걷고자 한다면 그는 신앙의 선배들이 걸어간 그 길을 걸어야만 합니다. 그 길은 예수님께서 걸어간 길이고, 오늘도 주님은 당신의 신자들, 제자들을 당신의 걸어간 그 길, 당신의 제자들이었던 아나뱁티스들이 걸어간 그 길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 Ps : 저는 개인적으로 미국의 아나뱁티스트들이 안연한 삶을 누리기 시작한 때는 1972년 위스콘신대 요더의 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통해 아미쉬가 미국정부로부터 종교신념과 교육의 자유를 획득했던 때부터였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더 이상 아미쉬 부모들이 자녀들을 공교육에 보내지 않으며 학대한다는 이유로 감옥에 가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운 세상, 아나뱁티스들에 대한 세상의 공적 탄압이 종결된 때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 자유를 얻기까지 우리 믿음의 선배 아나뱁티스들은 무려 500년의 길을 걸어야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