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15)

라파공동체2026.03.28 15:244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15)



 옳고 그름을 가리려는 마음(시비지심, 是非之心)은 사람의 본성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비를 가리는 일은 없을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시비를 가르는 기준과 태도에 있습니다. 진리는 사람들을 시비의 자리로 이끕니다. 진리인 것과 진리가 아닌 것을 분별해야 할 수많은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 인생이며 역사입니다. 진리란 무엇인가에 대해 수많은 정의가 있겠지만 저는 “진리란 참되고 선하고 아름다운 것(진선미)”이며, “예수가 진리다” 라는 기독교적 관점의정의를 전제하며 이야기를 전개하려 합니다. 이 두 정의를 결합한다면 “예수를 통해, 그의 삶을 통해 우리는 참된 것과 선한 것과 아름다운 것, 곧 진리를 분별할 수 있다”가 되겠지요. 이 기준에 의하면 진리가 아닌 것은 “거짓되고 악하고 추한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진리가 아닌 것을 대할 때 그것을 제거해 버리거나 박멸해 버리고 싶은 심정이 되는 것은 시비지심을 가진 인간의 자연스런 성정의 발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 안에 내재된 하나님의 신성, 하나님 형상의 발현이기도 할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 진리에 대한 위의 정의에 대해서 쉽게 동의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지점에서 다시 시작됩니다. 진리에 대해 같은 기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똑같은 상황과 사안에 대해서도 전혀 다른 결론이 도출된다는 것입니다. 16C 종교개혁 당시 아나뱁티스트들을 포함한 반카톨릭 프로테스탄트 진영의 공통 슬로건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이었습니다. 루터와 츠빙글리, 칼뱅과 메노 시몬즈 공히 성경에 근거해 카톨릭 체제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동일한 성경에 근거해 루터 츠빙글리 칼뱅은 메노 시몬스를 핍박했습니다. 수많은 아나뱁티스트들을 죽였습니다. 그때로부터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나뱁티즘을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종교개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특히 장로교가 강한 교세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의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루터교와 개혁교회에 의해 아나뱁티스트들에게 씌여진 주홍글씨는 500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다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아나뱁티스트들의 억울하고 비통한 죽음은 충분히 신원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한국의 장로교회가 16C 그들의 선조들이 아나뱁티스들에게 행했던 잘못을 깊게 회개하고 용서와 사과를 구하는 날이 전세계적 차원에서 아나뱁티스트가 신원되고, 아나뱁티즘이 복권되는 희년의 날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16C 종교개혁 당시 아나뱁티스트들을 핍박하고 죽였던 세 대항세력 중 카톨릭과 루터교, 개혁교회와 아나뱁티스트 사이에서는 죄의 고백과 사과, 용서와 화해의 아름다운 일이 이미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루터와 츠빙글리, 칼뱅이 아나뱁티스트들을 수장시킬 때 “주님이 형제를 실족케 하는 자들은 연자멧돌을 목에 메고 물에 빠뜨리라” 하셨다고 했고, 화형시켜 처형할 때는 “주님께서 가라지는 골라내 불살라버리라” 하셨다고 말했습니다. 성경 말씀이, 예수님의 가르침이 순박한 신자들을 무자비하게 죽이는데 사용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끔찍하지 않습니까? 저들 종교개혁자들과 우리가 같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면서 아나뱁티스트 선조들은 뭐라 말했는지 아십니까? “주님께서는 가라지를 뽑지 말고 그냥 두라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였습니다. 16C 아나뱁티스트의 대부분은 배우지 못한 가난한 농노와 농민들이었습니다. 물론 츠빙글리의 강력한 논박자였던 발타자르 휘브마이어는 성경을 따르지 않는 당신들이야말로 가라지요, 당신들이 이단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긴 하였지만 말입니다.  



“(성인)침례로 인해 우리는 말할 수 없이 비참한 학대를 당하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말하고 증거하고 있지만... 오직 침례를 주고 받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 때문에 쫓기고 있다. 그 외에는 하등의 핍박 받을 이유가 없으니 이생에서나 죽음에서나 하나님의 최후 심판에서도 떳떳하다.” 

 평생을 박해를 피해 도망자로 살았던 메노 시몬즈의 이 고백이 오늘을 살아가는 아나뱁티스트들의 심금을 울리는 애가(哀歌)가 아닐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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