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17)

라파공동체2026.03.28 15:243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17)



 한국의 장로교가 아나뱁티스트들을 바라보는 일단의 시각을 아래 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의 글은 국제신학대학원 대학교 김재성 교수가 아미쉬에 대한 책  「아미쉬의 신앙과 문화」 (기독교문서선교회, 도널드 크레이빌 외, 정성국 역, 2018년)에 쓴 추천사의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필자가 본서를 추천하면서도 아미쉬 교회와 신학에 대해서 동의하거나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 아미쉬 교회는 기독교 교리들 중에서 일부 교리에만 집착하고 있고, 그들의 지도자들이 재해석한 몇가지 지침들만을 절대적인 원리로 제정하고 있어서, 성경 전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오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종교개혁자들이 가르친 교회에 대한 교훈들과는 다른 길을 추구하고 있으며, 반문화주의자들이고, 분리주의적인 복고주의에 집착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본서를 독자들에게 추천을 하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는 대학교수이고 지식인입니다. 그러나 아미쉬 아나뱁티스트 형제들의 삶에 대한 그의 평가와 판단은 지극히 잘못되었습니다. 그들에 대한 무지와 오해, 편견의 결과라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진실에 대한 “공감적 성찰”이 결여된 판단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와 김재성 교수에 대해 검색해 보았습니다. 칼빈 신학 전공자이면서 전문가더군요. 저서가 무려 20여권에 달하는 다작 저술가이기도 했습니다.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는 1993년 개교한 국제신학교가 1999년 세운 대학원대학교입니다. 2022년 교명을 수도국제대학원대학교로 개명했더군요. 이 학교의 설립 이념과 사명은 학교 홈페이지에 이렇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사명은, 

첫째, 진실한 성도로서 개혁주의 신학을 바르게 세우는 일입니다.

한국 장로교회 안에는 약간의 불순물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동안 보수적 복음주의 교회들이 진보적 자유사상에만 민감한 나머지 신비주의, 세대주의, 물질주의, 성공주의 등에는 크게 신경쓰지 못했음이 사실입니다. 이로 인해 이제는 개혁주의 신학이 오해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므로 장로교 신학의 우수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개혁주의 신학을 재정립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일입니다.

둘째, 성실한 학도로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는 일입니다.

성경 말씀은 바르게 가르쳐질 때 그 능력이 나타납니다. 가감하거나 오염된 말씀에서는 결코 그 능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사회교육은 날이 다르게 발전하고 있음에도 교회교육은 답보상태에 있은 지 오래입니다. 달고 오묘한 말씀의 은혜의 바다를 항해하겠습니다.

셋째, 충실한 사도로서 영성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말씀은 우리의 영성회복을 위해 주어졌고, 또 영성이 회복된 자만 그 말씀을 이해하고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능력을 잃어버린 것은 영성이 약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기초한 바른 영성을 회복하는 일에 힘쓰겠습니다.



우리는 참된 신학 교육과 말씀 전수는 영성회복을 통해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데 그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제 역할을 다하는 교회를 세우기 위해 본 대학원대학교가 그 사명을 바르게 감당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본교의 존재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학교가 한국의 장로교 전체를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들의 선언을 보면 한국의 장로교가 개혁주의 신학 - 츠빙글리와 칼빈에 의해 시작된 – 에 기초하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가 있습니다. 이 학교의 사명은 개혁주의 신학을 바르게 세우는 일,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는 일, 성경에 기초한 바른 영성을 회복하는 일로 요약됩니다. 나는 이 학교의 사명이 바르게 실현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러나 그 사명이 바르게 실현되려면 그들 선조들의 공과도 공정하게 평가되어야 합니다. 개혁주의 신앙과 신학의 최대 약점은 아나뱁티스트의 존재 그 자체입니다. 츠빙글리와 칼뱅은 수많은 아나뱁티스트들을 죽였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붉은 피가 묻었습니다. 그러나 아나뱁티스트들은 죽여도 죽여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습니다. 개혁교회의 후예들에게는 그들 선조들의 손에 묻은 피를 씻어내야 할 신성한 의무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 자신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고 모두를 위해서도 좋은 일입니다. 용서와 화해는 하나님의 일이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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