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18)

라파공동체2026.03.28 15:243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18)



 오늘날의 한국 개혁주의 신앙과 장로교가 아나뱁티즘을 바라보는 일단의 시각을 아미쉬에 대한 위의 김교수의 평가에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아나뱁티즘에 대한 김교수의 시각에 저는 전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아나뱁티스트의 견지에서 그의 아나뱁티즘에 대한 평가는 지극히 잘못된 것이며 진실을 오도하는 것입니다. 아나뱁티스트를 이해하고 아나뱁티즘을 저의 신앙과 신학으로 받아들이기까지 저는 돈오(頓悟)의 황홀한 순간으로부터 점수(漸修)의 긴 시간을 지나야 했습니다. 그것은 저 자신의 신앙생활의 성장과 성숙의 여정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미쉬에 대한 김교수의 진술에 지금은 동의하지 않지만 그러나 그의 진술의 일부는  또한 지난날의 저의 입장이요 관점이고 평가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미쉬의 신앙과 문화」는 제게 선물로 주어진 책이었습니다. 저 자신이 아나뱁티스트가 되기 위한 길에서 나섰던 마지막 관문은 아나뱁티즘의 한 분파인 아미쉬였습니다. 아미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이 책을 통해 저는 아미쉬에 대해 충만한 이해에 도달했음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 책 이전에 제가 아미쉬에 대해 깊이 알게 된 것은 「아미쉬 사회」 (존A.호스테틀러, 김아림역, 도서출판 생각과 사람들, 2013년)를 통해서였습니다. 이 책은 1963년에 처음 출판된 이후 1968년, 1980년, 1993년에 여러 차레 수정 편집된 아미쉬 사회에 대한 독보적인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인 존A.호스테틀러는 22살때까지 아미쉬 일원으로 산 덕분에 아미쉬 문화의 다양성과 깊이를 배울 수 있었고 그 삶을 통하여 혈연과 믿음의 끈을 경험하기도 하였고 불화와 축출 분열의 비극을 지켜보기도 하였다고 93년판 서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 책을 기반으로 도널드 B. 크레이빌, 카렌 M 존슨 바이너, 스티븐 M 놀트는 25년간 아미쉬의 역사, 종교, 문화를 연구합니다. 그 연구의 결정판인 이 책 「아미쉬의 신앙과 문화」는 제게 아미쉬의 신앙과 사회, 문화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결정적으로 넓혀주고 확증해 준 참으로 고마운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똑같은 책을 보고 추천사를 쓴 김교수와 저는 너무 다른 평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미쉬를 깊이 알고 받아들이기 전까지 김교수의 일부 견해가 저의 견해였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특히 아미쉬에 대해 “반문화주의자들이고, 분리주의적인 복고주의에 집착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는 평가에 대해서도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지만 저 자신도 비슷한 생각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음을 인정합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대다수 미국인들이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아미쉬를 볼 때의 느낌을 「뉴욕 타임스」나 여타 출판물들은 “칙칙한”, “이상한”, 기껏해야 “진기한” 정도로 표현합니다. 아미쉬를 지켜보면서 제가 느낀 표현을 첨가하자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지나치게 완고하고 편협한”, “딴 나라에서 살아가는”정도의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죽하면 미국에서 아미쉬가 많이 거주하는 펜실베니아, 오하이오, 인디애나주를 찾는 미국인 관광객들의 숫자가 연간 2,000만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마치 한국에서 오래된 고촌이나 민속마을 – 하회마을, 양동마을, 외암리 등 - 을 방문하듯이 말입니다. 이들 방문객들이 보고 느끼고 경험한 것에 대해 축적된 연구자료는 없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아미쉬 사회를 방문하고 돌아간 사람들이 “어떤 이는 주류 사회생활의 우월성을 확신하고 차로 여행하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갈 것이고, 다른 사람은 아미쉬의 삶에 대해 존경심과 함께 반대감정을 동시에 간직한 채 그곳을 떠날 것이며, 또 다른 사람은 가정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텔레비전을 덜 보거나, 종교생활에 더 참석하는 등의 일부 아미쉬 문화의 특성을 그들 자신의 삶 속에 적용할 만큼 아미쉬 삶에 대해 찬사를 보낼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표현 그대로 저는 처음 부류의 사람들처럼 ‘나는 저렇게는 못살아’에서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사는거지’의 단계를 거쳐 ‘아하, 저 사람들은 그래서 저렇게 사는구나’하는 깨달음의 시간을 지나 지금은 ‘내가 비록 그들의 삶을 그대로 따르며 살지는 못하지만 그들이 왜 그런 삶을 사는지에 대해서는 100 퍼센트 동의하고 공감하며 그들과 한 뜻, 한 지향 안에서 살아간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의 검토 끝에 나 스스로가 아미쉬의 친구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생존하여 현실에 뿌리 내리고 존재하고 있다는 것에 고마와 하면서 말입니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