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22)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22)
1525년은 토마스 뮌처가 이끌던 독일 농민혁명이 명멸한 해이기도 하고, 스위스에서 아나뱁티즘이 탄생한 해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토마스 뮌처가 아나뱁티스트와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은 시간적으로 불가능 했습니다. 1524년쯤 펠릭스 만쯔와 콘라드 그레벨 등의 스위스 형제단 그룹과 뮌처 사이에 서신 교류가 있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이 서신에서도 그들 사이에는 이미 상당한 차이가 있음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토마스 뮌처는 엄밀히 말하면 루터와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뮌처가 종교개혁가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 것도 루터를 만나면서부터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은 서로 갈라지게 되고 격렬히 대립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뮌처가 억압받는 농민을 대변하였다면 루터는 영주와 귀족 계급의 편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토마스 뮌처는 루터와 대립하였고 결국 루터파에 의해 죽임당했지만 아나뱁티스트의 견지에서 볼 때 토마스 뮌처는 루터의 신앙과 신학에 더 가까웠다고 볼 수 있습니다. 토마스 뮌처는 유아세례를 반대하고 가난 한 자의 편에 섰다는 점에서는 아나뱁티스트와 한편이었지만 폭력을 용인하고 신정국가를 건설하려 했다는 점에서는 루터와 같았습니다. 중세 신비주의적 전통을 계승하고 성령의 역사를 강조했다는 점은 토마스 뮌처 신앙과 신학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아나뱁티스트와 루터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는 특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토마스 뮌처가 어떤 인물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성령주의와 아나뱁티스트 종교개혁자들」에서 소개하고 있는 토마스 뮌처의 설교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 설교는 다니엘서 2장을 주석한 것으로 루터를 지지하던 영주들과 관료들 앞에서 1524년 7월 13일 행한 것이었습니다. 이 설교에서 뮌처는 담대하게 성직자들과 군주들의 권력혼합체인 혐오스러운 봉건제도가 신성한 돌 – 그리스도와 그의 성도들 –에 의해 몰락할 것을 예언하며 그때가 도래하였음을 선포합니다. 이 설교문을 보면 성경에 해박한 신학자로서의 뮌처의 진면목을 알게 될 뿐 아니라 권력 앞에 굴하지 않는 당당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의 설교는 마치 바울이 왕과 로마 총독들과 고위 관료들 앞에서 행한 설교를 방불케 하고, 헤롯의 불의를 통렬히 고발한 침례 요한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이 설교를 통해 뮌처는 느브갓네살의 꿈을 다니엘이 해석한 것을 재해석하면서 인류의 역사를 바빌론 왕국 – 메데와 바사 왕국 – 희랍 왕국 – 로마 제국의 흥망사로 열거하면서 이제 사악한 사제들과 영주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제5의 봉건국가 멸망의 때가 도래했음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새 다니엘로 선포합니다. 설교에서 뮌처는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0-22) 말씀을 근거로 구약과 신약에 등장하는 꿈과 환상 사건들 – 아브라함에게 여러 차례 나타나신 하나님, 벧엘과 얍복강가에서 야곱이 만난 하나님, 애굽의 감옥에서 얻게 된 요셉의 해몽 능력,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에게 현몽하신 하나님, 베드로가 경험한 보자기 환상, 바울에게 나타나 선교의 길을 마케도냐로 인도하는 환상 등등 - 을 일일이 나열하면서 베드로를 통해 이미 선포된 바 있는 요엘의 예언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합니다.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계시인 꿈과 환상을 받은 자, 말씀 맡은 자로, 그리고 모든 참된 신자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직접 받음으로 말씀을 박제한 카톨릭과 루터교 사제들 – 설교에서는 그들에 대해 ‘살찐 돼지 형제’, ‘안이하게 사는 형제’들로 묘사합니다 - 과 다르게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을 통해 참되게 받고 실천할 수 있음을 역설합니다.
그의 성령주의는 건강합니다. 루터가 비난한 것처럼 광신적이지 않습니다. 얀 마티스, 얀 판 레이덴의 성령주의와도 결이 다릅니다. 흔히 열광적 광신주의의 대명사처럼 알려진 러시아 제정 말기의 라스푸틴에게서 나타나는 그것과도 확실히 다릅니다. 그의 성령주의는 성경을 독점한 사제계급에 대해 문맹이었던 대다수 농민들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하나님의 계시를 받음으로 성경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계몽하려 한 측면이 농후합니다. 그의 성령주의는 성경을 사제계급의 독점적 영역으로부터 문맹이었던 대다수 농노와 농민들에게 돌려주려는 애민의식에서 비롯되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뮌처의 성령주의는 오늘날의 오순절 주의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건강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그런 점에서 토마스 뮌처의 성령주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불식되어야 합니다. 귀족계급화된 사제들과 봉건영주들의 결탁으로 이루어진 이른바 다니엘의 제5왕국의 몰락을 예언했던 뮌처의 예지력은 중세의 몰락과 근대의 탄생이라는 시대적 변화에 의해 사실로 증명되었고 세상은 그를 시대를 앞서간 혁명가로 기억하며 높이기에 이르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