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28)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28)
1980년 민주화의 봄 당시 북한을 다녀온 재미정치학자 서대숙 교수의 북한 관련 강연은 제 귀를 의심케 하는 진술들로 가득찼습니다. 훗날 황석영이 1989년 북한을 방문하고 쓴 책 「사람이 살고 있었네」에서 증언하고 있듯이 북한에서도 사람이 살고 있고 그들도 우리와 같은 성정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해마다 6.25 반공포스터 그림전시회에서 그리곤 했던 뿔 달린 도깨비나 악마가 아니라 북한에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가히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남한과 북한에 대한 인식의 혼란은 김일성과 박정희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종지부를 찍게 되었습니다. 김일성은 실존 인물이 아니고 김성주란 실제 항일독립운동가의 이름을 김일성이 차용한 것이라고 배워 알고 있었던 저에게 김성주가 곧 김일성이며 김일성이 항일유격 투쟁에서 벌였던 많은 전투 – 그 중 국내진공전투였던 보천보 전투가 가장 유명한데 - 가 역사적 사실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가 중국에서 육문중학교를 다니면서 중등시절부터 항일운동에 투신한 것도 사실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비해 남한의 통수권자였던 박정희가 독립군을 때려잡기 위해 일제가 만든 만주군관학교 출신으로 그의 일본명은 타카기 마사오이며 이후 일본육군사관학교를 거쳐 8.15 광복 때까지 만주국 장교로 근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독립투쟁에서 민족적 정통성이 남한의 박정희 대통령 보다는 북한의 김일성에게 더 있다고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내 마음의 조국이 남한에서 북한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서울 지하철이 개통된 것이 1974년이었는데, 이보다 1년 먼저 1973년 평양 지하철이 개통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당시 독재정권이 북한에 대해서 선전하는 모든 것을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남한 정부를 더 이상 믿고 신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을 배우고 일본어로 된 조악한 수준의 금서와 당시 제3세계를 휩쓸던 제3세계 종속이론 등을 공부하면서 제국주의의 몰락과 사회주의의 승리를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군부독재 타도와 민주주의의 성취를 대중적 기치로 내세웠지만 더 깊은 곳에서는 사회주의 혁명의 완성을 추구하였습니다.
1986년경 남한 사회주의 운동권 안에 주체사상이 소개되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운동권의 주류를 형성하기 시작합니다. 1955년 김일성으로부터 태동되기 시작한 북한식 사회주의 노선을 북한의 김정일은 “주체사상”으로 정식화하기에 이르고 1982년 노작 “주체사상에 대하여”를 발표합니다. “주체사상에 대하여”가 평양에서 발표된 지 채 4년이 지나지 않아 남한 학생운동권과 노동운동권에 주체사상 열풍이 불어닥칩니다. 이른바 386 주사파 운동권이 태동하고 남한 운동권과 북한 노동당 사이에 사상적, 정서적 유대가 급속히 강화됩니다. 친북주의자가 속출하고 저도 그 흐름에 올라탑니다. 1987년 민주대항쟁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민주헌법체제가 수립된 이후 이른바 주사파는 전교조와 민주노총의 설립 등으로 외형을 확장하고 강화합니다. 기존 자본주의 반공주의 우파 일색이었던 남한 사회에서 좌파 사회주의 사상의 일대 반격이 체계적으로, 대중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우파 중심으로 편재되었던 한국 사회가 좌우 주장이 균형을 이루는 사회로 변모합니다. 1989년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독과 서독이 통일됩니다. 동구 사회주의권이 전면적으로 무너지고 1991년 사회주의 진영의 맹주였던 소련 소비에트 연방도 붕괴되기에 이릅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다행스럽게도 남한 사회에서 사회주의 혁명의 깃발은 더 이상 나부끼지 않게 됩니다. 사회주의 이상은 민주주의 제도 정치권 안에서, 전교조와 민노총 등의 활동을 통해 제도권 질서에 편입됩니다. (그러나 이때로부터 20년이 지나 뉴라이트 운동이 시작되고 최근에는 기독교극우혁명세력, 전광훈 목사를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기독혁명당이 탄생합니다. 제가 80-90년대의 사상사적 흐름을 약술하는 이유는 후에 기독교극우혁명세력의 태동과 12.3 비상계엄의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그 모든 진술의 목적은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는 과연 누구이며,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답하기 위해서입니다.)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남과 북의 관계는 6.25 전쟁 이후 80년대까지는 경제적 측면에서나 외교적 측면에서 북한이 비교 우위에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북한은 제3세계 비동맹외교에서 남한을 압도했습니다. 그러나 80년대 들어서면서 남한이 경제적 측면 뿐만아니라 다른 여러 측면에서도 서서히 북한에 대해 비교 우위를 점하기 시작하더니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진영이 붕괴하면서 남과 북의 격차는 비교가 무의미할 정도로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같은 사회주의권이었지만 중국은 등소평 체제 하에서 1978년부터 서서히 개혁 개방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합니다. 89-91년 동구권과 소련 사회주의 진영이 붕괴될 때에도 중국은 독자노선을 견지하면서 위기를 돌파했고 최근년에는 미국과 세계 제1위 경제대국의 자리를 놓고 패권을 겨루는 경제강국으로 성장합니다. 이 시기 북한은 개혁 개방 정책을 부분적으로 시행하는 한편 주체사상을 더욱 강화하고 선군정치를 강조하면서 위기를 타개해 나가고 근자에는 핵무력을 완성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1991년 소련 사회주의 연방이 붕괴되면서 사회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완전한 승리가 구가되는 듯했지만 2025년 현재 소련은 국가자본주의로 재기했으며, 중국은 사회주의 공산당 체제를 유지하면서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루어 경제 대국이 되었고, 북한은 여전히 사회주의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엄혹한 환경을 견뎌내고 생존에 성공했습니다. 이들 나라들과 우리는 어떻게 지내야 할까요? 전광훈류의 주장처럼 “체제 전쟁”을 벌일 때가 아니라 7-80년대 모든 국민들이 암송했던 국민교육헌장의 내용처럼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가 지금이 아닐까요? 평화 공존의 절호의 때가 지금이 아닐까요? 지난날 총을 들고 맞서 싸웠던 베트남과 한국이 평화 공존의 관계를 수립한 것처럼 남한과 북한이 이데올르기와 체제 대립을 넘어 평화 공존의 관계를 맺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