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31)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31)
기공수련을 통해 정신이 통일되어 고요 속으로 진입할 때, 근심, 걱정, 염려, 불안 등의 잡생각과 사념이 사라지고 마음이 텅빈 공허의 상태가 될 때, 비로서 나는 나를 볼 수가 있었습니다. 이른바 나 자신의 본성을 관(觀)하게 된 것입니다. 불경에 관한 여러 차례의 강의를 들었지만 제 마음속에 뚜렷하게 기억되는 강의가 있었습니다. 수련을 하는 목적 중의 하나가 인간 모두가 가지고 있는 사상(四相) -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 -을 극복하는데 있다는 강의가 제 마음에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인간은 이 네 가지 상에 집착하고 있는데 이 상을 끊어버리는 것이 수련이라 했습니다. 아상(我相)이란 자기 중심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으로 꼭 내가 해야해, 나 아니면 안돼 하는 마음이라 했습니다. 인상(人相)은 타인에 대한 집착으로 너는 이래서 안돼, 너는 이런 저런게 문제야 하며 타인을 고정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중생상(衆生相)은 아이구, 너희 같은 중생들이 뭘... 하는 시선으로 세상 사람을 바라보거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나같은 중생이 뭘 하겠어 하며 타인과 자기를 평가절하 하는 시선이라 했습니다. 수자상(壽者相)은 이 영예는 내꺼야 하는 마음으로 영원한 자기의 영광을 추구하는 마음, 자기는 영원할 것 같은 존재인 줄 착각하는 마음이라 했습니다. 아이구머니나! 그것이 저 자신이었습니다. 세상 천지 자기만 옳은 줄 알고 세상 짐 자기 혼자 진 줄 알고 살아온, 진정 자기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살아온 무지한 중생이 바로 저였습니다. 그때 저는 나라는 존재가 아(我), 곧 손(手)에 창(戈)을 들고 있는 존재인 것을 알았습니다. 평화를 누리려면 내 존재 안에 있는 마음속 창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인간은 평화를 추구하는 마음도 있지만 손에 칼을 들고 여차하면 상대를 베어버리려는 본성을 가진 존재였던 것입니다.
종교의 세계에 들어오기 전 저는 전적으로 성선설을 믿는 입장이었습니다. 사람의 본성이 기본적으로 착한 존재라고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삶의 자세와 태도에 있어서도 낙관론자였습니다. 그런데 불경의 강의를 들으면서, 참선의 단계가 점차 높아지면서 저는 제 마음속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는 악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악의 본질은 철저한 “자기중심성”이었습니다. 이타적인 행동을 할 때조차도 저의 본성은 자기중심적이었습니다. 이타적인 행동이 내게 무엇인가 이익을 주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이익은 일종의 자기 만족감 혹은 누군가를 도와줄 때 흔히 얻게 되는 우월감 같은 것이었습니다. 민중을 위하여 혁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실천했지만 그 이면에는 나 자신의 입신양명을 꾀하는 야망이 꽁꽁 숨어 있었음을 발견했습니다. “민중을 위하여”는 겉으로 내세운 대의명분일뿐 본심은 입신양명하려는 야망이었습니다. 민중을 위한 투쟁의 삶을 위해 감옥을 가는 것도 불사하며, 목숨조차도 기꺼이 내어놓고 살았지만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나의 입신양명을 위해, 야망의 성취를 위해 기꺼이 그와 같은 고난도 감수할 수 있다는 자기중심성이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혁명의 깃발을 내리고 그렇게 상실감에 힘들어하는 것도 사실은 자기의 야망이 꺾인 것을 견디지 못해 힘들어하는 것임도 알게 되었습니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선함이, 이타성이 내 안에 전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 자기중심성이라는 본성과 동기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던 것이 제 삶의 본모습이었습니다. 그것이 사상(四相)에 붙잡힌 적나라한 저의 내면의 실체요 본성이었습니다. 그때 성철 스님의 가르침을 알게 되었습니다. 면벽수행 10년, 장좌불와 10년 등 인간으로서는 행할 수 없는 엄청난 수행의 공력을 가진 스님이 사바 대중들이 한 말씀 부탁할 때 해 주었다는 “자기를 바로 보세요. 남을 위해 사세요”의 가르침을 들었을 때 저는 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을 때 로마 백부장이 “이분은 정녕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고 고백한 것처럼 저도 성철 스님의 가르침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의 화두와 함께 성철 스님의 두 가르침은 인생살이에 대한 완전한 지혜였습니다. 참 좋은 인생살이를 이렇게 단순하게 요약하신 성철 스님은 제 눈에 정녕 성자셨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스님 말씀대로만 산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답고 살만한 곳이 될까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눈이 번쩍 띄었습니다. 후에 예수님이 저를 찾아오신 후 성경을 알게 되었을 때 성철 스님과 똑같은 말을 예수님께서도 하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성철 스님의 말을 뛰어 넘어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원수 사랑”은 신앙하는 제 삶의 평생 화두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