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33)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33)
1995년 3월경 아내가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고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가 미국에 이민 가서 살던 중 암이 발병되고 시한부 인생이 되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 친구를 따라 교회에 나간 것이 인연이 되었습니다. 제가 불교에 가까운 수련생활을 일상 가운데 행하고 있는 것을 알았기에 아내는 조심스럽게 교회 출석에 대한 동의를 구했고 저는 나한테도 같이 가자고만 안한다면 좋다고 동의했습니다. 희안하게도 아내는 교회에 잘 적응하였고 신앙훈련과 교육에 열심이었습니다. 아내나 저나 둘 다 미션스쿨을 다녔고 고등학교 대학교 생활을 통해 성경 공부도 하고 숱한 예배에 출석했지만 우리에게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랬는데 신기하게도 아내가 교회생활에 푹빠져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런 아내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흥미롭기도 했지만 마음 한편에선 혹시 이단에 빠진 건 아닌가 하는 마음에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어느날부턴가는 카세트 테이프에서 찬송가가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람이 교회에 빠져도 보통 빠진게 아니구나 하는 마음에 퇴근하면 아내의 상태를 점검하는게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내가 신앙훈련을 하고 분에 못이겨 집에 돌아왔습니다. 사연인즉, 신앙훈련 과정 중에 “죄”에 대해 공부하게 되었고, 공부를 인도하던 담임목사가 아내에게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고 자매님도 죄인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분을 못삭이며 내가 왜 죄인이냐고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그때 제가 말했습니다. 우리 죄인 맞는데...너네 기독교도 우리 불교하고 같은가 보다 라고 말입니다. 저는 이미 참선수련을 통해 내 안의 죄성, 악한 본성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퇴근 후 저녁시간이 되면 자신의 교회생활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는 제가 귀찮던지 아내는 그렇게 기독교가 궁금하면 당신이 직접 성경을 보라고 말했습니다. 1995년 6월 말 제 손으로 처음으로 성경을 잡고 읽기 시작합니다. 마태복음을 읽게 되었는데 그 때 주의 영이 제게 임합니다.
#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니 하시니 /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마 4:18-20)
이 말씀을 읽을 때 비위가 살짝 상했습니다. 아니, 지가 뭔데 사람을 낚아. 사람이 물고기야? 하는 반감이 들었지만 이내 수그러 들었습니다. 그것보다는 베드로와 안드레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나섰다는 진술이 놀라웠습니다. 아니, 이 사람이 누구길래, 뭘 믿고 그물을 버려두고 생업을 접고 따라가지 하는 생각에 압도되었습니다.
#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 5:3)
욕심 버리고 마음 비우고 살아라. 그러면 네가 천국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뭐 이런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읽는 순간 제 마음이 쿵쾅쿵쾅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우와. 이건 진짜 진리의 말씀이다. 어떻게 사람이 행복에 이르는 길을 이렇게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분은 보통 분이 아니다. 정말 대단한 분이구나. 가히 성철 스님에 필적하는 분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에 모골이 송연해졌습니다. 그 말씀에서 시작해 산상수훈의 말씀이 이어졌습니다. 저는 그 말씀들에 완전히 압도당했습니다. 인간이 무얼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완전한 가르침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살기만 한다면 거기가 바로 천국일 수밖에 없다는 감동이 일었습니다.
#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7-18)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이길래 이렇게 엄청난 말을 하지? 율법이 뭐라고, 자기가 한 말이 뭐라고 천지가 없어져도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는다는 거야? 인간이 이렇게 말할 수 있는거야?
#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침에 놀래니 /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마 7:28-29) 이 말씀 그대로, 예수님의 설교를 들었던 그 시대 사람들이 느꼈던 그런 감동을 저도 동일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분의 가르침은 제가 지금껏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엄청난 권위와 무게감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산상수훈의 말씀을 미션스쿨을 다녔는데 왜 전에 들어본 적이 없었겠습니까. 이제 때가 되어 들리기 시작한 것이겠지요.)
# “배가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마 14:24-25) 마태복음 14장쯤 오니 위의 말씀도 그냥 믿어졌습니다. 마태복음의 모든 진술들이 역사적 사실로 그냥 믿어졌습니다. 아무런 의심이나 의구심이 들지 않았습니다.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의 존재를 역사적 사실로 믿듯이, 난중일기를 믿듯이 예수에 관한 모든 진술들이 사실로 믿어졌습니다. 사실 그때까지 제가 기독교에 대해서 가지고 있었던 부정적 생각의 핵심에는 “물 위를 걸은 예수”가 있었습니다. 아니 20세기 대명천지에 물 위를 걸었다는 예수라는 사람을 믿는 종교가 도대체 정상적이기는 한건가? 하는 의구심이었습니다. 그걸 믿는 것과 박혁거세가 알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믿는 것과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신화들일 뿐이었지요. 그랬는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다”는 진술이 신화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로 옮겨오게 된 것입니다. 웬지, 이분이라면 능히 그러고도 남을 것 같다는 믿음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성경이 믿어지고 예수가 믿어지는 믿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