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36)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36)
지금까지의 저의 30여 년에 걸친 신앙생활 중 가장 극적이고 강렬한 영적 체험의 순간을 고르라면 그것은 95년 7월 23일(혹은 30일) 예배시간에 일어난 그리스도의 육화 사건일 것입니다. 교회 생활을 시작한 지 채 한 달이 안 된 시점이라 예배행습에 대해 서툴던 때였습니다. 담임목사님의 설교와 축도가 끝나서 예배가 끝났는가보다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 예배 2부 행사로 <주의 만찬>을 행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로서는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예배의식이었고 그 의미에 대해서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예배행습이었습니다. 이건 뭔 퍼포먼스? 하는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성경말씀이 읽혀지고 “이것은 주님의 살입니다”라는 목사님의 선포와 함께 예배당 맨 앞으로부터 몇몇 봉사자가 빵조각이 든 쟁반을 들고 예배당 뒤로 걸어오면서 모든 교인들에게 빵 조각을 나눠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놀라운 광경이 제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큰 빛, 설명할 길 없는 큰 빛이 홀연히 저와 제 주변을 비추었습니다. 그 밝기와 광휘로움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만일 그것이 자연적인 빛의 광휘로움이었다면, 마치 우리 육신의 두 눈으로 태양 빛을 응시할 수 없듯이 아마도 제 눈은 타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다메섹 도상의 청년 사울은 그 “큰 빛”(“해보다 더 밝은 빛”, 행 26:13)을 보고 몇일 동안 눈이 멀어 보지 못하였다 했는데 저는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지 않아 다행이었을 뿐입니다. 한없이 밝고 맑고 깨끗하며 순수한 빛이 저를 둘렀는데 그 빛은 이 끝에서 저 우주 끝까지 광대무변의 공간을 비추는 듯했습니다. 무한대로 펼쳐진 빛의 향연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무한히 펼쳐진 빛의 세계 저 한 켠에 보이지도 않는 한 점으로 존재하는 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제 존재는 무한대 앞에선 무한소의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존재적으로는 아무 의미도 없는, “단위” 조차 성립되지 않는 무의미의 존재가 저 자신이었습니다. 그랬는데 그 무한소의 점이 점점 커지면서 그 점의 속성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점의 속성은 어둠과 추함과 더러움이었습니다. 광대무변을 비추는 순수의 빛 가운데에서 존재 자체의 의미조차 찾을 수 없을 만큼 작고 작은 무한소의 그 점 안에 추함과 더러움이 가득차 있었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참됨과 선함과 아름다움 앞에 선 저 자신의 존재
적 실체였습니다. 부끄러워서 그 빛 앞에 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몸 둘 바를 몰라 어찌할 줄을 몰랐습니다. 그때 눈물샘이 터졌습니다. 아아, 눈물을 준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하나님의 순결한 엄위로움 앞에 서 있는 내 존재의 비참함을 목도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반응은 우는 것이었습니다. 울고 또 우는 것이었습니다. 그 영원 같은 찰나의 순간에,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었는데 의식 세계 속에서는 놀라운 각성과 통찰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나 같이 미미한 자를, 더럽고 추하기가 한량없는 자를 1:1로 만나주시는 하나님의 행위, 그 현존은 나 같은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이었습니다. “은혜 위에 은혜”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 없는, “한량없는 은혜”라고 밖에는 달리 어떻게 노래할 길 없는 감당못 할 사랑이었습니다. 그 사랑과 은혜에 겨워 저는 그저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로부터 “내가(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나(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는 로마서 5장 8절 말씀은 나의 최애 성경 구절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의 초창기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역시 제 최애 찬송가가 되었고 찬송가 가사 중 “하늘을 두루마리 삼과 바다를 먹물 삼아도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하지 못하네”의 구절 그대로가 바로 제 마음이었습니다.
그날의 눈물은 또한 회개의 눈물이었습니다. 저는 일찍이 저 자신을 관(觀)한 경험을 통해 내 안의 악한 본성, 곧 죄성을 보았고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크기와 무게가 어떠한 것인지를 잘 알 수 없었습니다. 기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훗날 사도가 된 바울이 자신에 대해 “죄인 중에 죄인, 괴수 중의 괴수”라고 표현할 때 이건 좀 과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에 너나 내나 도낀 깨긴 정도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날, 그 찰나의 순간에 제가 보고 느끼고 알게 된 것은 저의 죄의 무게와 크기의 어떠함이었습니다. “절대”라는 단어의 실체를 그날 저는 경험했습니다. 칼 바르트가 하나님에 대해 “절대적 타자”라고 불렀을 때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죄와 악은 그리스도의 현존 앞에 섰을 때, 비로소 선명히 드러나는 것이었습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그래 너도 죄인이고 나도 죄인이다 차원이 아닌 나 자신은 절대 선(善) 앞에선 절대 악이었습니다. 다른 이들과 비교해 볼 필요도 없이 저 자신이 “죄인 중의 죄인, 괴수 중의 괴수”였던 것입니다. 그런 나를 위해 예수님께서 자기 생명을 바치셨다는 것입니다. 자기 살과 피를 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살”이 지금 제 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그것은 단순한 화학물질로서의 빵조각이 아니라 저를 위해 자기 생명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살”이었습니다. 안돼요. 주님. 저는 주님의 살을 먹을 수 없습니다. 저 같은 죄인이 어떻게 거룩하신 주님의 살을 먹습니까? 안 됩니다. 저를 비껴가세요. 제 내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턱이 없는 봉사자의 발걸음이 마침내 제 앞에 이르렀고 저는 울면서 주님의 “살”을 먹었습니다.이어서 “이것은 주님의 피입니다” 라는 선포와 함께 이번에는 포도주가 전해졌습니다. 동일한 심정으로 저는 이 잔이 제게서 비껴가길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울음은 더 커져만 갔습니다. 안됩니다, 주님. 어찌 제가 주님의 피를 마실 수 있단 말입니까? 않됩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처절한 내적 절규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 앞에 놓인 주님의 “피”를 결국 마셨습니다.
아아, 저는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 자가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의 와중에서 극심한 위협과 두려움에 처할 때마다 루터가 “나는 침례 받았다!”라고 선언하면서 어려움을 이겨나갔다고 하는데 나는 그때로부터 “나는 주님의 살을 먹었다! 나는 주님의 피를 마셨다!”라고 영혼으로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은 제게 당신의 살과 피를 주심으로 저를 당신의 것으로 인(印)치셨습니다. 주님이 당신의 생명을 저를 위해 내어주셨으니 내 생명을 주님께 내어드림이 마땅하였습니다. 내 생명도 내 몸도 이제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이 날의 경험은 평생 저의 신앙과 신학,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저의 정체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종교개혁 시기에 루터와 츠빙글리가 갈라진 결정적인 이유가 주의 만찬을 둘러싼 논쟁에서의 차이 때문이었는데, 루터는 화체설을, 츠빙글리는 상징설을 주장하였고 그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두 사람은 결국 결별하게 됩니다. 그 날의 경험을 통해 저는 화체설을 믿습니다. 그러나 그 경험은 제 평생에 그때 한번 뿐이었습니다. 그때를 제외한 지금까지의 모든 주의 만찬은 신앙적, 신학적 상징의 의미로 지켜졌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화체설도 믿고 상징설도 믿습니다. 그런 저의 경험으로 볼 때 루터도 옳았고 츠빙글리도 옳았습니다. 서로 싸울 일도 아니었고 그로 인해 서로 등질 필요도 없는 사안이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영적 천재 소리를 들었던 루터나 츠빙글리도 하나님 나라 안에서는 어린아이에 불과할 따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