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37)

라파공동체2026.03.28 15:243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37)  



 1995년 7월 9일 교회에 처음 출석한 그때 저는 실직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면 성경 한 권을 달랑 들고 교회로 출근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일과였습니다. 교회 5층 작은 도서관이 저의 출근처였습니다. 시원한 에어컨이 설치된 곳에서 마음껏 성경 보고, 진열되어 있는 신앙서적 보고, 심심하면 비치된 비디오 보면서 꿈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점심 때가 되면 목사님, 전도사님, 사무원들이 불러서 밥을 사줬습니다. 천국도 이런 천국이 없었습니다. 내 평생에 아마도 이 같은 안식의 때가 다시는 없을 것 같은 예감이 있었습니다. 8월 초순의 어느 날, 그날도 도서관 안에서 뒹글렁 뒹글렁 시간을 보내다 도서관에 비치된 <나자렛 예수>란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복음서 이야기가 잘 정리되어 있어서 재미있었습니다. 영화는 모두 세 개의 비디오 테이프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두 번째 비디오의 마지막 장면이 가이샤라 빌립보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질문하시는 장면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저렇게 얘기한 후에 마침내 베드로 차례가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막 말하려는 순간 주의 영이 제게 임했습니다. 베드로의 입술이 움직이려는 찰나 저는 후다닥 다가가 비디오 테이프를 껐습니다.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터졌습니다. 예수님, 제가 알아요. 당신이 누군지 제가 알아요! 내가 말할래요. 당신이 누군지 내가 말할래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시작된 눈물의 고백이 이윽고 입술을 통해 발출되었습니다. 베드로 대신 제가 예수님의 질문에 답했습니다. “예수님, 당신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베드로 대신 그렇게 대답을 한 후에도 한참을 울었습니다. 주님은 기어코 제 입술을 통해 고백을 받아내셨습니다. 한참을 운 후에 비디오를 다시 켠 후에 베드로 사도의 대답을 들었습니다. 그의 대답과 저의 대답이 동일했습니다. 베드로 사도와 동등하게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만 같아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예수님께 완전히 무릎을 꿇었습니다. 참선을 하던 습관이 있어서 그때까지 가부좌를 튼 상태에서 기도하곤 했었는데 그날 이후로는 그런 자세로 차마 기도할 수가 없었습니다. 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 가장 합당한 자세요 태도가 되었습니다. 나는 나의 주님께 완전히 굴복했습니다.



 8월 중순 3박 4일의 교회수양회에 참가했습니다. 〈산상수훈을 따라서〉라는 주제로 열렸는데 제 신앙의 표준이 정립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수양회 마지막 날 간증을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저의 삶, 그리스도인이 되기 까지 겪었던 여러 경험들을 눈물 속에서 고백했습니다. 간증이 끝나고 내려왔을 때 교회 한 자매님이 덕담을 건넸습니다. 형제님은 마음이 참 청결하신 것 같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그렇게 볼 수 있었나봐요 하면서 말입니다. 세상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달콤한 칭찬이었습니다.



 처음 교회로 출근하면서 아마도 100일 정도 쉼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까 하는 짐작이 있었는데 정말 100일 정도 지나자 취업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친한 친구가 S 기업의 노조위원장이었는데 그 친구가 자기 회사 사장을 제게 소개시켜줬습니다. 이유인즉슨 자기 회사 사장이 1달에 한 번 전 직원이 참석하는 예배를 회사에서 드리는 완전 꼴통 크리스천인데 너변한 것 보니까 서로 딱 맞을 것 같아서 소개시켜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소개로 S 사장님을 만나서 취업 면접을 보았습니다. 취업면접을 보기 위해 만났는데 취업 얘기는 뒷전이고 만나자마자 그분과 저는 성경 얘기, 예수님 얘기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우리는 사장과 부하 직원의 사이가 아니라 그 순간만큼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였습니다. 그 회사에출근한 이후 S 사장님과 저는 사회적으로는 사장과 직원의 관계였지만 영적으로는 같은 교인이요 형제의 관계로 지냈습니다. 신앙 안에서 계급과 신분의 차이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오후 5시 회사업무가 끝나면 저는 사장실로 종종 찾아가 믿음의 교제를 나누곤 했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해오신 S 사장님의 눈에는 극적으로 인생이 바뀐 어린 신자를 바라보는 호기심이 가득했고 저는 그 눈빛이 싫지 않았습니다. 업무 시간 외에 그 분과 나누는 믿음의 교제 시간이 제겐 일상 속 오아시스를 즐기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맺어진 믿음 안에서의 관계는 3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11월 5일 마침내 교회 회중 앞에서 신앙을 고백하고 침례를 받았습니다. 교회로 출근한 100여일의 시간 동안 제가 한 가장 좋은 일은 성경을 1회 일독한 것이었습니다. 성경을 일독한 후 저는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 다른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성경 자신이 스스로를 설명하고 보충하는 책이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궁금한 것을 저기 어딘가에서 해소해주는, 스스로가 자신을 완전히 설명해 주는 기막힌 책이었습니다. 성경 기록자들이 성경말씀에 대해서 “꿀송이처럼 달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그것이 곧 제 마음이었습니다. 성경의 말씀들이 어찌 그리 달고 진귀한 보석처럼 값지던지 저는 성경을 빨리 빨리 읽어 치울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다 읽으면 내일 읽을 것이 없어질까봐 매일 매일 아껴가면서 읽었습니다. 성경을 일독하고 났을 때의 내 마음의 충만함이란......세상 모든 지혜와 지식을 다 가진 충만함,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구약은 신약을 관철하고, 신약은 구약을 완성한다!” 성경을 처음 완독한 무렵 제 노트에 쓴 소감입니다. 구약과 신약이 제 의식 세계 안에서 완전히 타통된 느낌이었습니다. 성경의 모든 진리를 다 깨달은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물론 거기서 시작해 평생 성경을 공부하고 상고해 오고 있지만 말입니다.) 



 성경을 처음 일독했을 때 제 마음 속에 훅 들어온 이는 다름 아닌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생각하는 거나 말하는 거나 행동하는 것이 어찌 그리 저와 닮았던지,.....처음에는 그 분 이름도 어려워 제대로 부르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사도 바울이 이랬네 저랬네 하면서 쉽게 그의 이름을 말할 때도 그 분은 제게 바울님, 바울 선생님이었습니다. 지금 제 나이가 바울 사도가  로마에서 순교할 때의 나이가 되고 보니 요즘은 그저 형님 하는 마음으로 대하게 되었지만 말입니다. 11월 5일 침례를 위한 간증을 마칠 때 제가 인용한 성경 구절 역시 바울 사도의 말씀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2-14) 였습니다.



 예수를 만난 후 제인생은 그렇게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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