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38)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38)
처음 교회에 출석한 95년 7월 9일부터 침례를 받은 11월 5일까지의 4달의 기간 동안 제 일상생활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⓵ 즐기던 바둑을 끊었습니다. 바둑을 잘 두는 편은 아니었지만 즐기던 편이었는데 바둑이 두기 싫어졌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상대방을 이기려고 하거나 상대의 돌을 죽이려는 마음이 싫어졌습니다.
⓶ 위와 같은 이유로 복싱과 같은 격투기를 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기기 위해 상대방을 쓰러뜨려야 하는 모습이 보기 싫어졌습니다. 피튀기는 모습도 감당키 어려웠습니다.
⓷ 비디오를 끊었습니다. 비디오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대중문화와의 접촉을 끊었습니다. TV도 거의 보지 않게 되었고, 신앙 서적 외에는 어떤 책도 읽기가 싫어졌습니다.(처음 세상 서적을 다시 보기 시작한 것은 중독 치유선교 사역을 하면서 중독을 이해하기 위해 집어든 심리학 책들이었습니다). 신앙생활 초기부터 오랜시간 제가 접촉한 매체는 오직 라디오 극동방송 하나였습니다.
⓸ 그때까지의 모든 인간관계를 끊었습니다. 오직 신앙 안에서 만난 이들과의 관계에만 집중 했습니다. 예수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는 이들과의 만남이 즐겁지 않았습니다. 예수를 알고 예수를 중심으로 자기 삶을 펼쳐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좋았습니다. 신앙생활 초기 교회가 셀교회로 전환하면서 셀모임이 시작되었는데 저는 직장 관계로 아산에 거주하게 되었는데 주중 셀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매주 목요일 저녁 아산과 서울을 기쁜 마음으로 오갔습니다. 그때 중년 남성들의 셀모임은 저녁 8시에 시작해 새벽 1-2시에 끝나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⓹ 운전습관이 크게 변했습니다. 끼어들기 하는 이들에게 너그러워졌고, 교통법칙을 철저히 준수하게 되었습니다. 새벽 운전 중에도 빨간 불이면 건너가지 않았습니다. 아무데서나 유턴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에 안드는 운전자들에게 걸핏하면 내뱉던 욕도 사라졌습니다.
⓺ 침례를 받을 때쯤엔 술과 담배도 끊었습니다. 성경에 술마시지 마라, 담배 피지마라 하는 구절이 없으므로 신앙 초기에는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웠지만 비신자들이 술 마시고 담배 피는 저를 짝퉁 신자라 여기는 것 같아서 술 담배를 끊었습니다. 사소한 행습 때문에 나의 믿음이 폄하되는 것이 싫었습니다.
⓻ 교회에 나가면서 QT(성경묵상)를 소개받게 되었고, 이때부터 매일 QT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제 신앙의 가장 큰 동력이 되었고, 제 평생의 신앙습관이 되었습니다.
⓼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참선하는 것보다 기도하는 것이 훨씬 쉬웠습니다. 때때로 그것은 노동이기도 했지만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누리는 시간이었고, 하나님의 현존을 마주하는 신비로운 시간이었습니다.
⓽ 주일 예배에 빠짐 없이 꼬박 꼬박 참석하였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주일을 기다렸습니다. 주일 성경 공부 뿐만 아니라 주중에 이루어지는 다양한 신앙훈련에도 빠짐 없이 참석했습니다. 모든 공부와 훈련이 너무 재미있었고,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신앙과 신학적 지식을 빨아들였습니다.
⓾ 전도하게 되었습니다. 내게 일어난 이 놀라운 일들을 여기 저기, 동네 방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교회의 누군가가 피켓을 들고 지하철역에 가서 전하라 해도 전할 것만 같았습니다.
⑪ 눈물 샘이 터졌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까지 저는 한 번도 울어본 적이 없습니다. 남자는 울면 안된다. 우는 것은 나약한 것이다는 관습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후 시도 때도 없이 울었습니다. 예배를 보다가, 성경이나 신앙서적을 읽다가, 누군가의 간증을 듣다가, 설교를 듣다가, 운전 중에 찬양을 듣다가......시도 때도없이, 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예수의 예자만 들어도 눈물샘이 터지곤 했습니다.
⑫ 사랑이란 단어를 처음 쓰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그 사랑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십자가의 그 사랑, 대속의 그 사랑, 거룩한 희생과 헌신의 그 사랑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을 알기 전 “사랑”은 그저 유행가 가사에나 나오는, 남녀 사이의 에로스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사랑을 모르고 살았으니 참으로 무지한 삶, 야만의 삶이었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습니다.
⑬ 청바지를 처음 사서 입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고, 80년 5월 광주를 경험한 젊음은 저항과 투쟁의 삶을 선택받았습니다. 제국주의의 문화적 상징인 청바지를 입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삶은 불완전한 진리에 기반한 것이었고 예수 밖의 삶이었습니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스무 살의 나이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예수 안에서 푸르른 청년의 삶을 다시 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주님은 내 인생의 모든 날들을, 그것이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상관 없이 새롭게 빚어주셨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저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 것, 새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 하는 평생의 날들은 새 것으로 계속해서 빚어지고 다듬어지고 성숙해 가는 시간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