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40)

라파공동체2026.03.28 15:243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40)  



 개인 경건생활과 교회생활에 힘쓰던 초기 3년의 신앙생활 중 가장 중요했던 사건의 하나는 교회 출석 1년 후 96년 여름수양회에서의 성령체험 사건이었습니다. 신학의 영역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주제의 하나는 삼위일체론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언어로, 논리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으로 볼 때 삼위일체론은 사실입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제가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 세 분을 따로 따로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고, 이 세 분을 만나면 공히 한 분 한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초기 저는 하나님 아버지를 만났고,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분들을 만났을 때 아, 이 분은 하나님 아버지이시구나, 이 분은 예수님 이시구나 하는 것을 알고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까지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하지는 못했습니다. 신앙생활 초기 1년간 제 기도제목 중의 하나는 성령님을 만나고 싶어요 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고, 예수님을 만났을 때, 또 성경을 깊이 깨달아 알게 되었을 때 그 모든 일들이 성령님께서 제게 행하시는 일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정작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하지는 못했습니다. 성령님의 존재는 저에게 큰 미스테리였습니다. 96년 여름수양회의 주제는 사도행전 해설을 중심으로한 <성령행전> 이었습니다. 사도행전=성령행전이 수양회의 주제였습니다. 수양회 둘째 날 모든 행사가 끝나고 교인들이 모두 숙소로 돌아간 홀에 저는 홀로 남아 성령님, 당신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라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제가 가지고 있던 궁금증의 하나는 순교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교회 생활을 하며 제가 만난 교인들 중에서 아, 저분은 능히 순교할 분이구나 하는 강인한 사람을 그때까지 저는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제가 만난 교인들은 거의가 여리고 연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순교를 불사할 만큼의 강한 신앙을 가진 사람은 없어 보였습니다. 이미 이념을 위해 목숨을 걸어보았던 저는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의 거룩한 사랑을 맛본 후 지체 없이 제 목숨을 주님께 내어드린 바가 있어 순교가 그렇게 두렵지 않았습니다. (물론 실제 그런 상황이 닥치면 가룟 유다가 될지도 모를 일이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타난 순교자들의 이야기, 사도행전에 기록된 스데반 집사님의 순교 이야기를 읽을 때도 늘 궁금함이 마음속에 있었습니다. 그런 궁금증을 토로하며 기도하고 있을 때 성령님께서 제게 임했습니다. 돌에 맞아 죽어가는 스데반 집사님의 환상, 얼굴이 환하게 빛나는 모습으로 순교하는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와 동시에 ‘이런 일들이 바로 내가 하는 일이다’ 라는 말씀이 들렸습니다. 그날 저는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말씀하시는 성령님을 만났습니다. 늘 그렇듯이 하나님을 만날 때, 곧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 제게 일어나는 반응은 우는 것입니다. 그날도 텅빈 행사장 홀에 홀로 남아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저 연약하기 짝이 없는 교인들이 순교의 고통과 두려움을 능히 감내할 수 있음은 성령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심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순교가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지와 결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임재하심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똑똑히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신자가 자신의 강인함과 불굴의용기로 순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임재와 함께 할 때 순교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오오, 저는 그때까지 얼마나 강한 자가 되기를 꿈꾸며 살아왔는지요. 세상적으로 강한 자가 되기를 꿈꾸지는 않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강한 군사, 강한 자가 되기를 꿈꾸어 온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저는 저의 강함을 추구하는 마음을 다 내려놓았습니다. 주님은,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통해 역사하시는 분이심을 똑똑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연약하고 무지렁이 아무 것도 아닌 자들을 하나님 당신을 위한 순교의 자리에 능히 세우실 자가 하나님의 영, 예수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인 것을 알게 되었으니 강한 자가 되려고 아웅바둥 댈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아니, 사실 문제는 강한 자가 되려고 했던 저 자신에게 있었음이 분명해 졌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의도적으로라도 연약한 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하고 합당한 자세요 태도였습니다. 신앙 생활 초기 5년 동안 저의 지속적인 기도 제목 중 하나는 포레스트 검프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어떤 연유로 제가 <포레스트 검프> 영화를 보게 되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이 영화는 IQ 75의 경계선적 지능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의 인생사를 그린 영화입니다. 95년 아카데미 13개 부분에 노미네이트 되고 남우주연상(톰 행크스) 등 6개 부분을 수상한, 흥행에서도 크게 성공한 영화였는데 제게 그 영화는 그리스도인의 단순한 믿음의 삶에 대한 최고의 복음영화로 기억되고 있습니다.(제가 그렇게 해석한 것이지요). 예수를 믿고서도 저는 오랜 시간을 사람과 사건에 대한 비판적 태도와 이분법적 사고, 적이냐 아군이냐와 같은 분별적 사고를 떨쳐버리지 못했습니다. 잔머리는 왜 그렇게 쉼 없이 굴러가던지......옛 사람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오랜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신앙생활 5년쯤 되었을 때 아내가 여보 당신 이제 충분히 바보가 되었으니까 그 기도 더 이상 안해도 된다고 말해주었을 때 저는 그 기도를 멈출 수 있었습니다. 그때가 되어서 비로소 저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공생애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바보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바보가 좋습니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