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41)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41)
그리스도인으로서 공생애를 살고 싶은 욕구는 신앙생활 초기부터 제 마음속 깊은 열망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당신의 살과 피를 다 내어주셨음을 알게 된 순간부터 저 역시 저의 생명을 주님께 내어드렸습니다. 그리고 이 보잘 것 없는 한 생명 주님께서 사용해 주시길 소망했습니다. 세상의 일,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 주님의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종교개혁을 통해 중세 성직제도가 타파되었습니다. 모든 신자들이 자유롭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고, 신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유롭게 성경을 읽고 해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든 신자들이 자신들이 서 있는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칼뱅에 이르러서는 삶의 모든 현장이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현장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직업(vocation) 을 단순한 생계유지의 장을 넘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명을 성취하는 장으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새 시대가 열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적 시도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철저하게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교회는 카톨릭의 성직제도를 다시 준용하게 되었습니다. 목사가 성직자가 되고 나머지는 일반 신도, 곧 평신도가 되는 퇴행현상이 개신교 안에 난무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신자들은 성도(saints)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성도의 일을 각자 자기의 삶의 자리에서, 교회 안에서, 주님께서 부어주신 은사에 따라 목사로, 교사로, 병고치는 자로, 구제하는 자로 직분을 받고 섬길 뿐입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 모두는 형제와 자매요 거룩한 성도들로서 평등합니다. 성직자와 평신도라는 수직적 위계구조는 하나님의 교회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신자들의 삶 자체가 성도들의 삶이요 성직의 삶인 것입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각 개인들이 자신의 전 시간, 혹은 생애를 하나님을
위한 사역으로 채우는가 아닌가의 차이만 있을뿐입니다. 칼뱅적 정의에 따르는 한, 모든 신자들은 언제,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 어떤 직업을 갖든 전 시간, 그의 생애를 통해 하나님의 일,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세속적 일에 종사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전 시간을 주님의 일에 헌신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먹고 살기 위한 직업이든, 정부의 일을 하는 공무원이든 그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전력을 기울여야 함이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걱정해야 하는 것은 그 세속의 일들을 감당하기 위해 너무 많은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도록 자기 자신을 잘 돌봐야 하는 일일 것입니다.
무한경쟁의 후기자본주의 사회는 각 개인들이 삶의 자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한적인 에너지의 집중과 방출을 요구합니다. 재독철학자 한병철은 그의 저서 「피로사회」(문학과 지성사, 2012년)에서 현대사회를 병리학, 철학, 정치학, 사회학적 입장에서 종합적으로 진단하면서 ⓵ 지금 우리는 외부의 ‘적’을 설정하고 맞서는 면역적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무한히 경쟁하는’ ‘피로시대’(the burnout society)에 살고 있다 ⓶ 그러므로 사회적 병리의 원인은 외부의 위협이 아니라 자기 내부의 무한한 최적화 요구와 과잉의욕이다 ⓷ 현대인의 고통은 외부적인 ‘감염’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신경학적 심장마미’, 즉 과도한 자극과 자기착취의 결과이다 라고 현대사회를 분석합니다. 그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세속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개인이든 기업이든 젖먹던 힘까지 다 짜내지 않으면 자기의 자리나 지위, 신분을 유지하거나 지탱할 수 없는 무한경쟁 속도전의 시대에 현대인이 살고 있음은 자명합니다. 저는 이런 세상 속에서 제 인생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 인생이 하나님의 일에 드려지기를 원했고,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 예수님을 등에 태우고 입성한 멍애 메어보지 않은 어린 나귀새끼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1997년 IMF의 시련이 저희 회사에도 불어닥치고 구조조정이 단행될 때 저도 사직하고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회사 사장님은 제가 회사에 남아주기를 바랐지만 저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다시는 세속사회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내 인생을 세속적인 일의 성취에 허비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심으로는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설레임이 있었고 그 일에 대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1998년 7월 모교회의 교인 훈련 프로그램의 하나로 단기 해외선교를 후원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신청을 하여 선정되었고 OM 선교회에서 주관하는 북아프리카 단기선교 팀에 합류하게 됩니다. 스페인 말라가에서 1주일간의 훈련을 마치고 튀니지로 20여일간 단기선교를 다녀오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이역만리 먼 땅끝에서 사역의 길로 저를 부르시는 주님을 만납니다. 바울을 마케도냐로 부르셨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