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42)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42)
스페인 말라가에 모여서 1주일간의 준비를 마치고 튀니지로 들어갔습니다. 아프리카 하면 흑인들의 땅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아프리카 북단의 여러 나라들, 이집트, 리비아, 튀니지, 모로코, 알제리는 모두 아랍족속 이슬람권에 속하는 나라들이었고 이들 나라 중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는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다가 독립한 나라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튀니지의 공용어는 프랑스어였습니다. 튀니지에 머무는 20여일 동안 현지인들과는 거의 말 한마디도 나누지 못했습니다. 튀니지 선교팀의 대부분은 저를 빼고는 유럽과 남미에서 온 20대의 젊은이들이었는데 그들 중 프랑스어를 잘하는 젊은이들이 두세 명 있어서 그들을 중심으로 전도활동을 하였고 나머지 멤버들은 기도하는 가운데 일정을 함께 소화하는 정도였습니다. 튀니지는 이슬람 국가였는데 98년 당시 나라 전체에 수도인 카르타고에 교회가 하나 있다 했습니다. 나라 전체의 교인 수는 100명이 채 넘지 않았는데 이들은 모두 하나뿐인 교회에 소속되어 있다 했고 교인들은 대부분 튀니지 주재 외국 대사나 공사, 혹은 튀니지 주재 외국인과 그 가족들이라 했습니다. 그 당시의 튀니지는 70년대의 한국과 참으로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네들이 보여준 정(情)의 문화는 감동적이었습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로마시대의 유적들은 옛 영화를 보여주기에 충분했지만 로마 정복을 눈앞에 두었던 위대한 장군 한니발의 위용은 발견하기 어려웠습니다. 지중해를 둘러싼 아름다운 해변 풍광이 기억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제 마음을 설레게 했던 것은 위대한 신학자 어거스틴의 젊은 날의 발자취가 살아 있는 땅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어거스틴이 음욕과 방탕의 젊은 날을 보낸 땅, 마니교에 깊이 천착했던 땅, 삶의 모든 것에 실망하고 방황하던 땅, 로마로 건너가 암브로시우스를 만나 크리스천이 되기 전 생의 바닥을 찍었던 곳......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주님을 만나기 전 생의 바닥을 찍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선교 여정을 따르던 어느 날 아침. 개인 묵상 시간에 저는 사도행전 1장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제 눈은 자연스럽게 사도행전 1;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는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의 말씀에 따라 지금 이렇게 땅 끝에 와 있습니다. 주님의 증인이 되어 땅 끝 튀니지에 와 있습니다. 제가 프랑스어를 하지 못해 저들에게 복음을 전하지는 못하지만 주님께서 저를 이곳 튀니지로 선교사로 보내주신다면 기꺼이 순종하겠습니다. 프랑스어를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뭐, 이런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기도할 때 제 마음은 뿌듯함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38세의 노구(?)를 이끌고 20대 초중반의 젊은이들 무리와 동행해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대견하기도 했고, 프랑스어를 전혀 하지도 못하면서 감히 튀니지 선교사로 파송해 주시면 기꺼이 순종하겠노라고 고백하면서 주님께 대한 저의 충성심을 마음껏 표현한 것 같아 우쭐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주님, 이 정도면 저도 괜찮은 제자지요? 라고 한껏 고양된 마음에 취해있을 때였습니다. 찰나의 순간에 제 눈앞에 한 환상이 휙하고 나타났다가 사라졌습니다. 그 환상이 지나가자마자 제 입에서는 곧 그건 아니지요 하는 말이 흘러나왔습니다. 주님, 번지수가 틀렸습니다. 제가 튀니지로 보내주시면 온다고 했지, 언제 거기로 간다고 했습니까? 하는 항변이 튀어 나왔습니다. 우쭐하여 고양되었던 마음이 한순간에 싸해졌습니다. 짧은 침묵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시 말했습니다. 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주님 뜻을 따르겠습니다. 제가 거기로 가겠습니다 라고. 그때 주님께서 제게 보여주신 환상은 “장애우, 뇌병변 장애우, 노숙자, 알코올중독자들”과 같은 이들의 환상이었습니다. 마치 마케도냐인들이 환상 속에서 바울을 손짓하여 불렀던 것처럼 그네들이 저를 부르는 것 같은 환상이었습니다. 그 환상을 보는 순간 저는 즉각적으로 알아차렸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그들을 위한 사역에로 부르셨다는 사실을. 그러나 안돼요 주님 하면서 주님의 뜻에 즉각적으로 반발하는 저의 모습은 얼마나 반사적이었던지......주님께 순종함이 제게 얼마나 선택적인 것이었는지를 뼈저리게 경험한 순간이었습니다. “감탄고토”, 그저 달면 삼키며 쓰면 뱉어버리는, 자기에게 좋은 것과 나쁜 것, 유리한 것과 불리한 것을 동물적으로 반사적으로 가려내고 반응하는, ‘순종의 일관성’을 견지하지 못하는 존재가 저 자신이었음이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그 날은 눈물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주님 앞에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튀니지로 보내주시면 기꺼이 가겠다며 우쭐대던 저의 모습이 어찌 그리 경망스럽게 느껴지던지......그러나 어쩌겠습니까, 그것이 저의 모습인 것을. 그때 저는 “땅 끝”이 제 마음 안에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 마음속에 불순종의 공간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거기가 제 인생의 “땅 끝”이었습니다. 장애우, 뇌병변 장애우, 노숙자, 알코올중독자들이 제 인생의 땅 끝이었습니다. 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 주님의 뜻이었습니다. 98년 7월 튀니지에서 돌아와 저는 바로 장애인 단체의 간사로 새로운 일을 시작했습니다. 99년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한 한 명의 알코울·마약중독자를 만나 중독의 세계를 알게 되었고 2000년부터 알코올중독자들을 위한 사역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공생애, 풀타임 사역의 길에 들어서기 시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