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43)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43)
2000년 5월 8일 저는 모교회를 떠나 대전으로 내려옵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주님께서 가라고 한 땅, 중독자들이 있는 땅, 대전실직노숙인 쉼터로 내려오게 됩니다. 당시 대전실직노숙인 쉼터는 대전 성공회에서 운영하는 여러 사회복지기관 중 하나였는데 사회복지사업을 담당하던 신부님의 요청으로 노숙인 쉼터 관리 책임자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2001년 1월 영국 성공회의 도움으로 영국 켄트 주에 있는 중독자 치료공동체인 켄워드 트러스트를 보름간 방문하고 돌아옵니다. 이듬해 2002년 4월 1일 영국 켄워드 트러스트 치료공동체를 지향하며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독립적인 기관인 중독치유공동체인 라파공동체를 창립합니다. 라파공동체의 창립은 전시간 사역자로서, 중독나라에 파송된 치유선교사로서의 진정한 첫걸음이 됩니다. 오직 믿음에 의지해, 마태복음 6:33절의 말씀 –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 에 의지해,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주께 맡기고) 개인 사역을 시작합니다. 늦깎이 신학대학원 2학년 때였습니다.
아나뱁티즘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은 신대원 1학년 2학기 때(2001년)의 교회사 수업이었습니다. 교회사 교수님은 아나뱁티즘에 대해 우호적 시선을 가지고 계셨던 분이셨는데 10여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 두 권의 책, 「근원적 종교개혁 – 16세기 성서적 아나뱁티스트들의 역사와 신앙과 삶」(김승진, 침례신학대학교출판부, 2011년)과 「종교개혁가들과 개혁의 현장들 – 아직도 미완성인 종교개혁)(김승진, 나침반, 2015년)을 출판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때 아나뱁티스트들에 대해서 역사적, 교리적, 학문적으로 처음 접하게 되었고 학기 중 리포트 과제로 「메노 시몬스의 생애와 사상 – 현대 교회에 주는 긍정적 영향을 중심으로」 라는 소논문을 작성하게 됩니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컴퓨터 안에 내장되어 있는 자료들을 정리하다가 마치 고문서처럼 2001년에 작성한 이 리포트가 외장하드 한켠에 저장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24년 전에 쓴 글을 읽어보는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아나뱁티스트들을 기억하기 위해 이 소논문을 폐기하지 않고 고이 남겨두지 않았나 싶습니다. 신대원 시절의 제 유일한 흔적입니다. 첨부파일로 올립니다.)
그 소논문을 지금 다시 읽어 봐도 따로 손 볼 필요를 느끼지 못하겠더군요. 당시 읽었던 「개혁자들의 신학」(티모디 조지, 이은선· 피영민 역, 요단출판사, 1994년)은 종교개혁 시기의 루터, 츠빙글리, 칼빈, 메노 시몬스의 삶과 사상을 다룬 책이었는데 그때도 그렇고 지금 다시 꺼내 읽어볼 때도 큰 감동과 혜안을 가져다 주는 종교개혁기를 다룬 명저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소논문은 그 책의 영향을 많이 받고 쓴 글이었습니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그 소논문에 옥의 티가 보이더군요. 사실 2001년 신대원 1학년생으로 그 소논문을 쓸 당시 저는 아나뱁티스트들을 과거 속 인물들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때까지 저는 살아 있는 아나뱁티스트들을 만나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논문에서 메노 시몬즈의 현대적 후예들이 메노나이트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당시 신학교의 한 교수가 메노나이트라는 이름으로 교수 재임용에 탈락했다는 사실을 접할 때 느꼈던 두려움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현대 메노나이트들에 대한 인식도 그리 후하지는 않았던 상태였습니다. 현대 메노나이트들이 메노 시몬즈의 신학과 사상을 실제 삶 속에서 올바로 구현하고 있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살아 있는 현대의 아나뱁티스트를 처음 만난 건 아마도 2007년 한공협 활동에 참여하면서 KAC 총무 일을 맡고 있던 김경중 형제를 만났을 때 였습니다. 세상에! 아나뱁티스트가 한국에 있다니! 한국인들 중에 아나뱁티스트가 있다니! 예수님을 만난 것 만큼의 감동은 아니어도 참된 신앙의 후예들을 만나는 감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2월 아나뱁티즘 500주년, 한국 아나뱁티즘 30주년 기념 행사에 다녀온 직후의 감동때문에 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신자들이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고 일컬음을 받았듯이 예수님을 만나 신자가 되어 살아오면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는 제게 가장 명예로운 이름이요 자부심의 근원이었습니다. 16C 아나뱁티스트들을 알고 난 이후 그 이름은 제게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저 외국에나 극소수로 분파적으로만 존재하는 사람들인 줄로만 알았는데 한국 땅에서 그것도 한국인 아나뱁티스트를 만났으니 어찌 감동이 없었겠습니까? 튀니지 단교선교활동 중의 일입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30대 초반의 아랍 젊은이를 만나 대화하게 되었습니다. 튀니지인들이 불어를 사용하고 있고 대부분 영어에 서투른 편이어서 먼저 말을 거는 경우가 없었는데 이 젊은이가 영어로 말을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어디서 왔냐? 중국인이냐 일본인이냐? 묻길래 한국인이라고 대답해 주었고 너는 어디서 왔냐고 물으니 자기는 이라크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뭐하러 왔냐고 물으니 자기는 계절 노동자로 와서 일하고 있다 했습니다. 그러더니 그 친구가 제게 그럼 너는 뭐하러 여기에 왔냐고 물었습니다. 이때다 싶어서 선교여행을 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친구가 눈이 조금 휘둥그레지면서 제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Are you christian?” 제가 그렇다고 했더니 이 친구가 감동을 받은 얼굴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I am a christian, too” 그때 그 친구의 발음이 지금도 귀에 생생합니다. 영어식으로 크리스찬이라고 발음하지 않고 불어식으로 크리스띠앙 이라고 발음했던 것이. 그 말을 들을 때 소름이 돋았습니다. 주 안에서 하나 된 이방인 형제를 만난 것입니다. 그는 이역만리 이방 땅에서 처음이자 유일하게 만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사람이 희망이고, 사람이 감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