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45)

라파공동체2026.03.28 15:242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45)  



 영화 <위트니스>는 필라델피아 경찰인 주인공 존이 살인 현장을 목격한 아미쉬 소년 사무엘을 보호하기 위해 그의 엄마인 레이첼을 따라 아미쉬 마을로 들어오면서 살인 사건에 연루된 부패 경찰 카르텔을 응징하는 내용인데 스토리 전개가 아미쉬 마을을 배경으로 전개된 탓에 아미쉬 아나뱁티스들의 삶을 픽션이지만 생생하게 엿보고 느낄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⓵ 아미쉬 마을은 미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관광지가 된 지 오래인데 못된 관광객들이 아미쉬 사람들을 모욕하고 시험합니다. 너희는 성경 그대로 오른 뺨을 맞으면 왼 빰을 돌려댄다며 라고 희롱하면서 장난치듯이 아미쉬 청년의 오른 뺨을 때립니다. 주인공 존(해리슨 포드)이 조롱당한 아미쉬 젊은이에게 왜 맞고만 있냐고, 반격하지 않냐고 흥분할 때 아미쉬 젊은이가 말합니다. “That’s not who I am.”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는 건 아미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⓶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의 하나는 아미쉬 사람들이 마을 사람의 헛간을 공동작업으로 지어주는 장면입니다. Barn raising이라고 알려진, 우리식으로 말하면 품앗이, 두레, 울력과 같은 협업작업을 말하는데, 그들의 공동체적인 삶의 모습이 웅변적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공동작업에 참가한 존에게 여주인공의 장인인 엘리가 말합니다. “You’re learning. Not just how to build a barn, but how to be part of something bigger than yourself.”  그저 단순히 헛간을 짓고 있는 것을 넘어 네가 공동체의 일부로 지어져 간다는 것이지요. 

⓷ 존과 아미쉬 출신 여주인공 레이첼이 서로 헤어질 때 두 사람이 발 딛고 있는 세계가 쉽게 합쳐질 수 없는 세계임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You came into our world, but you are not part of it. Just like I could never live in yours.” 존의 세속 세계와 아미쉬 신앙 세계와의 사이에는 함께 하기에는 너무 큰 차이와 다름이 있습니다. 

⓸ 영화의 크라이막스에 해당되는 종결 부분에서 총을 가진 부패경찰에게 존이 사로잡히면서 엘리에게 존이 무력을 사용해 부패경찰을 제압하도록 요청할 때 엘리가 말합니다. “It's not our way. Violence only begets violence.”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는 것은 우리의 방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패경찰은 종소리를 듣고 맨몸으로 달려나온 수많은 마을 사람들에 의해 제압당합니다. 



 이 영화는 당연히 사실이 아닌 픽션이었겠지만 영화의 배경이 된 아미쉬 마을은 실재를 반영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영화에 나타난 아미쉬 사람들의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삶, 단순하고 소박한 삶, 세속 세계와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삶, 평화를 일상에서 실천하며 살아가는 삶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동경하는 마음이 일기도 했습니다.



 초기 신앙 생활 중에 저를 사로잡은 성경의 또 하나의 강력한 지향은 사도행전 2장, 4장의 초대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초대교회 모습의 핵심은 제가 보기에는 “공유적 삶”에 있었습니다. 일찍이 예수원의 대천덕 신부님은 신자들의 모임인 교회를 한자어 교회(敎會)보다는 교회(交會)가 더 낫다고 하셨는데 저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가르침이 중심인 것이 아니라 신자들의 교제와 나눔이 더 중시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교회의 본질을 교제와 나눔에 있음을 설파하면서 대신부님은 한국 교회에 “코이노니아” 신학과 사상을 널리 전파했습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 /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2-47)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

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도다”(행 4:32)  



 1세기 로마 사회에서 ‘코이노니아’는 일반적으로  "공유, 공동 소유, 참여, 동업"을 의미했습니다. 친족 간의 유대, 상인 간의 동업 관계, 심지어 도시 공동체 내 시민으로서의 의무감을 가리킬 때도 사용되었고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 학파 등은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며 공동체적 존재임을 강조하며 "코이노니아"를 사용하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폴리스(polis)를 코이노니아의 최고 형태로 보며, 가족 → 마을 → 국가로 이어지는 ‘공동체 연합’ 개념을 설명하기도 했지요. 사도행전을 쓴 누가는 이 개념을 그대로 차용하여 초대교회 신자들의 삶을 설명합니다. 누가 뿐만 아니라 바울도 그의 서신서 전반에 걸쳐 이 단어 ‘코이노니아“를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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