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47)

라파공동체2026.03.28 15:243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47) 



 교회 생활은 경이롭고 신비로웠습니다. 그리고 즐거웠습니다. 교회 생활은 제 인생의 젊은 날, 혁명을 추구하며 살았던 운동권적 삶, 의식화, 조직화의 생활과 비슷했습니다. 그래서 교회 생활에 적응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의식화‘가 가르치고 배우고 탐구하고 깨닫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조직화‘는 전파하고 모으고 동원하고 투쟁하는 것을 집단이 체계적으로 행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교회 생활이 그와 같았습니다. 북한에서 내려운 탈북자들이 교회 생활이 북한에서의 일상 생활, 곧 조직화 의식화 생활과 비슷해서 쉽게 적응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교회를 출석하면서 저의 일상생활의 중심에는 교회 생활이 있었습니다. 교회 생활을 중심으로 일상의 모든 생활이 편제(조직)되었습니다. 매일 아침은 새벽 묵상(QT)으로 시작됩니다. 주중에는 두 번 혹은 세 번 교회 생활에 출석합니다. 한 번은 셀모임을 위해, 한 번은 기도모임 혹은 찬양 모임을 위해, 한 번은 신앙 훈련을 위해 교회 모임에 나갑니다. 주일날은 온종일 교회와 더불어 지냅니다. 공예배를 드리고, 점심을 함께 먹고, 식사 후에는 성경 공부에 참석하고, 성경 공부가 끝나면 교인들과 함께 누군가의 집에 모여 교제를 나눕니다. 그러면 어느새 저녁이 됩니다. 여름 휴가와 겨울 휴가는 년초에 이미 교회 수양회 날짜에 맞추어 결정됩니다. 교회 수양회에 참석할 때마다 한 권의 신앙 훈련 교재를 공부하고 돌아옵니다.  이것이 교회 생활 초기 5년 동안의 저의 일상이었습니다. 일상이 교회를 중심으로 돌아갔습니다. 



 직장 생활은 교회 생활에 비해 의미와 비중이 훨씬 낮았습니다. 직장 생활은 생계 유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교회 생활이 훨씬 재미 있고 흥미로웠으며, 생동감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게 유익했습니다. 세상에서는 내 생의 에너지를 쏟아 붓고 소모하고 빼앗기는 느낌이었다면 교회 생활은 채워지고 쌓이고 충만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열심히 살면 성공하고 인정받고 승진합니다. 돈과 명예가 보상으로 주어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더 큰 열심을 요구합니다. 더 많은 에너지를 방출하고 짜내야 합니다. 세상 생활, 직장 생활이 경쟁하고 싸우고 이기고 승리해야만 하는 삶이었다면 교회 생활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배우고 훈련하는 가운데 서로 교제하고 섬기고 나누는 삶이었습니다. 서로를 격려하고 세워주는 삶이었습니다. 아낌없이 베풀고 삶의 모든 것을 공유하는 삶이었습니다. 예수가 이 땅에 가져온 하나님의 나라, 곧 교회는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나라, 기존 질서를 단번에 뒤집고 전복하는, 가히 혁명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신비로운 나라, 새로운 나라였습니다. 교회는 젊은 시절 내가 추구했던 사회주의 혁명, 그것을 뛰어 넘어도 한참 뛰어 넘는, 인류가 꿈꾸어온 이상(理想)의 나라이면서 지금, 여기에서 실현 가능하고, 또 실현되고 있는 실제의 하나님 나라였던 것입니다. 교회 생활을 통하여, 공부하고 훈련하며 교제하고 나누는 삶을 통하여 개인의 인격적, 영적 성장과 성숙이 도모되었고, 이러한 성장과 성숙은 교인들과의 관계, 교인들과 세상과의 관계로 그 영향이 확장되었습니다. 



 교회는 존 하워드 요더의 통찰 그대로 세상 국가와 사회에 대한 대안적 조직이며 사회인 것입니다. 교회는 끊임 없이 개인들이 자신의 경건 생활과 자기완성을 위해 공부하고 훈련하며, 함께 기도하고 찬양하고 서로 섬기고 나누며, 교제하는 가운데 공동체로 함께 세워져 가는, 세상 논리와 원리와는 전혀 다른 하나님 나라의 원리와 방법에 의해, 성경에 기록된 말씀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와 그 제자들이 보여준 삶의 모본을 따르며 살아가는 신자들의, 저 세상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대안사회인 것입니다. 또한 교회는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은 예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 나라를 우리는 “거룩한 나라”라고 부릅니다. 신자들은 거룩한 사람들이며, 교회는 거룩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순수 우리말인 거룩에는 세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의미입니다.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점에서 세상과 구별됩니다. 교회는 세상의 그 어떤 조직과도 전혀 다른 원리에 의해 작동되는, 그래서 세상과 선명하게 구별되는, 거룩한 하나님께, 거룩한 백성들이, 거룩한 예배를 드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기관입니다. 둘째는 성스럽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경외심을 유발하는 신비적 신성함, 숭엄함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스러움이란 신적 존재가 임재할 때, 혹은 신적 존재와 함께 하고 있을 때 느끼는 감정으로 이 또한 세상과 교회를 구별하게 해 줍니다. 세 번째는 정결과 성결의 의미를 갖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의 도덕적, 의식적, 윤리적 깨끗함의 상태, 흠잡을 데 없는 순수함과 순결함의 상태를 뜻합니다. 바로 그 모습 때문에 교회는 세상과 구별됩니다. 그 모습을 유지할 때 교회는 세상의 존경과 칭송을 받습니다. 역으로 그 모습을 상실할 때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 당하고 외면당합니다. 교회가 세상의 근심거리가 됩니다. 슬프게도 오늘 한국 교회는 그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교회가 거룩을 상실한 것입니다. 세상과 더이상 구별되지 않는 것입니다. 소금이 짠맛을 잃어 아무 짝에도 쓸데가 없어 버림받게 되듯이 버림받기에 이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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