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48)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48)
제가 처음 출석해 5년간 신앙 생활했던 모교회는 이런 교회였습니다.
1. 거의 모든 교인이 술, 담배를 안했습니다. 경건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누구나 생각했습니다.
2. 슈퍼와 식당을 하는 교인 중 술과 담배를 파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그것들을 마약류로 교회 정관에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인들은 그것을 팔아서는 안되었습니다. 그것은 마약류를 유통하는 행위에 다름 없었기 때문입니다.
3. 회원 제도가 있었습니다. 회원은 정회원, 준회원으로 구분되었고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은 신자와 비신자로 구분되었습니다. 비신자를 억지로 신자화 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에 출석한다고 모두가 신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정회원이 되려면 총회에서 전체 정회원의 2/3의 찬성을 얻어야 했습니다.
4. 전 교인이 여름, 겨울 수양회에 참석했습니다. 그것은 신자들에겐 일종의 영적, 말씀의 바캉스였고, 특히 비신자들에게는 회심의 놀라운 기회가 되었습니다. 매 수양회마다 회심자들이 있었고 회심의 뜨거운 간증이 있었습니다.
5. 거의 모든 교인이 성경 공부를 했고, 정회원들은 날마다 QT를 했습니다. 이 교회에 나오면 누구나 다 주일 점식 식사 후엔 성경 공부 하는 것을 당연시 했고, 대부분의 교인들이 저마다 자기가 정한 시간에 QT를 했습니다. 저마다 행한 QT의 내용은 주중 교인들 교제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6. 정회원들은 주중 셀모임으로 모였습니다. 모임의 중심에는 예수님과 말씀이 있었습니다. 한 주일 신앙생활의 저마다의 간증이 나누어졌습니다. 셀모임은 교회 생활의 가장 내밀하고 농축적인 핵심이었습니다. 초기 신앙 생활 2년동안 저는 직장관계로 충남 아산에서 생활하게 되었는데 매주 목요일 저녁에 있는 셀모임을 참석하기 위해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아산과 서울 목동을 오르내렸습니다. 셀모임은 저녁 8시경에 시작해서 통상 새벽 1-2시에 끝났습니다. 언제나 그날이 기다려졌고, 모임에 참석함으로 인해 제 영혼은 늘 충만해졌습니다.
7. 교회 안에는 평생 교육받아도 충분할 만큼의 신앙 교육과 프로그램이 있었고(그것은 신학교의 전체 교과목들을 적용한 것들이었습니다.) 모든 교인이 공부와 훈련에 열심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disciple)들은 열심히 훈련(discipline) 받아야 하는 사람들인 것을 모두가 잘 알고 자발적으로, 성실히 임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같은 과정을 함께한 교인들 사이에는 더욱 깊은 유대가 형성되었습니다.
8. 희년의 정신을 실천했습니다. 교인들 사이에 돈 거래를 하지 않도록 했지만 부득이 돈을 빌려주게 될 경우 이자를 받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빌려주기 보다는 그냥 주기를 권장했습니다. 교회 재정으로 가난한 교인들에게 돈을 꾸어 주기는 했지만 7년 동안 그것을 갚지 못할 때는 탕감해 주었습니다. 어떤 교인이 새 차를 살 때, 기존에 타던 차를 차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잘 정비해서 그냥 주었습니다.
9. 담임목사님이 몰던 차는 고급 대형 승용차가 아니라 소형차 였습니다. 대부분의 교인이 십일조 생활에 충실했으므로 교회 재정은 넉넉했습니다. 고급 승용차를 타도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목회자의 생활 기준은 교인들의 중간 평균 보다 조금 낮은 수준이 좋다는 지론을 담임목사님이 가지고 계셨고 그것을 실천했습니다.
10. 전도사의 월급이 목사의 월급보다 더 많았습니다. 당시 비슷한 연배의 전도사님이 계셨는데 담임목사님에게는 두 명의 자녀가, 전도사님에게는 세 명의 자녀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전도사님이 더 많은 사례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당시 담임목사님의 생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자녀가 셋인 집안의 경제적 필요가 둘인 집안 보다 더 크기 때문이었습니다. 교회 재정은 필요에 따라 배분되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11. 담임목사실이 따로 없었습니다. 사무원들과 한 공간을 사용했습니다. 교회에는 작은 사무실이 하나 있었는데 담임목사, 전도사, 사무원들이 같은 크기의 책상과 공간을 차지하며 사무를 보았습니다. 담임목사이기 때문에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12. 성직제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교인이 목사요 전도사라는 “전신자 목회자주의”를 강하게 표방하였습니다. 모든 신자가 그리스도의 제자이며, 제자들은 모두 목회자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담임목사직은 은사에 따라 하나님으로부터 허여된 직분일 뿐, 교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13. “주님 구원론”(Lordship salvation)을 특히 강조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의 자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신분 외에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그 분의 종으로 살아가는 종의 지위와 역할이 있음이 특히 강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반드시 주님의 종이 되어야 했습니다. “종놈 의식”과 그에 따른 순종이 강조되었습니다.
14. 신학교를 나오지 않은 교인을 안수해서 분립 지교회의 담임목사로 세웠습니다. 신학교를 나와야 반드시 담임목사가 될 수 있다는 통념을 거부했습니다. 교인 중 신앙생활의 모범이 되는 사람이 담임목사로 세워져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고 그것을 실천했습니다. 신학교 졸업 유무는 결정적 요인이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