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50)

라파공동체2026.03.28 15:243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50)



 제가 신앙 생활 초창기 5년 동안 출석했던 모교회(서울 양천구 목동에 있는 목산교회)는 위와 같은 교회였습니다. 목산교회가 나의 첫 교회였기 때문에 저는 모든 교회가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모교회를 떠나 제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공생애(풀타임 사역)를 시작하면서 만나고 알게 된 교회들은 이러한 모습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모교회의 여러 특징과 견주어 제가 경험한 다른 교회들의 모습을 열거해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많은 교회들이 교회는 예배공동체임을 강조합니다. ‘예배에 목숨을 걸어라’는 슬로건 하에 큰 교회를 일군 목사님도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교회의 교회다움은 “예배공동체”라는 특성을 통해 집약적으로 표현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듣고 보고 경험한 많은 교회의 예배는 진정성이 사라진 예배였습니다. 형식적으로 드려지는 예배가 많았습니다. 그저 일요일에 행해지는 종교 의식(ritual)으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배에 열심인 교회도 예배를 교인들에게 제공해 주는 영적 서비스로 생각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아이돌 쇼 마냥 예배에 참가한 이들에게 영적 감흥을 선물하려고 지나치게 애쓰는 교회도 많았습니다.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2. 교회가 신자들의 모임이라는 정의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러하냐는 다른 문제입니다. 제가 보기에 많은 교회 안에 비신자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 보이기도 했고, 신자들은 잘 훈련되어 있지 못했습니다. 비신자를 신자 대우하고, 정작 신자들은 잘 훈련되어 있지 않으니 교회가 교회다움의 맛을 잃어버릴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3. 성인 신자들이 주일 예배 후 따로 모여 성경 공부하는 교회를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성경이 경전일진대 경전 공부를 게을리한다는 것은 신자의 바른 태도가 아닐 것입니다. 신자라면 모름지기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것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사람들일진대 하나님의 뜻이 담긴 성경을 공부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평생을 공부하고 훈련해도 그 높고 깊은 뜻을 다 알 수 없고 실천할 수 없을 터인데 신자가 성경을 일상속에서 가까이 하고 늘 배우기를 즐거워 하지 않는 다면 그것은 신자됨의 심각한 결격 사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4. 성경 공부도 하지 않을진대 더 깊은 차원의 신학 공부나 신앙 훈련을 받는다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었습니다. 신앙의 길은 끝없이 배우고 훈련하며 구원을 완성해 가는 과정인데 교인들의 신앙 성장과 성숙에 힘쓰는 교회가 드물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원한다 할지라도 교인들이 원하지 않는 실정이었습니다.

5. 기도하는 교인들도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이 성경을 공부하지 않듯이 기도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았습니다. 기도 자체를 생활화한 사람들도 많지 않았지만 기도하는 사람들의 기도 내용도 복음과는 상당히 멀었습니다. 기도는 성직자들이나 하는 것으로 인식하였고 기도하는 것을 어려워 했습니다. 기도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는 이들은 거의 없었고 저마다 자기 욕구와 욕망, 필요를 간구하기에 급급했습니다. 하나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것이 아니라 내 필요를 채워주는 종으로 여기는 듯 했습니다.(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들의 기도내용을 들어보면 딱 그랬습니다.)  

6. 성도의 교제(코이노니아)가 살아 있는 교회를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많은 교인들이 선데이 크리스천이었고, 주일에만 한 번 교회 공예배에 나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교인들 사이의 교제가 살아 있는 경우에도 교제의 중심에 그리스도와 말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 골프, 주식, 비트코인, 자녀 학원 문제 등 세속적인 얘기들이 나누어지고 정보가 교환되었습니다. 

7. 제자도가 사라졌습니다. 제자(disciple)는 훈련받은 사람(discipline)인데 훈련받은 사람이 없으니, 자연히 교회 안에서 제자가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목사, 전도사, 선교사와 같은 특신도들, 성직자들만이 제자로 여겨졌습니다. 일반 평신도들은 그저 “무리”의 자리에 머물러 있게 되었습니다.  

8. 세례(침례)가 남발되었습니다. 세례(침례)가 믿음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세례(침례) 받으면 신자가 된 듯 여기는 풍토가 만연하였습니다. 심지어 교인수를 늘리는 방편으로 세례(침례)가 활용되는 측면도 많았습니다.

9. 교인수를 늘리는데 목숨을 거는 듯 했습니다. 목회자의 생존권이 교인들의 헌금에 달려 있다보니 생기는 현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재정적 자립이 달성된 교회에서도 끝없이 교인수를 늘리는데 매달렸습니다. 그것이 목회의 목표가 되었고 그것은 많은 사람들을 구원한다는 미명 하에 추구되었습니다. (나중에 이야기 하겠지만 한국 교회의 구원론, 혹은 구원관에 심각한 왜곡이 존재합니다.) 

10. 교회당 증축과 신축이 교인들의 목표처럼 보였습니다. 교인수를 늘리는 일에 집착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교회의 목적과 목표가 더 많은 교인을 수용할 수 있는 교회당 증측과 신축에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말로는 교회가 건물이 아니라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건물, 건축에 교회 자원을 집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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