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60)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60)
예수님을 만나 그리스도인이 된 초기 신앙 생활 5년 동안 저는 세상 학문을 들여다 보지 않았습니다. 오직 신앙 서적과 신학 서적만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중독치유사역에 헌신하게 되면서 심리학과 정신분석학(특히 대상관계이론)을 접하게 되고 열심히 공부해서 이를 중독 치료에 적절히 적용하고 활용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심리학의 세계를 공부하고 이해하게 된 것은 제게 네 번째 개안(開眼)에 해당할 만큼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첫 번째 개안이 대학 생활 중 사회과학 서적을 통한 것이었다면, 두 번째는 불경과 참선을 통한 것이었으며, 세 번째는 하나님을 만나 영의 세계로 진입하면서 이루어진 것이었고, 네 번째가 심리학, 정신분석학을 공부하고 삶과 사역에 적용하면서 얻어진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제게 주어진 은혜였고 선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손수 공들여 “창조한 인간”의 본성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인간의 창조-타락-회복으로 이어지는 구원의 드라마틱한 과정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영광도 넘치도록 누리게 되었습니다.
중독은 기본적으로 심리적 현상이고 증상입니다. 곧 마음이 병든 것입니다. 우울증, 조울증, 조현병 등이 모두 마음의 병인 것처럼 중독 역시 마음의 병입니다. 정신의학적으로 말하자면 정신장애, 곧 mental disorder의 일종으로 알코올중독의 경우 알코올 의존(alcohol dependence)으로 진단되고, 표기됩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용서해 주시면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 8:11)
에베소 교인들에게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
이 두 성경 구절을 알코올중독자들에게 적용하는 것은 너무 쉽습니다. “이 말씀을 보아라. 예수님께서 더 이상 술 마시지 말라고(죄짓지 말라고) 말씀하시지 않느냐”고 중독자를 다그치고, 주님의 명령을 따르라고 하면 그들이 “네. 알겠습니다.” 하고 술을 끊을 수 있을까요? 경험적으로 우리는 알코올 중독자가 그 말씀을 들었다고 해서 바로 술을 끊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술 마시는 수 많은 사람들 – 그리스도인이든, 비그리스도인이든 - 을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성경에 술 마시지 말라, 취하지 말라 라고 써 있다고 해서, 그 말씀을 그리스도의 명령이라고 인지한다고 해서 바로 술을 끊지는 못합니다. 술 마시는 보통 사람들도 술을 끊는 게 어려울진대 하물며 알코올중독자가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바로 술을 끊는 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알코올중독이 치료하기 어려운 이유 중의 하나는 정말 간절히 술을 끊고 싶어 하는 중독자라 할지라도 실제로 술을 끊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말씀을 전해주어도 술을 끊게 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아주 드물게 어느 날 교회 예배에 참석했다가 말씀의 은혜를 받고 즉각적으로 술을 끊었다는 간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 경우는 1/1,000, 1/10,000에 해당하는 지극히 드문 경우에 해당할 뿐 아니라, 그런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말할 수 없는 수고와 기도가 이미 선행되어 있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심리학은 일반 심리학과 이상 심리학으로 나뉘어지는데 중독은 이상심리학에 속하는, 치료가 어려운 정신장애(질환)이며 마음의 병입니다. 영적으로는 중독된 그것을 우상 삼는 우상숭배의 죄이기도 하고 뇌를 포함해 육체 전반을 병들게 하는 육체의 병이기도 합니다. 중독의 치료란 병든 육체를 치료하고 마음의 병을 치료하며, 영적으로 구원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중 영적인 구원에 대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 사람을 구원(치료, 회복)하여 주실지 아닐지는 주님만 아시고 그 능력도 주님께 있으므로 인간의 능력 밖의 일일입니다. 우리는 다만 그 놀라운 구원이 일어나기를 소망하며 중독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한 환경을 제공할 뿐이지요. 그렇지만 육체의 치료(회복)와 마음의 치료(회복)을 위해서는 인간이 할 수 있고 해야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게 해주고 상담(counseling)과 교육(teaching), 훈련(training)을 통해 그들을 회복의 길로 인도하고 안내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병으로서의 중독을 치료(회복)하는 데 있어서 가장 어렵고 난이도가 높은 영역은 “무의식의 치료” 영역입니다. 무의식은 인간에게 감추어져 있는 의식으로, 실제로는 의식에 의해 마음과 뇌에 없는 듯 억압되어 갇혀 있는 사건과 감정, 욕구들을 말하는데 프로이트는 이 억압되어 갇혀 있는 것들이 사람들의 실제적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지난 25년 동안의 중독치유 현장에서의 저의 경험은 프로이트가 전적으로 옳았다는 것을 확증해 주고 있습니다. 중독을 향한 무의식적 충동과 동기를 이해하고 이것들을 빛 가운데로, 의식 가운데로 끌어올리지 않고서 온전한 치유와 회복을 기대하는 것은 난망한 일입니다. 주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쳐주시면서 서기관에게 물으십니다.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으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마 9:5)고. 둘 다 어려운 일이겠지요. 한국의 기독교와 교회를 쇄신하는 것과 중독을 치유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쉬울까요, 혹은 더 어려울까요? 제가 보기엔 똑같이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중독자의 아비투스가 회복자의 아비투스로 변화해야 하듯이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의 아비투스가 전적으로 변화하지 않고서 는 기독교의 쇄신이 가능할 것 같지가 않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