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61)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61)
한국의 기독교는 자정 능력을 잃었습니다. 은혜, 믿음, 구원, 예배, 신자, 교회와 같은 기독교의 주요 언어와 개념이 본래 의미를 잃은 채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새롭게 하기 위해 새로운 언어, 새로운 개념이 필요한 시대 앞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 카톨릭의 “공로 구원” 현상에 반대하여 루터가 “이신칭의” 교리를 주장함으로 개신교의 새로운 시작이 가능했던 것처럼 기독교를 새로운 눈, 새로운 언어, 새로운 개념으로 바라보고 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비투스” 개념은 그런 관점에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믿고 행하던 모든 것을, 무의식의 깊은 심층 영역에 까지 철저히 되돌아 보고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아비투스”로 거듭나야 합니다.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을 공부할 때 제안에서 일어났던 거부감과 저항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심리학 일반을 공부할 때까지만 해도 거부감과 저항은 그렇게 강하지는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심리학이 논리적이고 이성적이었으며 합리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프로이트에 대해서 공부할 때는 달랐습니다. 제 안에서 강한 거부감과 저항, 반발심이 올라왔습니다. 뭐, 이렇게 까지 반발할 필요가 있나 스스로 생각할 만큼 반발의 강도는 셌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철저히 반기독교적 입장을 견지했던 프로이트에 대한 기독교인으로서 갖는 반발이었을 것입니다. 제 신앙 생활 초기에 프로이트에 대해서 들었던 평가나 정서는 대표적인 인본주의자,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이었던 사람, 성적 해방과 자유분방함을 주장한 사람 정도의 천박한 인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아무튼 프로이트는 가까이 하고 싶지 않고, 가까이 해서도 안될 ‘부정’하고 ‘위험’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프로이트로부터 시작된 정신분석학과 그 지류로 형성된 대상관계이론을 처음 접했을 때의 저항은 강력한 것이었습니다. 모든 인간 안에는 자기와 다른 것에 대한 반발이 있게 마련이듯이 모든 종교인들에게도 자기 종교를 부정하는
것들에 대해 반발하는 성향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간이 성숙해 가는 것과 종교의 깊은 영역으로 나아가는 것의 표징은 관용과 포용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엄밀히 말해 프로이트 전공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닙니다. 다만 프로이트로부터 시작되어 갈라져 나온 대상관계이론(애착이론을 포함해서)과 거기서 나온 자기심리학(로널드 페어베언, 멜라니 클라인, 도날드 위니컷, 하인즈 코헛, 존 볼비와 같은 학자들)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이 이론을 중독 치료에 활용해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이론의 출발점은 프로이트가 발견한 ‘무의식’과 ‘무의식의 세계’입니다. ‘무의식’이라는 단어를 우리는 일상에서 흔히 사용합니다. 그러나 누군가 나의 ‘무의식의 세계’를 들여 보기라도 할라치면 황급히 자기를 방어하기에 급급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내면을 노출하거나 남들이 자기 내면을 들여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아가서는 강한 거부감을 갖습니다. 저 자신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공부가 계속되면서, 중독 치료의 임상 경험이 쌓여가면서 저는 인간 내면 심층의 보이지 않는 ‘무의식의 세계’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보이지 않는 깊은 심연 안에 겉으로 드러나는 인간 행동과 사고의 모든 근거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간 내면의 ‘무의식의 세계’를 발견하고 이를 학문화한 프로이트의 천재성에 감탄하게 되었습니다. 프로이트에 대한 완전한 반전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프로이트의 학문적 결실을 소중한 지적 자산으로 받아들이면서 세상과 사물,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인가 아닌가, 그리스도적인가 반그리스도적인가, 인본주의자인가 신본주의자인가와 같은 선입견과 편견의 기준에 근거해 판단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프로이트가 발견하고 학문화한 “무의식”의 세계를 이해하고 그것이 인간 내면의 구조적 실체임을 경험적으로 확인하면서 비록 프로이트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고, 살아생전 반기독교적 입장을 견지하였지만 그가 발견한 인간 내면의 무의식은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 내면의 구조적 실체로서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 그 자체의 심리적 본질임을 더 밝혀 알게 해주었습니다. 그가 기독교인이 되지 못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택하시고 불러주시지 않아서일 뿐, 사실 그의 잘못도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평생에 걸친 지적 작업의 결실로 탄생된 무의식 이론은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 내면의 존재적 속성과 구조를 밝힘으로써 인간의 정신적 병리와 장애의 치료에 획기적 전환의 계기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
중독은 참으로 고치기 힘든 정신병리요 장애입니다. 저의 25년에 걸친 중독치유사역의 경험은 중독자들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의 무의식의 세계에 남아 있는 정신적 결핍과 그로 인한 채워지지 않은 욕구들이 현실에서 중독물질과 행동의 추구로 나타난다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그것은 종교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종교인 각 개인의(혹은 집단이든) 무의식의 세계에 남아 있는 정신적 결핍과 채워지지 않은 욕구가 신에게 의존하는 – 신을 믿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 수많은 종교중독자를(종교의존자) 양산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기독교 문제의 핵심에는 하나님을 참으로 믿고 따르는 신자들보다 자기의 욕구와 욕망 달성을 위해 하나님께 의존하고, 하나님을 이용하는 종교중독자가 너무나 많다는 사실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