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65)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65)
베드로후서 3장의 종말의 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받아들이기 전까지 종말의 날에 대한 저의 인식은 할리우드 SF 영화의 수준이었음을 고백해야겠습니다. 그때까지 저도 종말의 날은 할리우드 SF 영화에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핵전쟁에 의한 인류의 멸망, 지진, 화산폭발, 쓰나미, 우주 혜성과의 충돌 등에 의한 지구멸망 등으로 상상해 왔음을 인정해야 하겠습니다. 주님 재림의 날에 인류는 멸망하고 지구는 완전히 파괴되는 것으로 상상해 왔습니다. 그때 하늘로부터 예수님이 등장하셔서 죽은 자들과 산 자들 중 믿는 자들을 하늘로 들어올리시리라고 상상하곤 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4:16-17절 말씀도 이런 상상을 하는데 강력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주님이 다시 오시는 재림의 날을 바울은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번역 그대로 보면 이단 휴거주의자들의 논거가 되기에 충분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날에 신자들이 하늘로 끌어 올려진다는 것, 곧 휴거된다는 것입니다. 초등학생이 보아도 이 본문을 보면 누군가가 하늘로 끌어 올려지거나 들려 올려지거나 하는 현상에 대한 서술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프레디거는 이 구절도 새롭게 번역되거나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지금까지의 전통적 해석과 휴거주의자들의 해석처럼 성도들이 ‘휴거’되어 공중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이후 세상은 불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의 구절에서 중요한 단어는 ‘영접’(ἀπάντησιν, apantēsin)인데 이 단어는 고대에서 왕이 도시를 방문할 때 시민들이 도시 밖으로 나가 맞이하고, 함께 돌아오는 것을 가리키는 단어라는 것입니다. 그 단어는 예수님께서 신랑을 맞이하러 나가는 신부 들러리 비유를 말씀하실 때(마 25;6), 로마 신자들이 바울을 맞이하러 아피온 광장으로 마중나갔을 때(행 28:15) 사용된 단어였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구름’과 ‘공중’도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구름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임재(출 19:9, 마 17:5, 계 1:7)를 상징하기도 하며, '공중'(ἀήρ)은 고대 우주관에서 하늘과 땅 사이의 공간으로, 인간과 하나님이 만나는 중간영역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N.T 라이트의 해석대로 “성도들이 하나님의 임재의 공간으로 나아가서 환영사절이 되어, 그분을 왕 같이 호위하여 그분의 영지로 모시는 것, 곧 그들이 출발한 땅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지막 구절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는 말씀은 우리가 갱신된 땅, 새롭게 거듭난 새 하늘 새 땅, 이 지구 위에서 주님과 영원히 함께 하리라는 것입니다. 계시록 21:2절의 말씀대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 위로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종말의 때에 인간을 새롭게 하고, 당신이 창조한 이 지구를 새롭게 하여 이 지구 위에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사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종말의 날을 상상함에 있어 흔히 스피노자의 말로 알려진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명언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음을 고백해야 겠습니다. (이 문장의 유래를 연구한 최근의 자료에 의하면 이 글은 스피노자의 글도, 루터의 글도 아니라고 합니다. 독일에서 1940년대 전후에 처음 유포되었으며, 나치 치하의 암울한 시대에 희망과 저항의 상징으로 사용되면서 대중적으로 알려진 문구라 합니다.) 이 구절이 지닌 함의, 즉 ‘지구는 사라지고 파괴당하며 멸망할 것이다’에 저는 암묵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동의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최후의 그 순간까지 아름다운 삶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겠다라는 비장한 결단의 마음으로 이 구절을 마음에 품고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생태신학>을 통해 성경에 대한 새로운 해석, 새로운 비전을 만났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 날, 이 지구는 불에 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지구 위 모든 추하고 더러운 것들을 불태워 정결케 한 후에, 주님께서는 하늘로부터 이 땅에, 이 지구 위에 내려오실 것입니다. 그날에 지구도, 그 위에 사는 인간도 정결케 되고 갱신되고 새롭게 되어 지구 위에 새 하늘 새 땅이 창조의 영광 가운데 새롭게 꽃피우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이 지구를 주님 임하실 그날까지 책임 있게 돌보고 가꾸는 일을 우리 그리스도인이 잘 감당해야 함은 지극히 마땅하고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겠지요. 마라나타! 주 예수여, 속히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