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67)

라파공동체2026.03.28 15:232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67)



 베드로후서 14-15절에서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인들이 종말의 그 날을 바라보면서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권면하면서 “우리가 사랑하는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다”고 말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자신의 생각과 주장이 바울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니 베드로후서에서 사용된 στοιχεῖα (stoicheia)를 물질적 개념인 “체질”로 번역하는 것보다는 종말의 그 날에 불태워 없어질 그리스 로마 사회의 세속적 삶의 양식과 가치관, 세계관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요. 바울이 히브리서에서 그리스도의 초보(στοιχεῖα)를 버리고 성숙한 신앙으로 나아가자고 주장하는 것처럼 베드로 사도도 마지막 구절 -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 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 로마 사회의 세속적 삶의 양식과 가치관, 세계관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바울과 똑같이 영적, 인격적 성장과 성숙을 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 후서 3:10절과 12절에 사용된 ‘풀어지리니’의 표현이 11절에도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이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라”(3:11-12a)



 10, 11, 12절에서 사용된 “풀어지리니”는 모두 헬라어 λύω(luō)에서 파생된 같은 단어인데, 11절의 의미는 단순한 물질적 소멸 – 지구 소멸 - 이 아니라 당시의 정신사회문화적 차원에서의 반하나님적, 파괴적 질서와 관계 구조가 풀어지고(해체되고), 새로운 생명 공동체, 회복공동체를 위한 위대한 전환의 새 시대가 오리라는 말씀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날이 오기까지 믿는 사람들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자신들을 준비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특히 헬라어 λύω(luō)가 사용된 신약성경의 범례를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후 “그를 풀어 놓아((λύω) 다니게 하라”(요 11:44), 안식일에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지((λύω) 않느냐?”(눅 13:15), 어린 양이 두루마리의 봉인을 풀(λύω) 자격이 있다.(계 5:2,5) 하나님이 예수를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λύω)) 다시 살리셨다.(행 2:24), 남편이 죽으면 여자는 율법에서 풀린다(λύω).(롬 7:2) 등의 구절에서 확인되듯이 신약성경 전체를 통해 류오(λύω)는 자유, 해방을 뜻하는 긍정적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후서에서 사용된 “풀어지리니”(λύω)의 의미도 지구 파괴와 해체의 암울한 상태를 뜻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인간과 지구, 자연 세계의 모든 억압과 불의, 불법, 파괴적 상태로부터 갱신, 갱생된 상태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함이 마땅할 것입니다. 



 <생태신학>을 통해 얻은 새로운 통찰에 대해 이야기 하다보니 베드로후서를 주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베드로후서를 해석함에 있어 “체질”로 번역된 στοιχεῖα (stoicheia)가 바울이 갈라디아서와 골로새서에서 언급한 “초등학문”과 같은 단어임을 밝혔고, 베드로후서 3:11,12,13절에서 연속적으로 사용된 “풀어지리니”가 헬라어 λύω(luō)가 원형임을 밝혔습니다. 이 두 단어를 특히 주해한 이유는 그 두 단어가 오늘의 한국 기독교의 문제를 이해하고 해법을 찾기 위한 데서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가 오늘의 한국 기독교에 편지를 쓴다면 ‘한국의 기독교인 형제, 자매들이여, 그대들을 묶고 있는 초등학문(στοιχεῖα, stoicheia)에서 풀려나십시오(λύω, luō)’ 라고 말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한국 기독교의 문제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것은 바울이 말한 바 “초등학문”에 묶여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에게 그리스 로마의 문화와 사상, 삶의 양식과 태도, 철학과 풍조등을 초등학문으로 표현하며 이를 경계하라 주의를 당부하였던 것처럼 오늘의 한국 기독교 역시 세상의 문화와 사상, 세속적 삶의 양식과 태도, 철학과 풍조, 세속적 세계관과 가치관에 깊이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적 가치와 세계관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세상(세속)적 가치와 세계관을 따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로는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세상을 따름으로 말과 행동이 불일치 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는 경고와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지말고 그리스도를 좇으라”는 골로새서의 권고는 오늘 우리들에게 주는 경고와 권고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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