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71)

라파공동체2026.03.28 15:232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71)



 하비 콕스는 현시대의 기독교에 대해 암울한 진단을 내리지만 희망마저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신학적 저항과 새로운 상상력으로 이 시대 기독교가 처한 상황을 이겨나가자고 말합니다. 시장은 도구이지 신이 아니며, 통제 가능한 인간 제도임을 우리가 분명히 알고 시장을 윤리적 통제와 민주적 책임 아래 두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기 위해 중요한 것은 기독교가 기독교의 본질을 회복하여 시장이 제공하지 못하는 생의 의미와 목적, 관계와 연대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교회는 시장 종교에 저항하는 예언자적 공동체가 되어야 하고 소비자 중심 종교에서 벗어나 나눔과 희생, 연대와 치유의 공동체를 실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비 콕스는 기독교의 미래를 다룬 그의 책 「종교의 미래」(김창락 역, 2010년, 문예출판사)에서 기독교 2,000년의 역사를 3단계로 분류하면서 1단계를 예수님 시기로부터 로마의 국교화가 진행되기 전까지의 300년의 시대로, 2단계를 AD 300년 이후 1,900년까지의 시기로, 3단계를 1,900년 이후 현재에 이르는 기독교의 탈서구화와 성령의 역사가 남반구를 중심으로 활발히 전개되는시기로 구분하면서 기독교의 제3의 시대, 곧 성령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주장합니다. 그의 주장은 21C 기독교 안에서 이루어진 두드러진 변화를 반영합니다. 지난 100년간 기독교 안에서 일어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서구 기독교의 쇠퇴와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기독교의 발흥입니다. 오순절 성령주의 신학과 신앙이 기독교의 대세, 주류적 흐름이 된 것입니다. 



 한국은 지난 100년 간의 세계 역사 속에서 유례 없는 변화와 발전의 신기원을 이루었습니다. 그 한 가지는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아시아의 가장 가난한 나라가 세계 10위 권의 경제강국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제도적 민주주의의 구축과 함께 식민지 지배를 받은 나라가 정치경제적 강국으로 변모한 유례 없는 사례가 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정치경제적 발전과 변화는 마르크스의 제국주의론이나 거기서 파생한 제3세계 종속이론 등이 진실이 아니었음을 증명합니다. 또 하나의 놀라운 변화는 기독교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입니다. 개신교 역사 140년(카톨릭 240년) 만에 전체 인구의 30%가 기독교 신자가 되어 불교와 더불어 한국의 주류 종교로 자리잡은 것입니다. 이 또한 세계 기독교 역사에서 예를 찾아보기 힘든 드문 사례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한국의 미래를 우리는 어떻게 전망할 수 있을까요? 정치경제적 측면에서 한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더 전진할까요, 아니면 후퇴할까요? 기독교의 미래는 어떨까요? 2,000년 이후 쇠퇴하기 시작한 한국의 기독교는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서구 기독교의 뒤를 따를까요, 아니면 발흥하는 남미, 아프리카 기독교의 길을 따르게 될까요?     



 현대 기독교 100년의 역사를 살펴볼 때 성장세를 기록한 교단과 분파가 있는데 첫째는 오순절 성령주의 교단의 폭발적 증가와 확대이고 두 번째는 아나뱁티스트 분파의 약진이며, 세 번째는 유럽 개신교, 특히 카톨릭이 국가 종교화 되어 있는 프랑스와 독일 등지에서의 복음주의 개신교의 성장입니다. 전세계적 차원에서, 비록 서구 기독교는 뚜렷한 쇠락의 길을 걷고 있지만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를 비롯한 남반구 기독교는 발흥하고 있어 기독교 인구수는 증가하고 있습니다. 서구 유럽의 기독교는 카톨릭이든 개신교든 전반적으로 쇠락하고 있지만 프랑스와 독일 등지에서는 카톨릭의 국가주의적 틀을 깨고 복음주의적 개신교가 성장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추세와 견주어볼 때 한국의 기독교는 어떠합니까?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로 알려진 오순절 여의도 순복음 교회의 교인수는 남반구 오순절 교회의 성장과는 반대로 급격히 감소하고 있습니다. 전체 인구에서 기독교인이 차지하는 비율도 현저히 하락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아나뱁티스트와 네오 아나뱁티스트(교단을 달리하지만 아나뱁티즘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수는 증가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아나뱁티즘이 알려진 것은 6.25 전쟁의 와중에서 한국에 진출한 메노나이트 선교사들로부터 시작되었지만 그들의 한국 철수와 함께 외방 선교사와의 연결 고리가 끊어집니다. 그들은 한국에 와서 봉사의 일에 충실하였을 뿐 통상적 의미에서의 전도와 선교에는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한국의 아나뱁티즘은 30여년전 두 흐름을 통해 자생적으로 탄생합니다. 춘천 예수촌 교회를 중심으로 메노나이트 교회가 여러 교회로 분립 개척되고 메노나이트 교회연합, KAC(korea anabaptists center), KAF(Korea anabaptists fellowship)와 같은 기능적 단체들을 설립하는 등 다기한 흐름으로 전개되어 온 것이 한 흐름이라면, 후터라이트와 아미쉬를 모델로 전국 각지에 독자적으로 세워진 기독교 공동체들 – 한공협 멤버십을 이루는 민들레 공동체, 밝은 누리 공동체, 한결 공동체, 개척자들, 하늘샘 공동체, 라파공동체, 샬롬공동체, 없이 있는 마을 – 등이 세워짐으로 또 하나의 흐름을 형성해 왔습니다. 이 흐름 위에 최근에는 기독연구원 느헤미야가 함께 함으로 아나뱁티즘 신학과 신앙의 지적, 학문적 보루가 되어주고 있으며, 도서출판 대장간이 아나뱁티즘 전문출판사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오기에 이르렀습니다. 한국의 아나뱁티즘이 움트기 시작한 90년대 초 읽을 만한 자료는 1985년 출간된 윌리암 에스뎁의 「재침례교도의 역사」가 유일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현존하는 아나뱁티스트에 대한 이야기 - 부루더호프 공동체의 이야기 - 가 책으로 전해진 것은 1997년 도서출판 쉴터가 발간한 「공동체 제자도」(하인리히 아놀드 저, 이상신 역)와 1998년 발간한 「공동체로 사는 이유」(에버하르트 아놀드 저, 편집부 역)를 통해서 였습니다. 그때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한국 아나뱁티즘 30주년 기념의 때에 소개된, 아나뱁티즘과 관련해 출간된 도서만도 200여권에 달하며, 관련 신학자들의 논문도 75편에 이릅니다. 지난 30년 동안 아나뱁티즘의 지적 저변은 놀라울 만큼 확장되었고 아나뱁티즘을 추구하는 개인과 단체들도 늘어나 200여명이 참가한 30주년 기념 모임을 개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