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74)

라파공동체2026.03.28 15:233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74)



 2011년 옥천에 터를 잡고 공동체 건축을 하면서 땅에 묻혀 있던 작은 판석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판석을 어디에 사용할까 생각할 때 10계명 돌판이 생각났습니다. 10계명을 새겨 넣기엔 판석이 너무 작아서 어떤 말씀을 새겨 넣을까 고민하다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말씀을 새겨 넣고 공동체-교회 입구에 세워 놓았습니다. 그때로부터 10여년의 시간이 흘러 라파공동체 창립 20주년의 해에 공동체 앞마당 정원공사를 하던 중 커다란 자연석 판석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자연석을 라파공동체 창립 20주년 기념석으로 사용하기로 하고 거기에 라파공동체 6대 덕목 – 정직, 겸손, 순종, 자족, 순결, 인내 – 을 새겨 넣었습니다. 아미쉬 사람들의 겔라센하이트를 알기 전에 이미 저 자신도 그리스도인 다움의 표징이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격과 품성, 태도로 나타나야 하고 그것이 교회 생활과 일상 생활, 그리고 사회 생활에서 나타나야 함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미소 짓고, 웃으며, 악수하고, 모자를 벗으며, 말을 모는 아미쉬 사람들의 모습과 태도로부터 아미쉬 사람들을 금세 구별합니다. 지나치게 쾌활하고, 챙이 올라간 모자를 쓰고, 너무 얇은 스타킹을 신고, 옷 소매를 걷어올리는 행동은 아미쉬 사회에서는 개인을 드러내고 자기 자신을 높이려는 행동으로 인식되어 눈총을 받습니다. 아미쉬인들은 침례시 무릎을 꿇고 그리스도께 대한 그들의 신앙을 고백할 때 세 가지를 포기하는데 그것은 자아, 악, 그리고 세상입니다. 그것은 언약공동체를 위협하는 세 가지 실체인데 이기심은 교만과 불순종으로 인도하며, 교활한 악은 속임수와 기만으로 회원들을 미혹합니다. 외부 세상에 대한 지나친 애정은 교회의 순결을 오염시킬 수 있기에 경계합니다. 아미쉬 사람들은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 합니다. 하나님보다 자신을 앞세울까 경계합니다. 자기를 높이는 일이 될까봐 그들은 개인 사진을 찍어 보관하는 것도 멀리합니다. 개인주의를 지양하고, 공동체의 가르침과 전통을 따르며 중시합니다. 세속적인 성공이나 부에 집착하지 않으며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추구합니다. 아미쉬인들은 화려한 옷이나 개성을 강조하는 패션을 피하고, 검소하고 단순한 옷을 입습니다. 현대 문명의 편리함을 거부하는 것도 겔라센하이트의 실천입니다. 자동차, 전기, 인터넷 등을 제한하는 것은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하나님과 공동체에 집중하기 위한 겸손한 선택입니다. 아미쉬인은 비폭력과 용서를 실천하며, 분노와 복수를 버리고 평화를 추구합니다.



 「아미쉬의 신앙과 문화(The Amish)」에는 아미쉬 사람들의 삶에 대한 수많은 사례들이 기술되고 있는데 아미쉬 삶의 방식에 대한 부분에서 몇가지 인상적인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2010년 여름, 오하이오주에서 아미쉬 출신의 투자자 몬로 비치가 운영하던 투자사 A&M Investments가 파산 신청하면서 2,700명에 이르는 투자자—대부분이 아미시 공동체 사람들—가 직격탄을 맞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미쉬 사람들은 그 파산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들이 어떻게 해서든 그 빚을 갚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아미시 투자자들은 연방법원을 통한 파산 절차가 그들의 신앙에 반한다고 여겼고 94%에 달하는 아미시 채권자(약 2,550명)는 "Amish Alternative Plan"이라 불리는 내부 해결 방안을 제시하며, 파산 절차의 전면 중단을 요청합니다. 물론 이 제안을 연방 법원이 종교 기관에 사법권을 위임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수용하지 않음으로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이 제안을 통해 아미쉬 사람들은 법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아미쉬 공동체의 신앙과 정신에 따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보조금을 배분하면서 이 사태를 공동체가 해결하려 했던 것입니다. 세상에 대해 교회는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책에는 아미쉬 사람들의 악수에 대해서도 기술하고 있습니다. 모든 경우에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아미쉬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계약서를 쓰는 대신에 악수한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계약서는 서로 믿고 신뢰하지 못해서 쓰는 것으로 인식된다는 것입니다. 서로 충분히 믿고 신뢰한다면 계약서를 쓸 필요가 없이 악수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계약이나 흥정이 마무리될 때 아미쉬 사람들은 악수를 나누는 데 그 악수가 계약서인 셈입니다. 악수를 나누며 약속한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키는 것이 그들의 일상 생활 문화라는 것입니다. 악수를 나누며 약속한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그들은 상상조차 못한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 이런 세상이라면 정말 살만한 세상이 아닐까요? 그런 세상이 그저 꿈과 이상이 아니라 삶의 실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럽습니다. 참으로 선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가 아닐 수 없습니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