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75)

라파공동체2026.03.28 15:233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75)



 오늘로서 심장 수술을 받은 지 딱 두 달째가 됩니다. 내 몸이 서서히 내 것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일상 거동이 가능해졌고, 공동체 여러 일들도 더러 처리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가슴 정중앙의 천원뼈를 25cm 정도 가르고 수술을 하였기에 뼈가 아물고 붙는데 적어도 3개월은 걸릴 것이라 합니다. 길게는 6개월이 지나야 한다고 하더군요. 여러분들이 기도해 주시고 염려해 주신 덕분에 잘 회복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 협심증이 나타나 약물치료를 받아오면서 증세가 호전되는 듯했으나 8월에 다시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해 스탠트 시술을 시도하던 중 시술이 여의치 않아 심장동맥우회술이라는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수술을 결정하고 검색을 해보니 수술 성공률이 98-99%에 달하고 이미 60여년 동안 수술 경험이 축적되어 있어서 수술 자체는 어려운 수술이지만 안전성은 잘 확보된 수술이라 하더군요. 그런가 보다 하였는데 막상 수술이 눈 앞에 닥치니 성공률 98-99%도 높은게 아니더군요. 100명 중 1-2명이 죽는다는 건데, 1,000명 중 1-2명도 아니고 혹 내가 그 1-2명 중의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이모님이 10여년 전에 같은 수술을 받다가 병원에서 돌아가신 적이 있는데 그때 일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수술실에 들어갔다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살아온 생을 생각하게 되더군요. 늘 내일의 죽음을 의식하며 살아왔지만 이번에는 평상시와는 다른 현타감이 느껴졌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 오늘 주님께서 부르신다면 기꺼이 가리라’ 하는 마음으로 수술실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수술 베드에 누워 수술실로 가던 중 마음속에 아쉬움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글, 글이었습니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를 마무리 짓지 못하고 떠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습니다. 예수를 만나서 그리스도인이 되고, 그의 제자가 되고, 아나뱁티스트가 되기까지의 제 삶의 여정에 대한 고백이 완성된 형태로 남겨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생각난 사람이 박경리 선생이었습니다. 그의 시 <사마천>이 생각났습니다. 수술 후 병원에서 육체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동안, 비록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저도 여러 편의 시를 썼습니다. 시적 상상력이 힘든 시간을 견디게 해 준 힘이 되었습니다.  



사마천 / 박경리



그대는 사랑의 기억도 없을 것이다

긴 낯 긴 밤을

멀미같이 시간을 앓았을 것이다

천형(天刑) 때문에 홀로 앉아

글을 썼던 사람

육체를 거세당하고

인생을 거세당하고

엉덩이 하나 놓을 자리 의지하며

그대는 진실을 기록하려 했는가



 제가 이 시를 알게 된 건 지난 6월 지인의 병문안을 위해 원주를 방문했을 때 우연히 들른 박경리 문학공원에서 였습니다. 거기서 이 시를 발견했을 때 박경리 선생이 대하소설 토지를 25년에 걸쳐 집필하게 된 동력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옛날의 그 집>이라는 시에서  “이 세상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하지만 /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선생은 왕의 미움을 받아 궁형이라는 극한 형벌을 받고 고난 가운데서 <사기>를 지은 사마천을 생각하면서 대하소설 <토지>를 집필했다는 것입니다. 영혼을 갈아 넣으면서 이 나라, 이 땅, 이 민족의 역사와 운명에 대해 증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거창하고 장대한 증언은 아닐지라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저의 삶에 대한 증언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제게도 간절했습니다. 제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위대하심과 선하심, 아름다움이 증언되기를, 제 삶이 그 증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여기 한 명의 아나뱁티스트가 있었다는 증거를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퇴원하고 가장 먼저 하려던 일이 글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여러 번 책상 앞에 앉아 시도해 보았지만 글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함을 절감했습니다. 몸이 부실하니 정신도 부실해서 정신적 에너지가 모아지지 않았습니다. 암 수술을 받고 퇴원하자마자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박경리 선생의 집념이 참으로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퇴원하고 처음 사서 읽은 책이 토지 마지막 책인 20권이었습니다. 젊은 20대 시절에 토지를 보았으니 1994년 완간한 4부 5권은 읽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20권을 사서 읽었는데 역시 좋았습니다. 토지에 대략 6-700명의 인물이 등장한다고 하는데 구한말에서 시작해 1945년 해방에 이르기까지 거의 60년에 이르는 긴 시간,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추적해 그 삶 위에서 민족과 나라의 역사를 증언한 그 집념과 끈기가 장엄한 문학적 성취와 더불어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도 몸이 회복됨에 따라 정신적 에너지도 회복되는 걸 느낍니다. 다시 쓰기 시작하는 이 글이 두세 달 안에 마무리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를 온 몸으로 따르고자 했던 한 그리스도인의 신실한 증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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