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81)

라파공동체2026.03.28 15:233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81)



 평화를 기독교 신앙과 신학의 전면에 내세우는 일은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실천하기 위한 좋은 방편이 될 수 있습니다.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이라는 두 관점은 기독교 역사 속에서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났습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구원을 개인의 영혼 구원이라는 관점보다는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한 신자들의 새로운 생활 방식의 구현으로 이해했고 로마제국 백성들의 삶의 양식과는 현저히 다른 탁월한 삶의 방식 – 구제, 약자 돌봄, 성적 절제, 도덕적 순결, 폭력거부 –을 통해 제국 백성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교회는 그렇게 로마제국 내에서 새로운 대안사회를 형성해 나갔는데 그것이 그들에게는 사회적 구원을 실천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면서부터 교회와 국가는 한 몸이 되고 교회는 국가의 일원이 되어 공공질서·복지·법·윤리에 책임을 지는 존재가 됩니다. 교회는 , 주로 수도원 할동을 통해 병원과 구호기관을 설립 운영함으로써 사회적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 교회가 감당한 사회적 역할은 오늘날의 ‘사회 구원’ 개념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로마제국 시대로부터 중세에 이르는 기간 동안 이미 국가와 교회는 한 몸을 이루고 있어서 사회를 구원해야 한다는 개념은 성립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중세 신정주의, 크리스텐돔의 세계가 붕괴되고 근현대에 들어서면서 국가와 종교가 분리되기 시작하고 기독교는 개인 구원과 경건에 집중되는 양상으로 전개됩니다. 근대와 함께 자본주의가 급격히 성장하고 도시화가 엄청난 속도로 진행됨에 따라 수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나타납니다. 개신교 안에서는 월터 라우센부쉬 같은 이들에 의해 기독교가 사회 구원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는 신학이 출현합니다. 이러한 신학은 흑인신학, 해방신학, 민중신학, 여성신학 등으로 다양한 방면으로 분출되었고 개신교 내에서도 WCC 선언을 통해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을 이루는 일에 기독교가 책임있게 임해야 함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기에 이릅니다. 



 카톨릭은 일찍이 1891년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 ‘노동헌장’을 발표하여 산업혁명으로 인한

노동착취, 빈곤, 도시문제에 대해 신학적으로 응답함으로써 “구원은 사회적 차원을 포함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천명합니다. 이 회칙을 통해 “사회적 정의”, “연대”, “노동의 존엄성”을 강조합니다. 카톨릭의 이러한 관점은 2015년 프란체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로 계속 됩니다. 카톨릭의 사회 구원 신학은 가난한 자의 권리를 선포하고 생태 정의와 공동선, 비폭력 평화를 아우르는 온 세상 피조물의 회복과 구원을 복음의 핵심으로 선포하고 이를 실천할 것을 촉구합니다. 개신교 안에서 사회 구원의 신학이 공식화 된 것은 WCC의 1966년 제네바 회의에서 였습니다. 이 회의의 주제는 “사회 속에서의 교회”(The Church in the World of Society)였는데 산업화, 빈곤, 인종차별, 베트남 전쟁 문제 등을 신학의 핵심 주제로 올려 교회가 이러한 사회적 문제, 구조적 악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선언함으로써 사회구원적 관점의 토대를 마련합니다. WCC 에큐메니컬 활동에 반대하는 복음주의 진영은 빌리 그레이함을 중심으로 1974년 로잔대회를 개최합니다. 로잔대회는 기독교 활동의 중심을 “복음 전도와 선교”에 놓고 WCC와의 차별성을 분명히 합니다. 로잔대회에는 존 스토트가 신학적 설계자로 함께 하게 되는데 그는 복음 전도와 선교 외에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을 복음의 일부로 균형 있게 규정함으로써 복음주의 진영 내에 사회 구원의 개념을 이입시킵니다. 사회 구원에 대한 최근의 주장은 <공공신학>의 이름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교회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복지 등 국가 정책의 제 영역에 관심을 가지고 기독교적 가치와 공공적 복리를 증진하는 일에 책임 있게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초대교회가 시작되던 순간부터 로마제국의 삶의 방식, 질서와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새로운 삶의 방식, 질서를 실천함으로써 대안사회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는 순간부터 기독교는 국가와 한 몸이 되었고 현실 국가에 포섭되었습니다. 근현대에 들어서면서 국가와 종교가 분리됨에 따라 신앙의 개인화가 빠르게 추진되었고 교회는 대안사회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상당 부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의 개인화가 중심이 되고 있는 현대 교회에서 교회의 사회적 활동은 돌봄, 구제, 봉사의 영역에 제한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개인 구원과 경건의 완성에 힘써야 할 뿐만 아니라 세상과 사회, 나아가서는 인간 삶과 전우주를 포함하는 자연·인간 생태계를 하나님과 화해케 하는 사역에 힘써야 합니다. 개인 구원은 사회 구원으로 확장되어야 하고, 사회 구원은 개인 구원의 확고한 기초 위에서 행해져야 합니다. 그것이 카톨릭과 개신교가 근현대에 들어서면서 정립한 신학적 합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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