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83)

라파공동체2026.03.28 15:233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83)



 아나뱁티스트들은 일체의 전쟁을 반대합니다. 정의의 전쟁이든, 정당한 전쟁이든, 방어적 전쟁이든, 거룩한 전쟁이든 일체의 전쟁을 반대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형태의 투쟁에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개신교가 카톨릭 교권체제에 저항하면서 탄생하였기에 ‘저항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에서 프로테스탄트로 불렸던 것처럼, 아나뱁티스트들 역시 루터와 칼빈의 국가주의적 신앙에도 저항했고 카톨릭의 교권주의에도 저항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저항자들 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유를 위해 저항했습니다. 신앙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천부적 권리임을 주장하였고 누구나 다 신앙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그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들은 그들이 옳다고 믿는 바를 묵묵히 실천하며 살았습니다. 유아세례가 성경적이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에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국가와 결탁한 카톨릭, 루터, 칼빈 그룹으로부터 유아 세례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이단으로 낙인찍혔고 핍박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이단심문소에서 석방을 조건으로 신앙 전향을 강요받았지만 이를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화형 당하고, 어떤 이들은 수장 당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것, 진리를 위해, 신앙의 자유를 위해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유혹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저항했습니다. 그들은 진리와 자유를 옹호하기 위한 저항자들이요 투쟁가들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묵숨을 건 투쟁보다 더 강력한 투쟁은 없습니다.



 그들은 평화를 위해서도 투쟁하였습니다. 그들은 일체의 폭력에 대해서 반대하였고 폭력 사용을 강요하는 국가적 압력에 저항하였습니다. 그들은 폭력 사용에 반대할 자유를 원했습니다. 그것은 그들 신앙의 핵심 사안이었습니다. 국가가 전쟁의 위난에 처했을 때 국가는 국민 총동원령을 선포하고 인적 물적 자원을 징발합니다. 아나뱁티스트들은 이런 국가의 징발에 저항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국민이었기 때문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그들의 적이 아니었고 원수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죽여할 사람, 죽어 마땅한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들 모두는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었고 복음을 전해야할 사람들이었을 뿐입니다. 그들은 폭력에 반대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그들의 신앙을 허락해줄 나라를 찾아 수백 년을 세계 각처를 떠돌았고 1,800년대 후반에 들어서서 그들과 같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떠나온 사람들이 세운 캐나다와 미국에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2차대전의 발발과 미국의 참전 결정으로 미국 땅에서도 전쟁에 반대하고 징집에 반대하는 아나뱁티스트들에게 국가로부터 견디기 힘든 압박과 핍박이 가해졌습니다. 아나뱁티스트들은 투옥을 불사하며 저항했습니다. 감옥도 그들의 믿음을 가두지는 못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자기들의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들은 교육의 자유를 위해서도 투쟁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믿는 믿음 안에서 자녀들을 교육하기 원했습니다. 세상적 가치관에 저항하였고 오직 성경적 가치관에 충실하길 원했습니다. 그들은 세상 나라에 적응할 인간형을 교육하는 제도 교육에 반대하였고 자신들의 자녀가하나님 나라에 충실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성장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자녀들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순교를 불사하는 신실함으로 살아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에게 가장 좋은 교재는 아나뱁티스트 선조들의 순교 이야기를 모은 「순교자들의 거울」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자기의 자녀들이 평화의 아이들로 자라길 원했습니다. 평화는 삶을 통해, 교육을 통해 가르쳐져야 하는 것입니다. 경쟁하고 이겨야 하는 세상에서 평화 의식은 길러질 수 없습니다. 불안이 압도하는 세상 속에서 평화는 뿌리내리지 못합니다. 평화는 평화로운 환경, 평화로운 가정과 공동체의 삶 속에서 함양됩니다. 평화의 가치를 교육받고 이를 삶 속에서 실천하는 가운데 인격의 일부가 되고 삶의 일부가 됩니다. 평화 사상, 평화 의식은 가르쳐지고 습득되어야 합니다. 미국의 아미쉬 사람들은 자기 자녀들에 대한 교육의 자유를 얻기 위해 긴 시간을 투쟁해야 했습니다. 많은 아미쉬 부모들이 국가 교육정책에 반대하고 자신들의 자녀를 학대한다는 이유로 고발되고 투옥되었습니다. 아미쉬 교육은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중학교 2학년까지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녀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부모들이 박탈함으로 아동 학대를 자행하고 있다는 것이고발의 이유였습니다. 세상에 아미쉬 사람들처럼 가족의 가치를 중시하고, 자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누가 더 있을까요? 오랜 시간을 아미쉬 부모들은 아동 학대 죄로 감옥에 갇히기를 반복했습니다. 아미쉬 사람들의 신앙에 기반한 교육의 자유는 끈질긴 법정 투쟁 끝에 1972년 위스콘신대 요더의 소송을 다루었던 대법원 판결에 의해 비로소 쟁취되었습니다.       

 지난 KAF 논산 모임에서 캐나다 메노나이트 쟈넷 자매를 만났습니다. 모임을 마치고 함께 식사하던 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평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남한 땅에서 아나뱁티스트들의 평화 사상을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에 대한 저의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때 쟈넷 자매가 정반대 되는 그녀의 경험을 이야기 했습니다. 자기는 대학교에 들어가서 기독교인들이 전쟁에 찬성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고 충격을 받았다 했습니다. 오히려 자기는 기독교인들이 전쟁에 대해 다양한 입장을 가질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다 했습니다. 어떤 환경에서, 어떤 교육을 받고 자랐는지에 따라 평화에 대한 의식은 이렇게 하늘과 땅만큼이나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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