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84)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84)
평화는 가만히 앉아 얻어지지 않습니다. 자유도, 정의도, 진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는 폭력과 억압이 있고, 불법과 불의가 있으며, 거짓이 있고 어둠이 있습니다. 이것들 위에 허위와 위선과 가식과 교묘한 조종 등이 덧입혀져 있습니다. 사탄의 어두운 권세는 영적 세계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도 깊게 드리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인들은 세상의 어둠과 거짓에 대해 저항하며 싸우는 사람들입니다. 다만 그 저항과 투쟁을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방법과 수단을 통해 행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평화를 위해 분투하고 투쟁하는 사람들의 최전선에는 <개척자들>의 송강호 대표가 있습니다. 그의 책 「평화, 그 아득한 희망을 걷다 – 르완다에서 강정까지 송강호의 평화 이야기」(IVP, 2012년)와 「그리스도인의 직무유기 – 평화를 위한 순종」(대장간, 2021년)을 읽으며, 한공협 활동을 통해 그를 대면하면서 저는 “그리스도의 평화”에 대해 배우고 알게 되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동티모르, 아체, 로힝야 등 전쟁과 재난의 고통을 겪고 있는 현장을 사역지 삼아 평화 사역을 펼쳐온 그들의 이야기, 평화의 섬 제주에 군사기지가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여 온 몸으로 항거한 강정 사람들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그가 전해 주는 신앙과 신학에 대한 생생한 증언과 고백은 저를 깨우기에 충분했습니다. 그의 책에 쓰여진 “그리스도의 평화”에 관한 그의 절절한 외침은 한국의 기독교계를 일깨우는 예언자의 목소리입니다. 그는 강정 군사기지 반대 평화투쟁을 이끄는 과정에서 다섯 차례 투옥되기도 했고 제주-오키나와-대만을 잇는 해안을 평화의 공평해(共平海)로 명명하고 한-중-일 삼국의 항구적 평화를 염원하는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 바다를 전쟁도 군사훈련도 없는 공존과 평화의 바다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이 프로젝트의 실행을 위해 그는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요나스 웨일’호 무동력 요트를 타고 강정-오키나와-대만을 잇는 107일간 장장 5,100km에 달하는 목숨을 건 항해를 완주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제주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아내와 함께 그의 사역에 대한 존경과 ‘평화‘에 빚진 자의 마음으로 면회를 갔었습니다. 면회를 마치고 나오면서 나는 그에게 “우리 시대의 문익환이 되어 주어서 고맙습니다” 라고 인사했습니다. 함석헌-문익환으로 이어지는 믿음의 선배들의 계보가 그에게로 이어지는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평화는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종종 운동의 형태를 띄고 전개됩니다. <개척자들>이 전쟁과 재난의 최전선에서 날 것 그대로의 평화 사역을 펼치고 있다면 <밝은 누리 공동체>는 대중성을 고려한 평화 운동을 전개합니다. 2017년 10월에 시작해 2020년 7월에 마친 “생명 평화 고운 울림 1,000일 기도순례”는 그 한 예가 됩니다. 그것은 20C 인류의 죄와 오만이 만들어 낸 제국주의 침략과 분단, 전쟁과 생태계 파괴를 성찰하고, 비무장 영세중립을 토대로 한 동북아 생명평화를 염원하는 순례였습니다. 그들의 순례는 한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어린아이들을 포함해 공동체 전 식구가 한라에 모여 국가폭력에 희생당한 4·3의 영혼들을 위로하면서 평화 순례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전쟁의 상흔과 국가폭력의 상처가 남아 있는 한반도 곳곳을 순례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들의 기도 순례는 한라에서 시작해 백두산 정상에서의 기도로 마쳤습니다. 한반도 순례를 마친 후에는 베트남-일본-중국의 상처 입은 땅을 순례하였고 마지막으로는 유럽의 여러 나라를 순례하며 핵군축과 평화, 한반도 비무장 영세중립국화를 위한 기도회와 세미나, 대동세상을 염원하는 한마당 잔치로 대미를 장식하였습니다. 이 평화순례기도회는 1,000일에 걸쳐 국내외 70여개 평화단체와 연대하여 11개 국가, 70개 도시, 366곳의 상처 입은 장소를 순례하는 대장정이었습니다. 인류의 근현대 역사에서 가장 큰 고통은 제국주의적 전쟁과 침략으로 인해 야기된 것이었습니다. 그로 인한 씻을 수 없는 상처는 세계 도처에 여전히 아픔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그런 곳곳을 방문하면서 해원 상생의 새날을 위해 기도하였고, 하나님의 평화가 임하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그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참으로 많은 인적, 물적 자원이 동원되어야 했는데 어린아이를 포함해서 공동체 식구가 200여명에 불과한 작은 공동체가(물론 한국 기독교 공동체 그룹 중에서는 가장 큰 공동체라 할 수 있는데) 그 일을 끝까지 완수한 것은 같은 뜻을 품고 있는 국내외 평화단체 사이의 연대와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평화를 위해 이렇게 앞서가는 형제, 자매들이 있었기에 저도 평화를 보고 배우고 알게 되었습니다. 평화는 복음 가운데 아직 드러나지 않은 감추인 보화와 같습니다. 그 보화를 캐내는 일은 하나님의 나라를 성큼 다가오게 하는 값진 일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