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85)

라파공동체2026.03.28 15:232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85)



 남과 북의 평화를 위해서는 창의적 발상과 접근이 필요합니다.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의 상황에서 남과 북은 서로 다른 통일 방안을 주장하여 왔습니다. 1972년 남의 제3공화국 대통령 박정희와 북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일성 주석 사이에서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라는 평화통일 3대원칙을 천명한 7·4 남북성명 이래 수십년간 남북은 전쟁종식과 평화통일을 위한 협상을 진행해 왔습니다. 남북관계는 문재인 정부 시절 문재인-트럼프-김정은 사이의 연이은 회담으로 한반도 비핵화 통일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최고치에 달하기도 했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서면서 남북관계는 역대 최악의 파탄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면서 북한과의 교류 협력의 물꼬를 트려고 애쓰고 있지만 북의 입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완강합니다. 최근의 남북 문제는 북한 비핵화 혹은 한반도 비핵화 논의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러한 관점 자체가 실현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비핵화에 나설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가장 실현 가능한 한반도 통일 방안은 “한반도 무장 중립화 방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구상에는 무장 중립국으로 스위스가 있고 비무장 중립국으로 코스타리카가 있습니다. 이 둘 중 스위스 모델이 더 현실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의 한반도 통일 논의는 정전상태를 끝내기 위한 종전선언 → 평화협정 체결의 방향에서 전개되고 있지만 이보다 더 좋은 방안이 “한반도 중립화 방안”이라고 생각됩니다. 한반도 중립화 방안에 대해 제가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탐구하게 된 것도 송강호 대표나 밝은 누리 공동체 활동을 통해서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방안이야말로 가장 기독교적이고 아니뱁티스트적인 방안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남과 북의 평화를 위해서는 여전히 기독교적 관점에서의 창의적인 발상과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평화는 가장 기본적으로는 기독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면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내면의 평화 없이 평화에 접근할 때 평화 논의는 적개심과 분노, 증오의 감정에 지배당하기 십상입니다. 내적 평화를 이룬 사람들은 그들의 일상에서 평화를 실천해야 합니다. 제가 아나뱁티스트가 되기로 결심한 중요한 계기가 있습니다. 아마도 예수촌 교회 교인일 것 같은데 어느날 우연히 유튜브 방송을 통해 아들의 직장 문제를 고민하는 어머니의 고민을 들었을 때였습니다. 아들이 좋은 직장을 다니는데 문제는 그 직장이 무기를 반드는 회사였다는 것입니다. 평화를 추구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고민하는 그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제게 큰 감동이 일었습니다. 고뇌하는 그리스도인, 참된 교회를 만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자매의 고민이야말로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이 세상에 대해서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답이었습니다.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아나뱁티스트들이라면 나는 기꺼이 아나뱁티스트가 되겠노라고 결심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무기를 만드는 회사에 취업하지 않아야 합니다. 취업 중이라면 전직을 고민하고 전직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한 태도일 것입니다. 내가 만든 무기가 어딘가의 전쟁터에서 누군가를 죽이는데 사용되고 있다면 이것은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그것이 살인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런데 실제에 있어 이러한 상황에 맞닥뜨린 그리스도인들의 대응은 어떠합니까? 



 첫째는 아무 생각 없는 경우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윤리적 삶에 아무 민감성이 없어서 관심조차 두지 않는 경우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요즘 방산업이 잘 나가는데 좋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칭찬해 줄지도 모릅니다. 거기다가 열심히 하라고 격려의 말까지 덕담으로 건넬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번째는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경우입니다. 그게 도대체 왜, 뭐가 문제가 되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방위 산업을 잘 발전시켜서 국가 방위를 튼튼히 하고 또 나아가 무기 수출까지 해서 나라 경제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데 뭐가 문제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무기를 쓰는 사람이 문제지 만드는 사람이 무슨 죄가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세 번째는 요즘 같이 취업이 어려운 판국에 뭐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분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식으로 따지고 들면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에게 합당한 직장이나 직업이 얼마나 되겠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그리스도의 평화를 실천하는 일은 일상에서의 삶의 자세와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서도 군인이나 국가 공무원이 되는 것을 배제했다 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전쟁에 참여하기를 원치 않았고, 하나님의 뜻보다 황제의 뜻을 앞세우고 추진하는 공무원이 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지만 모든 직업이 그리스도인들에게 합당한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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