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88)

라파공동체2026.03.28 15:233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88)



 프랑스 철학자 르낭은 “사람들은 사상, 이해 관계, 애정, 추억, 희망을 통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룰 때 그들이 함께 한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느끼는데 그것이 국가”라고 말하면서 민족-국가 개념을 주장하였습니다. 그의 민족 개념은 문화적 귀속에 의한 것이었는데 그는 인종을 혈통이나 인류학적 문제로 보는 생물학적 인종주의를 부정하고(피히테와 같은 독일 철학자들에 반대하면서) 문화적인 시각에서 민족과 국가를 조망하였는데 이 이론도 결국 자민족중심 국가주의를 강화하는데 기여했습니다.



 자민족중심주의, 국가주의의 끝판은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파시즘 국가의 등장이었습니다. 파시즘 국가가 탄생하게 된데에도 국가론이 강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헤겔이 깔아놓은 국가론의 판 위에서 국가주의를 근대의 숭고한 이념으로 올려세운 이는 피히테였습니다. 그는 <독일 국민에게 고함>에서 독일 민족의 고유성과 우월성을 강조하면서 ‘국민 교육’을 주창합니다. 그리고 국가적 차원에서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고 국가에 대한 도덕성을 함양하기 위한 정신교육을 시행합니다. 일등 민족을 향한 그의 절절한 염원은 “독일을 위한 전제자를 내려달라”는 간절한 기도로 이어지고 마침내 히틀러가 등장합니다. 히틀러는 독일 기독교인의 절대적 지지를 받으며 파시즘 국가를 공고히 구축하게 됩니다. 광기의 시대에 독일 지식인들과 기독교인들이 찬미했던 ’신의 이념‘으로서의 독일 민족, 유럽 최고의 민족, 독일 특유의 민족혼, 아리아종의 위대성과 영원성 등의 수사에는 독선과 야만이 가득차 있었지만 그들은 눈이 멀어 그들 자신을 볼 수 없었습니다. 국가주의가 그들의 눈을 멀게 한 것입니다. 트럼프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시진핑의 ‘중국몽’(中國夢) 도 현대판 국가주의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국가론의 전개과정 속에서 국가주의자들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들에 반대한 반국가주의자들과 무정부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국가무용론’을 주장한 고드윈, ‘강도국가론’의 스푸너, 공상적 사회주의자 바쿠닌, ‘시민불복종 운동’의 소로, 아나키스트 프루동 등은 국가의 폭력성을 인지하고 이에 반대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문제는 대안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국가를 해체하고 나면 무엇이 그것을 대체해야 하는 지에 대해 그들은 답을 내세울 수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의 주장은 ‘작은 정부론’ 정도로 현실화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들 반국가주의자들 중에서 그래도 기독교인들이 주목해야할 인물이 있다면 단연 톨스토이일 것입니다. 톨스토이가 아나뱁티스트들과 직접적으로 접촉한 증거는 없지만 그가 아나뱁티스트들의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합니다. 톨스토이는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The King of God) – 국내에서는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박홍규 역, 들녘, 2016년)로 번역 –에서 메노나이트, 퀘이커 등을 비폭력 무저항을 실천한 사람들로, 산상수훈을 가장 철저히 실천하는 이들로 평가합니다. 톨스토이는 당시 러시아의 비폭력 평화주의자들이었던 두호보르(Doukhobors) 그룹과 교제하였는데 이들은 러시아 정교회의 의식을 거부하고 성령의 내적 조명, 비폭력 평화주의, 무저항주의를 주장하였으며 군복무를 거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1895년 “무기소각운동”을 벌였다가 제정 러시아로부터 심한 박해를 받게 되고 결국 러시아 당국의 탄압을 피해 캐나다로 이주하게 됩니다. 이 때 약 7,500명의 두호보르 교인들이 캐나다로 이주하게 되는데 톨스토이는 소설 「부활」의 인세를 이들의 이주비용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톨스토이에게 있어 국가는 합법으로 위장한 폭력 집단입니다. 그는 국가폭력을 물리적인 테러, 약자에 대한 강탈, 폭력을 정당화 하는 세뇌, 정신적으로 세뇌된 대중들을 끌어모아 군대를 조직해 야수화 하는 것 등으로 정의하면서 국가 무용론을 주장합니다. 국가가 해체되더라도 그는 “인류 대다수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자연스런 종교적 가르침을 믿고 따르며 실천한다면” 무정부 상태를 견뎌나갈 수 있으리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단 하나의 영구적 혁명’,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영적 혁명을 통하여 국가나 조국이 하나의 허구임을 깨닫고 국가라는 미신과 범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톨스토이는 이러한 관점에서 국가에의 충성을 유도하는 “애국심”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톨스토이에게 애국심이란 국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허위의 감정일 뿐입니다. 애국심이란 “자기 국민만을 사랑하는 감정”으로 “가능한 최상의 이익과 힘을 자신의 국민이나 국가에게 바치고자 하는 소망”으로 풀이하면서 “자기 마음의 평정이나 재산을 희생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바쳐가며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자기 국민을 보호하자는 신조”인데 그것은 전적으로 다른 국가나 국민의 이익과 힘을 희생시킨 대가로만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지극히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나는 애국심에 대한 그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애국심이란 현실 국가에 대한 애국심을 넘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애국심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자민족-자국가에 대한 애국심이 제국주의적 착취와 억압, 폭력의 근원이 되고 있음을 현대 역사는 증언합니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 전반에 걸친 전쟁 발발의 근본 동인이었습니다. 아나뱁티스트가 되는 길에서 저는 대한민국에 대한 애국심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그것은 내 안에 무의식적으로 깊게 놓여 있던 국가주의적 사고, 자민족 자국가 중심주의를 내려 놓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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