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89)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89)
평화사역에 관한 한 톨스토이에 대해서 버릴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윤리적, 도덕적 삶에 관한 한 그는 그 누구도 따르지 못할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제정 러시아 사회에서 스스로 노예를 해방하고 자기 전 재산을 내어 가난한 이들과 공동체를 세우며 백작의 지위도 내어 던지고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종으로 살았던 그의 삶과 생애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귀감이 되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그러나 톨스토이의 신학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톨스토이의 신학을 점검할 때에 기준이 되는 것은 이른바 “정통신학”입니다. 개신교, 카톨릭, 정교회를 아우르는 정통신학의 기본 기준이 되는 것은 ⓵ 삼위일체에 대한 고백 ⓶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고백 ⓷ 성육신, 십자가 대속, 부활의 구원사적 의미 ⓸ 은혜에 의한 구원 ⓹ 교회의 공동체성과 성례전(예배) ⓺ 성경의 영감과 권위 등입니다.
이 글의 앞부분에서 저는 2006년 3월 15일 메노나이트 세계협의회 총회에서 채택한 <세계 아나뱁티스트들의 공유신념>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그것은 아나뱁티즘이 위에서 정리한 기독교 “정통신학”의 범주에 정확히 일치하고 있음을 나타내기 위함이었고 교리적, 신학적 차원에서의 이단 시비를 차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톨스토이의 신학은 “정통신학”의 범주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나 있습니다. 톨스토이 신학의 근간은 그가 1,880-1,884년에 저술한 「교리신학 연구」(허선화역, 뿌쉬낀하우스, 2020년)에 잘 나와 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러시아 정교회가 근간으로 삼고 있던 기본 교리를 조목조목 해부하고 비판합니다. 그리고 기본 교리들을 철저하게 부정합니다. 그는 삼위일체를 부정합니다. 셋이면 셋이고 하나면 하나지 셋이면서 하나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서도 부정합니다. 그를 우리가 따를 수 있는 인간 전형으로 이해합니다. 성육신, 십자가 대속, 부활의 교리도 인정하지 않거나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여러 기적들
도 신의 현현을 강조하기 위한 문학적 장치거나 신화화로 이해합니다. 그는 교회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예수가 이 세상에서 와서 교회를 세운 바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은 오히려 성직제도를 옹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허구라고 비판합니다. 신약성경 자체도 예수 사후 성립된 제도 교회를 옹호하기 위해 쓰여진 측면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성서의 무오류설이나, 교황 무오류설 등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기독교인인 역자 허선화 조차 번역하는 과정이 불편하기 이를 데 없었음을 고백하는데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른바 기독교의 정통교리를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는 그를 보면서 이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이 책에 대한 러시아 정교회 측의 비판 역시 신랄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톨스토이는 “정교회에 유혹과 불일치의 씨앗을 뿌린 모독자요 거짓 선생”이며, “위대한 재능을 러시아의 영적이고 사회적인 기초들을 파괴하는데 사용한” 사람이고, “우리 학교들에게 영적인 지성을 마비시키고 퇴화시키도록 하는데 기여한 사람”이라고 혹평합니다. 정교회 신학자 플로롭스키는 톨스토이는 기독교 교리에 대해 “지나치게 이성주의적”으로 접근하여 기본 교리를 몰이해하고 왜곡한 그저 “계몽주의자”에 불과한 사람이라고 평가하였는데 정통 교리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그의 평가는 타당해 보입니다. 「교의신학 연구」가 씌여진 지 10년후인 1894년 톨스토이는 그의 신앙과 신학, 사상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하나님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를 발표합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톨스토이가 왜 그렇게 정교회 기본 교리를 철저하게 부정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명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톨스토이는 이 책의 저술을 마칠 때쯤인 9월 9일, 그가 농민들이 기근에 시달리고 있던 툴라 지방과 라잔 지방에서 경험한 일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가 탄 열차와 반대편에서 달려오던 특급열차가 마주치게 되었는데 그 특급 열차는 기아로 고통받고 있는 농민들을 고문하고 죽이기 위해 소총, 탄약, 채찍 등을 지닌 군대를 지사가 지휘하며 이끌고 가던 열차였다는 것입니다. 문제의 발단은 그 지역 부유한 지주의 영지 안에서 농민들이 영주와 공유하던 숲이 있었는데 어느 날 지주가 그 숲을 자기의 소유로 선포하고 농민들의 동의 없이 벌채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농민들이 반발하자 지주는 지사에게, 지사는 국가에 요청하여 군대가 출동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앳된 젊은이들로 구성된 군대는 농민 주모자를 체포하고 농민들을 위협하는 가운데 마을 광장에서 주모자들에 대한 끔찍한 채찍질을 공권력의 집행이라는 이름으로 자행했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지켜본 톨스토이가 내린 결론은 국가의 야만적인 폭력성이었습니다. 아무 죄 없는 농민들이 지주의 부당한 처신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체포당하고 고문당하는 일은 하나님 나라에서는 결코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 특히 산상수훈의 가르침에 비추어 보아도 그것은 계명을 어기는 반하나님적 폭압이었습니다. 이런 폭력적 국가와 지주 편에 서서 그들의 옹호자가 된 정교회도 그의 눈에는 악의 세력에 불과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의 계명, 그 계명에 따라 작위를 내던지고 농민을 형제로 여기며 살았던 톨스토이에게 있어 그런 국가와 교회는 폐기되는 것이 마땅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정교회를 지탱해온 모든 교리가 그의 눈에는 폭력을 정당화하는 거짓된 교설에 불과하였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