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92)

라파공동체2026.03.28 15:233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92)



“신앙과 삶이 일치하여야 한다”는 명제를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기독교인을 포함해 모든 종교인들도 각자가 믿는 신앙과 삶이 일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사람들의 말과 행동 사이에, 종교인들의 신앙과 삶 사이에 불일치와 간극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초대 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고린도 교회에도 성적으로 방탕한 신자가 있었고 야고보 사도가 지적하듯이 금가락지 낀 신자들이 교회 안에서 높임받기도 했습니다. 죄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불완전한 존재인 신자들은 전 생애를 거쳐 연단되고 성숙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말하는 바 “구원을 이루고, 완성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왜 기독교를 싫어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제대로 된 삶을 살아내지 못하는 신자들 때문”이라는 답이 압도적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비그리스도인들에게 삶의 모본이자 모델이 되기는 커녕 “개독교인”이라고 폄하되고 멸시당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삶입니다. 기독교인의 삶이 문제입니다. 작년에 저는 주일 예배 중 몇편의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선정해 교인들과 함께 보고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그때 교인들과 함께 본 첫 번 째 다큐멘터리 영화가 청계천 노동자 전태일의 삶을 다룬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박광수 감독, 홍정인 주연, 1995년작)과 <기독 청년 전태일>(2020년 제작)이었습니다. 두 번째 다큐는 <소록도의 마리안느와 마가렛>(2017년작)이었고, 세 번째는 <어른 김장하>(2023년작) 였습니다. 이들 영화를 선정하게 된 이유는 이렇습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기독교사를 포함하여 가장 예수님 다운 삶을 살다간 사람은 누구일까? 라고 자문할 때 제 마음속에 떠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청년 전태일에 대해 제가 처음 알게 된 것은 1970년 가을의 어느날, 초등학교 5학년 때 그의 분신 소식을 전하는 짤막한 라디오 뉴스를 접했을 때였습니다. 하지만 이내 그는 잊혀졌고 그가 제 삶 가운데 다시 등장한 것은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하던 저의 청년 시기였습니다. 그때 그는 제가 따라야 할 본으로서의 노동열사였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그는 제 삶에 또 다시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가 작년 제 의식의 세계로 다시 소환되었습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예수님 같은 삶을 산 사람은 누구일까를 생각할 때 그가 떠오른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 대한 자료들을 검색하다가 그가 기독 청년이었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반갑던지요. ‘그러면 그렇지. 그러니까 그렇게 자기 몸을 불태워가면서까지 어린 여공들의 권익을 위해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이었을거야’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죄인된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생명 바친 예수님의 모습과 어린 여공들의 권익을 주장하며 자기 몸을 불태운 22살 청년 전태일 형제의 삶이 정확히 겹쳐졌습니다. 전태일은 그가 분신하기 석달 전인 1970년 8월 9일 삼각산 엠마누엘 기도원에서 마지막 유서를 씁니다.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 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 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내 마음에 결단을 내린 이 날, 무구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때에 한 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 치오니 하나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너무 눈물 겹지 않습니까? 겟세마네의 예수님이 떠오르지 않으시나요? 어떻게 22살의 앳된 젊은이가 자기보다 서너 살 어린 시다 여공들을 위하여 이런 결단의 기도를 올릴 수 있단 말입니까? 마석 모란 공원에 있는 전태일 묘소의 묘비에는 전태일 이름 위에 “기독 청년” 이란 설명이 새겨져 있습니다. 22살 그의 짧은 생애가, 어린 여공들에 대한 긍휼과 자비로 자기 몸을 훨훨 태우고 떠나간 그의 삶이 가히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꼭 빼닮지 않았나요. 나는 한국 현대사, 기독교 역사를 움직여온 가장 위대한 인물을 꼽으라면 “기독 청년 전태일”을 꼽겠습니다. 한국의 민주화와 노동자들의 권리 증진과 인권의 신장에, 자본과 노동이 균형을 이루며 성취된 대한민국의 산업 발전에 그가 끼친 영향은 절대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이런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자기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삶에서 예수의 향기가 온 세상 가득히 피어올랐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수의 영이 그와 함께 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가 자기 몸을 불사르며 외쳤던 것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일주일에 하루를 쉬게 해 달라” “하루 노동 시간을 12시간으로 단축해 달라” 였습니다. 지금의 노동환경과 비교하면 엄청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당시 청계천 시장 봉제 공장 여성 노동자들의 평균 노동 시간은 하루 14-15시간 이었고, 휴일은 한 달에 고작 두 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평균 나이는 20세가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때 고등학교도 다니지 못하면서 살인적 노동에 시달린 그녀들을 세상은 “산업역군”이라 불렀습니다. 그에게서 우리는 예수님의 진한 향기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따라야 할 본이 되는 그리스도인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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