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93)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93)
두 번째 다큐멘터리 <소록도의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동일한 제목의 소설 「소록도의 마리안느와 마가렛 – 우리 곁에 사랑이 머물던 시간」(성기영, 2017년)을 다큐화한 것입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1966년부터 2005년까지 꽃다운 나이에 한국에 들어와 40여년간 소록도의 한센인들을 위해 헌신한 오스트리아 재속수녀회 소속 마리안느와 마가렛 간호사가 꽃다운 20대 중반의 나이에 한국에 들어와 늙어 힘없어질 때까지 소록도 한센인의 “할매”가 되어 살아온 날들의 기록입니다. 그들은 평소 공언해 온대로 자신들이 타인의 돌봄을 받아야 되는 상황이 오면 소록도를 떠날 것이라 말하곤 했는데 그때가 되자 그들은 한국에 올 때 가지고 왔던 작은 짐가방 하나만을 들고 섬사람들 모르게 조용히 소록도를 떠나 고향 오스트리아로 돌아갔습니다. 소록도를 떠나며 그들은 이런 편지를 남겼습니다.
<사랑하는 동무, 은인들에게>
이제는 저희들이 천막을 접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
한국에서 같이 일하는 외국 친구들에게 소록도에서 제대로 일할 수가 없고,
자신들이 부담을 줄 때는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고 자주 말해 왔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 말을 실천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 편지를 보는 당신에게 하늘만큼 감사합니다.
부족한 외국인에게 사랑과 존경을 보내주셨습니다.
같이 지내면서 우리의 잘못으로 마음 아프게 해드렸던 일에 대해 용서를 빕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리안, 마가렛 올림-
그들은 평생 소록도의 3평 남짓한 방에서 무소유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이 남긴 마지막 편지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겸손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똑똑히 보게 됩니다. 그들의 생애는 우리를 감동시킵니다. 가슴 뭉클하게 합니다.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어집니다. 여기에 참으로 선하고 아름다운 우리의 그리스도인 자매가 있다고. 영화를 본 다음 주 우리는 고흥 소록도로 야외 예배를 갔습니다. 소록도가 마주보이는 고흥 녹동항 야트막한 언덕에 마리안느 마가렛 기념관이 있더군요. 인도의 마더 테레사 수녀가 노벨 평화상을 받은 것에 견주어 두 분을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하는 100만 명 서명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간 10년 후 제작된 다큐멘터리에는 80을 넘은 마리안느 수녀님은 대장암 수술 여파로, 마가렛 수녀님은 치매 투병으로 요양원에서 지내고 계시더군요. 치매로 희미해져 가는 기억 속에서도 마가렛 수녀님은 한국과 소록도, 한국말에 반응하는 가슴 뭉클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전태일 형제에게서나 마리안느 마가렛 자매에게서나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은 <육화 신학>에 대한 것입니다. 성육신은 신비입니다. 어떻게 해서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인간이 되실 수 있는가에 대해서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우리는 그 결과와 의미에 대해서 성경의 진술에 따라 알게 됩니다. 성육신의 의미를 우리가 이해하고 깨닫고 믿게 되는 것도 다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일인데 그 과정 역시 신비입니다. 그러한 과정을 과학적으로 측정하고 증명할 수 없기에 우리는 신비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고 말씀이 육신이 되는 과정에 대해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인간이 되었고,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압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체험을 통해 압니다. 그리고 그 앎에 기초해 믿음을 갖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33년간 사셨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성육신은 신비이지만 그 결과는 지극히 실제적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우리 앞에 보이는 몸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인간의 몸으로 육화하신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살다가 마지막으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모습도 육화였습니다. 그는 자기 몸을 죄인들을 위하여, 그들의 구속과 그들의 새로운 삶을 위하여 제물로 내어놓으신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당신께서 하고자 하는 일을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을 통해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살과 피를 죄인된 우리들의 구속과 회복을 위해 희생의 제물로 내어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성육신의 신비로운 육화는 십자가의 성스러운 자기 희생의 육화로 마쳐졌습니다. 그때 주님은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다 이룬 것 같이 너희도 그런 인생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최후의 만찬 전에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친히 씻어 주시면서 제자들에게 섬김의 삶의 본을 보여주셨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라 하셨으며, 십자가 위에서 그 결국을 보여주셨습니다. 자기 살과 피를 다 내어놓는 육화의 삶, 섬김의 삶, 헌신의 삶의 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전태일 형제와 마리안느 마가렛 자매도 육화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의 삶이 세상에 깊은 감동과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몸으로 일구어낸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 육화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그들의 삶을 통해, 몸을 통해 이웃 사랑의 육화된 삶으로 증거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