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107) 

라파공동체2026.03.28 15:233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107)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믿음과 실천은 세상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세상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만의 정착지, 곧 세상과 구별되는 Colony를 이루고 살아야 한다는 신학을 저는 <Colony 신학>이라 이름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Colony 신학>을 아미쉬와 후터라이트 형제들이 이미 수백년을 삶으로 살아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미쉬와 후터라이트 형제들은 콜로니 신학의 살아 있는 생생한 실체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면 초대교회, 바울이 개척한 이방 도시 교회들도 콜로니였을까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바울 역시 교회를 이 땅에 있는 하나님 나라의 콜로니로 여겼음이 분명합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이 땅의 시민권을 가진 자가 아니라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라 여겼으며, 하나님의 전권 대사(ambassador)라고 불렀습니다.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이 땅에 있으나 이 땅에 속하지 않은 존재요 기관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초대 교회는 이 땅에 있는 하나님 나라의 콜로니가 확실했던 것입니다. 그랬던 콜로니 개념이 완전히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이른바 크리스텐돔의 시대가 열리면서부터 였습니다. 콜로니로 존재했던 기독교, 변방에 존재했던 기독교가 단번에 제국의 중심으로 중심 이동을 하고, 제국과 한 몸이 되어 세상의 주류로 행세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됨으로 기독교는 로마 제국 시대 이후 유럽을 거쳐 오늘날 미국의 주류 종교로 기능해오기까지 Colony로서 교회가 지니고 있던 변방성과 급진성을 완전히 상실하게 됩니다. 교회가 예수 복음의 전복성을 담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세상을 변혁시키는 주체가 아니라 세상을 관리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국가의 협력자, 보조자로 기능하게 된 것입니다. 



 크리스텐돔 시대의 신학을 그러므로 <교회-국가 신학> 혹은 <교회-국가 모델>이라 부를 수 있는데 <Colony 신학>, <Colony 모델>은 정확히 그 대조점에 위치합니다. 미국의 경우 그들은 건국 이념으로 국가와 종교의 분리, 정치와 종교의 분리, 신앙의 자유를 채택했지만 미국의 기독교는 국가와 정치로부터 스스로를 분리하려 한 적이 없었습니다. 미국을 건국한 사람들이 대부분 기독교인이었기에 그들은 기독교를 국교화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처음부터 미국은 기독교의 나라였습니다. 미국에서 국가와 교회, 기독교는 처음부터 한 몸이었던 것입니다. 크리스텐돔의 시대가 열리고 전개되면서 기독교는 언제나 국가 혹은 권력을 통해 온 세상을 기독교화 하려는 시도를 멈춘 적이 없습니다. 국가 권력을 통해 사회를 기독교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가능한 일입니다. 사회의 전 영역에 기독교적 가치를 심어놓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 급부도 반드시 존재합니다. 교회가 국가와 연합하여 사회를 변화시킬 때 교회와 복음이 권력의 도구로 전락하고 신앙이 문화와 관습으로 희석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예수의 급진적이고 전복적인 윤리가 현실 정치와 문화, 관습에 동화됩니다. 소금이 맛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왕좌와 동일시 되는 것입니다. 계시록의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미지근한 교회가 되버리는 것입니다. 



 <Colony 모델>은 하나님 나라는 국가가 아니라 공동체의 삶, 곧 Colony의 삶을 통해 가시화 된다고 믿습니다. 이 모델을 따르는 이들은 국가와 사회를 변혁시키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복음을 살아내는 그들의 삶을 통해 세상의 대안이 되려고 합니다. <교회-국가 모델>이 국가를 하나님 나라의 가시적 실현으로 이해하려 하는 반면에 <Colony 모델>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인 Colony가 하나님 나라를 예표한다고 믿습니다. <교회-국가 모델>이 법과 제도, 강제력에 의지해 질서를 유지하려 한다면 <Colony 모델>은 규율과 합의, 훈련에 의해 공동체 질서를 유지하려 합니다. <교회-국가 모델>에서 윤리는 법과 도덕 중심이라면 <Colony 모델>에서는 산상수훈의 실천이 공동체 윤리의 중심을 이룹니다. <교회-국가 모델>이 군사, 외교력을 통한 “힘의 선교”를 불사한다면 <Colony 모델>은 복음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으로 선교적 요구를 대체합니다. 그들은 ‘가서 전하라’의 선교 할동에는 약하지만 ‘와 보라’의 선교 활동에는 강점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매년 일천만 명 이상의 미국인들이 아미쉬 마을을 관광하는 것 자체가 커다란 선교 효과를 거두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국가 모델>에서는 국적과 시민권이 소속을 증명하지만 <Colony 모델>에서는 회심과 회심을 통한 삶의 변화가 공동체 성원 됨의 증거가 됩니다. <교회-국가 모델>에서는 교회가 제도적 기관(institution)으로 인식되고, 성당, 교회당 건물을 중심으로 인식된다면 <Colony 모델>에서는 교회는 삶의 터전이요, 생활공동체(community) 로 인식됩니다. <교회-국가 모델>은 국가를 ‘하나님의 도구’로 인식하고 국가주의적 신학을 발전시키고 폭력 사용을 정당화 하지만 <Colony 모델>은 국가를 하나님 나라 밖의 세속 질서와 권력으로 인식하고 제자도와 비폭력을 통한 평화, 공동체 신학을 발전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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