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115)

라파공동체2026.03.28 15:233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115)



 갈릴리 신학은 공간과 연관된 신학이지만 공간에 제한되지 않는 신앙 양식과 삶의 양식을 이름하는 것입니다. 갈릴리 신학의 근본 전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입니다. 곧 아무 시골이나 농촌이 갈릴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현존하는 곳이 갈릴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없는 갈릴리는 그저 제국의 변방, 대도시의 주변부, 평범한 농촌에 불과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 없는 예루살렘도 자기 기만과 허영, 욕망과 쾌락과 사치가 분출되는 도시, 우상 숭배로 가득찬 배역의 도시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현존이 드러나는 곳, 거기가 갈릴리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보여 주신 신앙 양식과 삶의 양식이 살아 숨쉬는 곳, 그리스도의 현존이 성령의 임재로 확인되는 곳이 바로 갈릴리인 것입니다. 그 갈릴리를 도시에서 Colony 교회를 이루며 살 것인가, 시골에서 이루며 살 것인가의 선택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선택권을 자율적으로 행사하여 도시를 떠나 농촌과 시골로 이주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현대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도시적 아비투스”를 극복하는 것 없이, “예루살렘 신학”의 프레임을 깨어버리지 않고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는 프레임에 갇혀 경직된 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갈릴리 복음으로, 초대 교회의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갈릴리 예수 복음의 특징이 “급진성과 전복성”에 있음을 상기하고 그것을 오늘의 우리의 삶 속에 구현할 때 가능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설파하시고 친히 살아내신 “하나님 나라”는 기존 정치, 종교 질서를 근저로부터 뒤흔든 급진적이고 전복적인 신앙이요 삶의 양식이었습니다. 그것은 갈릴리 예수 복음의 특징이었을 뿐만 아니라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을 관통하는 하나님 나라의 특징이었습니다.



 구약 성경은 이스라엘 나라의 건설과 멸망을 배경삼아 인류의 역사 속에 개입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활동, 뜻, 의지를 드러내 주는 책입니다. 창세의 시대를 지나 인류가 역사 시대로 접어들면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은 아브람을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으로, 하란에서 가나안 땅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고대 수메르 문명의 발상지인 중심부 갈대아 우르와 하란으로부터 아득한 주변부 변방 땅 가나안으로 부르십니다. 그리고 거기서 당신의 택한 선민 이스라엘을 수백 년에 걸쳐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빚으십니다. 그곳에 창과 칼, 마병과 병거에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나라를 세우십니다. 그 출발을 아브람 한 사람을 문명 중심지에서 주변부 가나안으로 부르심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인간적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 그 부르심에 아브람이 무조건적으로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역사 시대가 문을 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그’ 부르심과 아브람의 ‘그’ 순종을 저는 ‘급진적’이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아브람 개인의 순종으로부터 시작해 오랜 시간의 “인내의 발효”를 거쳐 민족 단위의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빚어지는 가운데 그 모습을 드러냈던 것입니다. 민족 단위로 번성한 아브람의 자손들이 하나님의 이스라엘 나라로 세워지기 위해 넘어야 할 관문은 “애굽”이었습니다. 진정한 이스라엘 나라의 시작은 출애굽으로부터 였습니다. 애굽으로부터의 탈출, 곧 Exodus로부터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1948년 이스라엘이 영국 식민지로부터 독립하여 2,300여 년의 떠돌이 생활을 마치고 건국할 때 유럽에 거주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꿈에 부풀어 타고 간 배의 이름도 엑소더스 였는데, 이는 유대인들이 엑소더스를 살아계신 하나님의 현재 역사에의 개입으로 믿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고대 문명의 중심지에서 변방 주변부로 부르시고, 고대 강력한 제국 애굽의 억압과 압제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엑소더스 시켜 변방 주변부 가나안으로 옮겨주십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수메르 문화와 문명, 거대 제국 애굽의 질서와는 다른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근거한 새로운 문화와 질서를 갖춘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려 하십니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그 나라는 결국 이스라엘이 지파동맹 체제를 청산하고 주변 강대국의 제국의 질서를 선택함으로써 제국 질서에 동화되고 세속적 힘의 싸움에서 패배해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멸망당하는 슬픈 역사를 남기게 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나라가 멸망한 것임과 동시에 그들 가운데 육화했던 하나님의 나라가 멸망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할 즈음, 그리고 이스라엘이 멸망해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시기 하나님은 선지자들과 예언자들을 세우셔서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목소리 높여 외치고 부르짖게 합니다. 이스라엘이 회복해야 할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께서 장차 이루어주실 하나님의 나라는 군사력과 경제력에 의지하는 나라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믿고 따르며 의지하는 나라, 정의와 공평, 긍휼과 자비가 살아 있는 나라,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가 대접받고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나라였습니다. 나라 잃은 백성으로 수백 년을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때가 차매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어 하나님의 새로운 나라를 선포하고 세워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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