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116)

라파공동체2026.03.28 15:233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116)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이 시작되던 첫 순간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마태와 마가는 침례 요한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으신 후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회개하라 천국(하나님의 나라)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 막 1:15)라고 선포하셨다고 기록합니다. 누가는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고 고향 나사렛으로 돌아오신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희년)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4:18-19)는 이사야의 말씀을 당신 사역의 핵심으로 선포하셨음을 기록합니다. 요한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 1:29, 36)으로 예수님의 정체성을 설명하면서 빌립, 안드레, 베드로, 나다나엘을 제자로 부르신 장면을 공생애 사역의 첫출발로 기록합니다. 요한복음에서 뿐만 아니라 마태, 마가, 누가도 공히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을 예수님의 첫 사역에 위치시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고 희년의 해가 이르렀음을 선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 예수님의 공생애는 그러므로 출발부터가 “정치적”이었습니다. “정치”라는 단어를 복음의 진수로 해석하고 풀어냄으로써 신학의 중심 주제로 끌어 올린 존 하워드 요더나 스탠리 하우워어스의 견해는 전적으로 옳습니다. 예수님이 정치적이셨던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의 삶도 정치적일 수밖에 없음도 자명합니다. 나라를 세우고 운영하고 유지하는 것을 “정치”’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나라 도래를 선포하고 이를 이루신 예수님의 행위는 지극히 “정치적”인 것이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실현한 “하나님의 나라”, “예수의 정치학”은 지극히 “급진적”이었으며, “전복적”인 것으로 기존 “정치 권력”과 “종교 권력”이 구축해 놓은 지배 질서를 근저로부터 뒤흔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시현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나라였습니다. 로마 제국의 질서와도 다르고 유대인들이 꿈꾸어온 독립된 나라의 이상과도 전혀 다른 이타적 사랑과 희생으로 작동되는 ‘하나님의 사랑의 나라’였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에 나타난 “급진성”과 “전복성”은 예수님의 공생애 전체를 일관하는 특징이었습니다. 대표적인 몇몇 사례를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예수님에게 있어서 제자란 탈속(脫俗)한 사람들, 출가(出家)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요한, 안드레, 마태등 12제자를 부르시고 제자삼으셨을 때 제자들은 배와 그물, 생업 기반을 버려두고, 그들의 가족과 살던 고향을 떠나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 제자공동체는 탈속 공동체요, 출가 공동체였습니다. 

2. 영생을 구하는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은 “너의 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셨습니다. 부자 청년은 차마 그렇게 할 수가 없어서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고 뒤돌아 갔습니다.

3.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 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서든 가난한 사람이 되어야 했습니다.

4.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응징하고 보복하라 하지 않으시고 대신 그를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하시면서 너희는 다른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 너희는 먹고 사는 일에 너무 매달리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를 구분하셨고, 하나님의 의와 개인의 의,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을 구분하셨습니다.

6. 예수님은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정죄하여 거부했고 죄인으로 낙인찍었던 세리와 창녀들과 어울리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잔치를 열었고 식탁 교제를 즐거워 하셨습니다.

7. 예수님은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강력히 준수하던 안식일 규례와 정결 규례에 대해 새로운 해석과 기준을 내놓으셨습니다. 더 나아가 그들을 위선자들이라고 통박하셨습니다.

8. 예수님은 당시 정치, 종교 권력자들의 높아지려 하고, 섬김받으려는 행태를 비판하셨고 제자들에게 섬김받으려 하지 말고 섬기는 종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9.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죄인인 세리의 기도를 예로 드시면서 죄인인 세리의 기도가 더 합당한 기도라 하셨고 바리새인의 기도가 아니라 죄인 세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0. 예수님은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 경제 원리는 세상의 그것과는 현저 히 다른 1시간 노동한 사람이나 8시간 노동한 사람이나 같은 품삯을 받는 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갈릴리에서의 삶을 간단하게 일별만하여도 예수님이 시현한 하나님의 나라는 힘을 통해 통치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로마 제국의 통치 원리와 현저히 구분되고, 당대 이스라엘 유대교의 종교 행습과 가치 기준과도 뚜렷히 구분되는 전혀 다른 원리와 가치 기준에 의해 작동되는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 연약한 자, 낮은 자들과 함께 이루어 가는 나라였습니다. 예수님은 로마 제국을 무너뜨리고 이스라엘 나라를 물리적으로 재건하려는 시도를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너희 안에 있다 하심으로 믿는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담지자요 구현자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믿는 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세상 국가와는 다른 하나님 나라가 드러난다는 의미였습니다. 믿는 사람의 모임인 교회와 그들이 마을을 이루고 사는 Colony가 또한 하나님 나라였던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 나라와 같이 인종이나 영토적 경계에 따라 구분되는 나라가 아니라 세상 나라 안에 있으면서 세상 나라와는 전혀 다른 가치 기준과 작동 원리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거나 그들의 모임, 그리고 그들이 모이는 마을과 땅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고 중세 1,000년의 시간 동안 중세 유럽의 통치이데올르기가 되고 교황이 실질적 통치 자로 군림하면서 예수 갈리리 복음의 급진성과 전복성, 대안성과 대조성, 대항성이라는 복음의 특성은 빛을 잃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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