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117)

라파공동체2026.03.28 15:232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117)



 예수 복음의 급진성과 전복성이 사라지게 된 결정적 계기는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부터였습니다. 국가-종교의 시대가 시작되면서 기독교와 국가는 한 몸이 되었고 제국의 관리 기능을 기독교가 떠맡으면서 기독교는 체제 유지적 종교가 되었습니다. 예수 복음은 국가와 사회의 정치·경제·문화·도덕 등 문명체계 전반과 신앙을 종교 의례로 치환해 버린 생명 없는 신앙생활 전반에 대해 급진적이고 전복적인 변화를 촉구하고 이들에 대해 대조적이고 대안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었는데 국가-종교 시대가 열리면서 기독교는 국가·문명체제에 동화되고 종교 의례는 더욱 중시되고 강화되는 현상을 보이게 됩니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제정된 380년 이후 아이러니컬 하게도 로마 제국은 서서히 몰락의 길에 들어서기 시작합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옮기면서 395년 서로마와 동로마 제국으로 분열되고 서로마 제국은 지속적으로 게르만족의 침범에 시달리게 됩니다. 410년에는 고트족의 침략으로 로마가 함락되기도 합니다. 서로마 제국은 476년 게르만족의 침략을 견디지 못하고 용병대장 오케아도르에 의해 황제가 폐위되면서 역사 속에서 사라집니다. 동로마 제국은 1,000년을 더 유지하다가 1,453년 오스만 제국에 의해 난공불락이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면서 종말을 고합니다. 



 기독교가 국가-종교로 확고하게 굳어지고 기능하며 그 성격이 강화된 것은 오히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였습니다. 어거스틴이 「신의 도성」을 쓴 이유는 로마의 멸망이 기독교 때문이라는 세간의 역사적 평가를 반박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세상 나라는 망해도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다는 것을 논증한 것이지요. 게르만족이 서로마를 멸망시킨 후 이들의 일족인 프랑크족은 프랑스를, 동고트족은 이탈리아를, 서고트족은 스페인을, 앵글로 섹슨족은 영국을 점령하고 그들의 왕국을 세웁니다. 로마 대제국이 사라지고 유럽은 여러 국가로 나뉘어 분할 통치되기에 이릅니다. 중앙집권적 통치체제가 아직 굳건히 자리잡지 못한 상태였기에 각 지방의 영주에 의한 통치, 이른바 중세 봉건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기독교가 날개를 달게 된 것은 바로 중세 봉건시대였습니다. 로마가 몰락하면서 기독교의 역사에도 위기가 찾아왔지만 유럽 변방의 게르만족이 제국을 무너뜨리고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을 차지하면서 이들 국가는 공히 로마의 국교였던 기독교를 통치 이데올르기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게르만 왕들은 로마의 유산을 물려받은 원주민들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고 싶어 했는데 그 통치의 파트너로 로마 기독교를 채택하게 됩니다. 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정부 기능이 마비되었을 때 로마의 주교(교황)와 각 지역의 교회 조직은 사실상의 지방 정부 역할을 수행합니다. 빈민을 구제하고, 법적 분쟁을 중재하며, 침략자들과 협상하는 일까지 교회가 맡으면서 민중의 절대적인 신뢰를 얻습니다. 게르만 왕들이 로마 교회와 손을 잡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였습니다. 새롭게 재편된 중세 유럽의 맹주였던 프랑코 왕국의 왕이었던 클로비스가 496년 카톨릭으로 개종하면서 교황은 로마 주교의 신분을 뛰어 넘어 신의 대리자로서 황제를 능가하는, 전 유럽의 최고통치자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어거스틴이 로마의 쇠락을 목도하면서 「신의 도성」을 썼을 때 중세 봉건시대가 열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실제 국가 체제로 뿌리를 내리리라고 예측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중세 1,000년의 시간 동안 기독교는 가히 ‘천년왕국’의 시대를 누렸습니다. 중세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실제로 이 땅에 임하였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대리해 보이는 교황이 통치하는 하나님의 ‘천년왕국’을 살고 있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중세 유럽은 완전한 기독교 신정국가였고 이 시기에 복음은 통치 이데올르기로 기능하게 됩니다. 교황과 황제와 국가와 교회는 명실상부, 한 몸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기독교와 교회는 ‘정치적’인 차원을 넘어 국가 통치의 주체가 되었습니다.    



 중세가 마감되고 근대가 시작되면서 기독교 신정국가 체제는 막을 내립니다. 현대로 들어서면서 국가와 종교의 분리가 헌법적으로 명문화 되면서 신정국가의 이상은 일부 이슬람 국가를 제외하고는 역사에서 사라집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와 문명의 발전을 기독교 국가인 유럽과 미국이 주도해 오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들 나라에서 기독교는 국가-종교로서의 위상을 내려놓은 적이 없습니다. 여전히 기독교는 국가와 손을 잡고 체제의 관리자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습니다. 근대 자본주의 체제가 등장하면서 기독교와 교회는 세상과 사회에 대한 급진적, 전복적, 대안적, 대조적, 대항적 성향을 잊어버리고 영육이원론에 빠져듭니다. 신학적으로는 영육이원론을 비판하지만 기독교인의 실제 삶은 주일의 삶과 평일의 일상의 삶이 철저히 분리되고 괴리되는 자기분열적 양태를 드러냅니다. 근엄한 ‘영적 생활’을 강조하지만 그것은 실제 일상생활로부터 유리된 종교 의식이나 의례로, 선교적 열정으로 포장되어 나타나게 됩니다. 주일성수와 같은 예배 의례를 절대적으로 중시하는 반면에 그리스도인의 일상의 삶은 철저히 세속화 되어 소비주의, 물질만능주의, 성공주의가 그리스도인의 일상의 삶을 지배하게 됩니다. 근현대에 들어서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선교가 강조되었는데 그것은 제국주의의 옷을 입고 전개된 약소국에 대한 강대국의 영적 폭압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적 자아는 ‘분열된 자아’인데 그것이 ‘고착’되어 있어서 자신들의 신앙이 분열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잘 인지하지 못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신앙적 자아 분열의 문제를 인식하기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분열된 비정상적 신앙이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인정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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